이런 그들의 녹음물은 사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꽤 어렵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올 황당한 실력의 아마추어 래퍼들도 많이 있지만, 당장 오버로 나가도 지지 않을 실력의 잠룡들도 만만치 않게 자신의 실력을 인터넷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튀지 않으면 그 틈을 비집어 나올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산이는 후에 나올 그의 노래 'Rap Genius'처럼 아주 영리했다. 여러 녹음물로 이미 아마추어 래퍼들 사이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았던 그는 좀 더 유명해지기 위해 '디스'라는 힙합 놀이를 활용했다. 당시 잘 나갔던 유명 래퍼 버벌진트를 디스한 것. (그는 나중에 'This is why i'm hot'이라는 곡 가사에 '재밌쎄요는 니 관심을 쎄벼'라고 넣으며 의도가 있는디스임을 암시한 바 있다.)
그가 '재밌쎄요'의 파장을 어디까지로 예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이 디스로 버벌진트에게 인정받아 그의 크루인 오버클래스에 영입됐고, 2008년 버벌진트의 음반 '누명'에 참여하며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2009년 발표된 오버클래스 Collage 2에 수록된 'Rap Genius'는 이듬해 열린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노래) 부문 수상곡이 되었다. 힙합 팬들은 괜찮은 래퍼가 나왔다고 열광했고, 오디션을 통해 들어간 국내 3대 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와 2010년 계약까지하면서 래퍼로서의 그의 앞길에는 청신호만 보였다.
하지만 그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는 2010년 9월 발표된첫EP앨범 'Everybody Ready?'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졌다.언더 시절과 다른 대중적인 색의 이 앨범은 래퍼 산이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힙합 팬들 대다수는 '산이 센스가 사라졌다'라며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게다가 후속 앨범 소식도 들리지 않으면서 어느새 힙합 팬들은 물론 그와 친한 사람들까지 "산이는 망했어"라고 수군거렸다.
그렇게시간이 흐르고 올해 4월부터깜짝 놀랄만한 소식들이 전해진다. 바로 산이의 JYP 계약 해지와 브랜뉴뮤직 합류 뉴스였다. 그는 이 소식만으로도 정신없는 팬들을 몰아붙이듯 싱글 'Big Boy'와 믹스테입 '랩 서커스'를 연이어 공개하더니, 8월에는 브랜뉴뮤직 합류 후 첫 싱글 '아는 사람 얘기'를 내고 음원차트 2주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게 단 4개월 동안 벌어진일이다.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몰아친 그의 활동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확인했다. 산이라는 래퍼가 다시 한 번 이들의 '기대'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을.
(인터뷰 당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속어는 그대로 살렸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프로필>
이 름 : 산이(San E)
본 명 : 정산
생년월일 : 1985년 1월 23일
데 뷔 : 2008년 '버벌진트-누명' 피처링
- 싱 글
2010년 : EP 'Everybody ready?', 디지털싱글 'LoveSick'
2011년 : 디지털싱글 '가면 안돼', 'RH- 11th '불행했음 좋겠다''
2013년 : 디지털싱글 'Big Boy', '아는사람 얘기'
기타 여러 가수들 피처링 &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 수 상
2010년 :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노래) 'Rap Genius'
-안녕하세요. 디시인사이드입니다.
안녕하세요.
-디시는 아세요?
알긴 알아요. 디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그런데 너무 복잡해서 잘 안 들어가요.
-그럼 힙갤 안 들어가셨겠어요.
힙갤은 가끔 들어가는데, 솔직히 말하면 거기 크게 유익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으하하하.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안 좋아하시지는 않아요.
-사실 버벌진트 씨가 예전에 한 번 힙갤을 디스한 적이 있잖아요.
아, 디시인사이드 많은 지진아들~ 그런 거요? (웃음)
-솔직히 별로 안 좋아하실 거라고 예상하고 왔어요.
에이~ 저는 그런 거 없어요.
-그럼 힙갤은 아주 가끔? (디시이용자 '홍횽흥', '산울리미')
제가 크롬을 쓰는데, 힙갤 들어가려면 악성코드 뜬다고 떠요. 그거 왜 뜨는 거예요? 사파리, 익스플로러에서도 다 되는데 크롬에서만 그래요.
-지금은 괜찮아요. 안심하고 쓰세요.
검색하다가 나온 글 보면 힙갤로 들어가는 글 있잖아요.
-힙갤 사람들이 가끔 자기들이 만든 창작물을 올렸는데 한 번도 들어보신 적 없으시겠어요. (디시이용자 '홍횽흥')
네. 없어요. 저도 그렇게 해서 데뷔한 경우라 들어볼 수 있으면 최대한 듣고 싶기는 한데… 단체곡 만들고 하지요? 단체곡 할 사람들 붙어라 하던데. 그건 봤어요.
-힙갤 말고 힙합 관련된 다른 커뮤니티 많이 들어가나요? (디시이용자 'ㅇㅇ')
제일 많이 들어가는 곳은 아무래도 힙합플레이어와 힙합LE 같은 곳. 리드머는 요즘 잘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글이 잘 안 올라와서 가끔 가서 칼럼 같은 걸 읽죠.
-본인에 대한 반응을 보러 가는 거예요, 그냥 놀러 가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고, 제 반응도 안 본다는 건 거짓말이겠지요.
-타인의 반응에 신경쓰시나요?
신경 쓰지는 않아요. 제가 음악을 하면서 배운 게 칭찬도 비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거. 남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제 포커스에서 제 감정을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은 휘둘릴 수밖에 없기도 해요.
휘둘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산이 이런 거 나올 때 되지 않았어? 이런 거 만들어'라고 해서 제가 이 사람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런 곡을 만들 수 없어요. 저는 제 감정이 이거 지금 만들어야 해 이렇게 꽂혀있으면 만들 수 있는 거지, 몇몇 사람들 취향을 위해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질문을 갤러리 이용자들에게서 받았는데, 산이 씨 실제로 보면 머리 크기가 변기 뚜껑만하다고…. (디시이용자 '삼수예정자')
으하하하하하.
-루머가 있는데 안 크시네요. (웃음)
작지는 않아요. 크기는 한데 변기 뚜껑은 아니에요. 진태 형이 더 커요. 이래서 제가 힙갤을 안 가는 거예요. 으하하하하.
-힙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웃음)
예전에는 자주 갔는데 크롬에서 막아놓으니까 못 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다시 된다니 가서 볼 수 있지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힙갤은 갤러리다 보니까 완전체인 사이트보다 좀 더 가벼운 글이 올라오고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잖아요. 그래서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글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진지한 것보다는 조금 더 웃긴 게 많은 것 같아요.
-산이 씨 노래도 약간 유쾌함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음악에 진지함을 넣을 때도 있어요. 빅보이처럼. 그런데 저는 음악을 들었을 때 -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에요 - 곡을 해부하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들었을 때 뭔가 '아!' 이럴 수 있는 음악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모든 가사도 최대한 쉽게 풀이해서 쓰려고 하고요. 쉬운 것과 유치한 거에는 분명 차이점이 있고요.
-가장 많이 언급된 게 가사였어요. 가사는 어떻게 쓰나요? (디시이용자 '맫씨맫씨')
어떤 사람들은 가사가 유치하다, 좋다 왔다갔다하는데 제 스타일을 좋아하시면 '가사가 공감되고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쓰는 스타일이 별로면… 저는 직설적인 것을 좋아해요. 비유해서 할 때도 있지만, 힙합의 장점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 네가 싫어' 하면 '아, 나는 네가 이전에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해서 마음에 걸려' 이게 아니라 '나 네가 정말 싫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그래서 저도 최대한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가사를 보니 어휘력이 굉장히 풍부하시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해요. 제가 아직도 모르는 단어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어떻게 보면 재밌을 수도 있는 게,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가끔 어떤 단어들을 볼 때 예를 들어 '으뜸'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봐요. 한국 사람들은 으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데 저는 '우와 재밌는 말이다' 이렇게 돼요. 발음도 그렇고. 말에서 주는 느낌이 신선할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보일 때 잘 표현하려고 해요. 책 같은 거 보다가 신선한 단어가 나오면 따로 메모해둬요. 나중에 어떻게든 써먹으려고요.
-메모하는 습관이 가사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건가요?
무조건 메모해야죠. MC고 래퍼면 무조건. 다음날에는 기억 안 나요.
-메모한 공책 숫자를 알려준다면요?
공책이라고는 없는데, 항상 침대 옆에 공책을 놔둬요. 그리고 요즘에는 스마트폰 많잖아요? 글 쓰는 분들이나 작사하시는 분들 보면 엄청 쌓여있지요.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네요.
네. 주기적으로 한번 검토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고요. 꼭 한 번 씩.
-이번에 새로 낸 싱글이 2주 연속으로 1등을 했어요. 그 곡도 가사가 재밌더라고요. 경험담 같아요.
아는 사람 이야기예요. 아는 사람.
-에이~.
에이~.
-하하하. 뮤직비디오도 재밌더라고요.
제가 아는 작가 중에 소울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시놉시스를 써줬어요. 아무래도 뮤직비디오 딱 봐도 저예산이잖아요? 저예산인데 사람들의 재미를 끌어들일 수 있는 건 결국 스토리라 마지막에 그렇게 재밌는 반전을 했죠. 그렇게 했을 때 더 보는 맛이 있을 것 같았어요.
-반전과 관련해 여자친구가 레즈비언이다, 여자친구가 사실은 산이다 이런 분석들이 나왔지요.
그러니까요. (웃음) 이렇게까지 철학적인 걸 담은 건 아니었는데, 한 분이 심오하고 우주적인 걸 해석해서…. 저는 그렇게 맡기고 싶어요. 저희도 뜻을 뚜렷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느낌이다, 어느 정도 암시만 준 거였어요. 각자 나름의 해석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두고 싶어요. 어차피 정확한 결말은 없는 거거든요.
-그 곡 덕분에 헬로비너스 갤러리에서 산이 씨 인기 많아요.
아, 그래요? 나라 양이 정말 정말 예쁘게 잘 나오고, 바쁜 와중에 열연을 해줘서 아직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제목이 웹툰 제목과 똑같은데 그것과 상관있나요?
아, 그것도 봤어요. '웹툰 제목이랑 똑같네요' 이런 글들이 많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웹툰은 몰랐어요.
-JYP 때 피처링을 많이 하셨어요.
JYP 때는 제 이름으로 곡을 마음 대로 낼 수가 없었어요. 회사와 상의해 내는 건데, 일단 음반을 계속 내지 못했던 거죠. 맞는 곡이 나왔어야 하는데 맞지 못하니까요. '맛좋은 산' 내고 나서는 계속 못 냈어요. 창작은 해야 하는데, 자꾸 쌓이는데 못 하니까 여기저기 그냥 피처링을 다 했어요. 아무거나. 풀기는 풀어야 하니까요. 이 사람도 하고 저 사람도 하고. 하고 싶은대로 다 했어요.
브랜뉴 뮤직에 들어와 계약할 때 제 음악 꾸준히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이 들어갔어요. '산이로 한두 번 던졌는데 잘 안되네? 뒤로 가 있어' 이게 아니라 '차트에 상관없이 제 음악만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했는데 라이머 형이 '너는 아티스트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감정선 그대로 따라서 하고 싶은 거 꾸준히 하게 해줄게'라고 흔쾌히 말씀하셔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번 곡은혼자 노래까지 다 하셨더라고요.
라이머 형이 곡을 들으시고 '이건 그냥 네가 해야겠다' 하시더라고요. 제가 이걸 잘 살릴 수 있다고요. '내 얘기는 진~짜 아냐' 중간에 이런 연기같은 게 들어가요. '그건 다른 사람이 살리기 어렵고, 네가 할 수 있으니 네가 해라' 하셔서 제가 하게 됐습니다.
-7월 30일에 티저 사진을 트위터에 실수로 공개했다고 나왔는데, 그거 실수 아니죠?
아~. 아유 그건 회사 마케팅이죠. 하하하.
-그럴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별로 이슈도 안 되더라고요. 하하하. 이슈가 되면 '제가 실수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했을 텐데 이슈가 안 되어서….
-산이 씨를 예전부터 좋아해 주시던 분들은 이번 곡에 대해 '너무 대중적이다, 사랑노래만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해요.
저는 왜 사랑노래에 반감을 가지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하는 게 사랑이잖아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분명 사랑을 하시고 사랑 노래에 울어도 봤고, 행복하기도 했을 텐데 왜 사랑노래 하면 '저건 힙합이 아니야'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빌보드에서도 잘 되는 노래는 사랑노래가 많아요. 항상 갱스터 힙합을 해 '널 쏴 죽여 버릴거야' 아니면 '네 엉덩이를 흔들어 가슴을 내밀고 다 벗어재끼고' 이런 노래들만 1등을 하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 많은 노래들이 달콤하고 대중적인 게 많아요.
일단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진태 형도 대중적인 행보를 많이 하시니까. 그래서 저는 두 개를 같이 잘 병행하려고 해요. 대중적인 것이라면 대중적인 것, 힙합적인 거라면 힙합적인 거. 그런데 제가 힙합적인 것만 했을 때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공연도 안 오고, 앨범도 사지도 않으시고 글만 써요. 진짜로. 공연 오는 건 다 여자들이에요. 그분들이 빠순이라고 욕해도 우리는 결국 (여성팬) 이분들이 더 고마워요. 이분들 때문에 공연이 되고, 페이가 들어오니까. 제가 열심히 힙합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족시켜서 그분들이 '산이 최고다'라는 말을 하시게 됐는데, 공연 보러오지도 않고 글로만 '산이 최고다' 하시고. 제가 내년이면 나이가 서른인데 그건 저를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요.
-행동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죠. '산이 선생님 옛날로 돌아와요' 이런 분들도 당연히 계시지만 대중적인 제 노래 듣고 '제 이야기 같아서 최고예요', '정말 좋아요. 아침마다 힘이 돼요', '저녁마다 퇴근하고 오는데 들어요'…. 거기서 감동을 받으시는 다른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럼 마니아와 대중들 사이에서 고민한 적은 한번도 없으셨나요?
항상 고민이죠. 많죠. 둘을 만족시키는 음악이 정말 최고의 음악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는 사람 얘기'는 일부러 제가 잘 되려고, 대중적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아까 물어보셨지만, 제 이야기잖아요. 정말 제게 있었던 일, 제 감정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에 그 노래에 대해 떳떳하고. 제가 만든 곡을 라이머형에게 들려 드렸는데 이 곡 들으시고 '산이야 이 노래가 첫곡으로 제일 좋을 것 같아' 하셨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거예요.
-이게 사실 산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닐까 생각하는 팬도 계시고요.
글쎄요. 저도 제 안에 색깔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원래 저는 첫 싱글을 되게 강한 노래로 내려고 했어요. 19금이었고, 자살하는 내용의 정말 이상하고 강한 곡이었어요. 작품성은 좋았던 것 같은데 라이머 형이 이 곡은 첫 곡으로는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했어요. '네가 JYP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음반을 내는 데 이게 차트에서 안 되면 나중에 내가 네 음악을 홍보할 때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라이머 형은 사장의 위치에서 비즈니스적인 차원을 생각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곡 가지고 다섯 번 정도 미팅했어요. 형을 설득시키기 위해서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JYP에서 음악 한다고 나왔는데 산이 또 달달한 사랑노래 하면 제가 또 얼마나 욕을 먹겠어요, 형' 그랬는데도 일단 라이머 형이 '이 곡만은 절대 첫곡으로 안 된다'라고 못 박으셨어요. 아마 앨범에 나올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잘 됐으니 라이머형에게 솔직히 감사드리죠.
-JYP 나오시고 싱글을 주르르르륵 내셨잖아요. 그거 보고 정말 음악에 대한 갈증이 엄청났나 보다 했어요.
그럼요. 준비한 거 되게 많아요. 또 하나 나와요. 12일에. '블랙 슈트(Black Suit)'라는 곡인데 이 곡은 아는 사람 얘기 듣고 '아 산이 뭐지? 저렇게 가는 거야?' 하셨던 마니아 분들에게 되게 좋을 것 같아요. 블랙 슈트는 '딱 맞는 옷을 입었다'를 비유해서 한 건데, 힙합에 뮤직비디오도 되게 멋있게 나왔어요. 제가 '블랙 슈트' 같은 곡 내서 멜론 10등 안에 들면 이런 곡 계속 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거죠.
-라이머 씨가 첫 곡에 대해 '이건 안 된다' 이렇게 직접 디렉팅을 하셨는데, 앞으로도 그러실까요?
그건 첫 곡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첫 곡이었기 때문에 그게 중요했어요. 제가 JYP를 나오고 난 후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어요. '쟤가 될 까 안 될까'. 그런데 오히려 매니아들이 '쟤는 끝났어'라고 많이 그랬어요. '산이는 클라이막스가 지났어', '쟤는 끝', '더는 안 돼' 이렇게 말하는 시점이었죠. 저도 그렇고 라이머 형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쟤가 어떻게 될까. 내가 보기엔 끝난 것 같은데' 그런 시점이어서 첫 곡을 정하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다행히 '아는 사람 얘기'가 정말 잘 되면서 다시 뭔가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되었죠.
-왜 브랜뉴뮤직으로 오셨나요? (디시이용자 '맫씨맫씨')
생각나는 게 저는 브랜뉴뮤직 밖에 없었어요. 여기 말고는 다른 곳이 없었어요. 저와 가장 색이 맞고, 버벌진트 형과 스윙스 형도 있었고. 같이 오버클래스에서 언더 활동했던 친구들이니 당연히 여기였죠.
-JYP 나오기 전부터 이야기는 돼 있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JYP에서 나오는 거로 이야기되고 조금 지나서 제가 라이머 형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 후 한 두달 정도는 JYP에 있었죠. 뉴스가 나와야 하니까요. 라이머 형도 흔쾌히 좋아해 주셨죠.
-보통 먼저 찾아가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JYP도 그렇게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요. 제가 원하는 거면 제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끔 자신이 짬밥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부탁을 필요로 하는 사람임에도 '상대 쪽에서 먼저 인사하러 오지 않는데 내가 굳이 걔한테 갈 필요 있나' 이런 마인드를 가진 연예인분들을 몇 번 봤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허슬러 타입이에요. 제가 가서 구하는 편이에요. 무슨 일이든지.
-JYP 나오게 된 게 스윙스 씨와 빈지노 씨의 활동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그런 건 아닌가요?
그건 예전부터 많이 받았어요. 오버클래스에서 제가 제일 늦게 들어가서 제일 먼저 빛을 발했어요. 메이저 3대 기획사에서 데뷔해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맛좋은 산'도 매니아 분들에게 기대치가 있어서 그랬지만 망한 것도 아니고 중박 정도는 했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에게 알리는 정도로. 물론 JYP 기준에서는 그건 진짜 망한 건데, 솔직히 지금 나오는 신인들 봤을 때 그 정도 하면 되게 잘 한거거든요. 나쁘지 않게 한 거?
그리고 나서 저는 2년 반을 쉬었어요. 그 사이 버벌진트 형도 잘 되어서 지금 최고고, 어반자카파의 조현아도 그렇고, 스윙스는 언더에서 자기 할 거 하고 있고, 웜맨 형도 긱스 만들어서 잘 되고, 저는 정체되어 있는데 - 물론 열심히는 하고 있었어요 - 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올라가는 걸 보고 축하는 하지만 솔직히 견디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난 뭐하고 있는 거지? 난 정말 실력이 없는 건가?', '나는 뭔가 안 되는 건가?' 그게 자괴감이 있었지요. 그런 것들이 자극이 되기는 했지만 제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어차피 회사에 있었고, 음반을 낼 수는 없으니까 계속 바위에 계란 던지는 식으로 곡을 만들어 매일 회사에 보냈어요. 곡을 회사에서 받아야 제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회사는 산이 씨의 곡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내지 않았을까요?
그냥 JYP 색이나 여러가지?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한 번 한 게 잘 안됐기 때문에 다음 기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완벽한 곡을 고르려 하다보니까 그게 어려워졌던 것 같아요. 누구나 들으면 좋을 노래를 만들어와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노래는 1년에 한 개 나올까 말까 하잖아요. 만들기도 쉽지 않고요. 잘 안 나오죠.
-이건 기분 나쁘실 수도 있으실텐데, '리즈시절'이라는 단어 아세요?
리즈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예요? 뭔지는 아는데 게임에서 나오는 거예요?
-아, 예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가 있는데 그 팀에서 활약은 잘 못했지만, 맨유 바로 전에 있던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팀에서는 되게 잘했어요.
대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앨런 스미스 리즈 있을 때 잘했는데, 리즈 시절에 잘했는데 하다가 '리즈시절'이 잘 나가는 시절이라는 뜻이 되었어요. 그런 식으로 '산이'라는 이름이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리즈시절'과 같은 뜻으로 사용됐었잖아요. (디시이용자 'Unvoice')
그렇죠. 그런데 이건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아요. 외국 아티스트들도 보면 다 가사에 '사람들이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를 원해 그런데 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거든' 이런 게 있어요. 항상 예전을 잊지 못하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게 산선생님과 랩지니어스인데, 사람은 바뀔 수밖에 없어요. 제가 계속 그 상태로 있을 수는 없거든요. 점점 바뀌어 나가면서 새로운 색을 좋아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산이가 변했네' 하며 떠나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계속 좋아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저는 그대로 산이에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거네요. 언더에서 오버로 가기 위해서는요.
언더에서 오버가 아니라도, 계속 언더에 있더라도 음악색깔이 바뀌면요. 그런 면에서 '예전으로 돌아가 줘, 왜냐면 예전에는 나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몰랐는데' 그런 것도 어떤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박진영 씨와는 사이 좋나요?
진영이 형과 사이 좋아요. 이번에 진영이 형이 '사랑이 제일 낫더라'라는 곡을 선공개했는데, 그것도 방송 활동 한 번 정도는 같이 할 거예요. 원래 개코 형이 랩을 했는데 제가 무대로 가서 제 가사로 할 것 같아요. 사이 좋아요.
-얼마 전 디스전이 일어났을 때 저희 사이트에서 '아는 사장 얘기'라는 곡을 내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웃음) (디시이용자 '이메리', 'ㅇㅂㅇ★')
그게 디시에서 나왔어요? 그거 보고 다 빵 터졌어요. 며칠 전 JYP에 놀러 갔는데 사람들이 다 알더라고요. 심지어 그거 만들어 'SNL 코리아'에서 하라고 했어요. 하하하.
-피처링 박재범 해서. (웃음) (디시이용자 '홍횽흥')
네. 저도 빵 터졌어요. 정말 웃겼어요.
-생각 없으셨어요?
제가 정말, 진짜 진영이 형과 많이 친해서요. (웃음) 그런데 '형, 형 이거 봤어요? 이거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아니에요. 제가 정말 존경하고, 가끔은 무서워하는 형이지요.
-JYP에 있을 때 제일 좋았던 게 수지와 아는 사이 된 거냐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웃음)
어우~ 그것도 좋았죠. 제가 개인적으로 연예인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수지는 본 연예인 중 가장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그거 이상은 아니에요. 같은 회사에 있다 보면 아무리 예뻐도 동생으로 보여요.
-얼마 전 수지 씨와 산이 씨가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산이 씨가 되게 흐뭇한 표정으로 수지 씨를 지켜보는 플짤이 유명했죠.
저도 봤어요. 산이 부엉이설 해서 '오우~' 이상한 소리 낸다고. (웃음)
-다시 진지해진다면, 왜 디스전 때 디스곡 안 냈나요? (디시이용자 '바바', '히비리비힣', '이건누클래식')
저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어요. 결국은 이센스와 아메바가 싸우고, 스윙스와 쌈디는 개인적인 일을 공개하며 '너 이랬잖아' 하는 건데, 저는 그 친구들과 일단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엄청 친해서 어울려 다닌 건 아니고. 남 싸움에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테이크원이 '산이 버벌진트도 변했다' 그렇게 말했죠. (디시이용자 '슈프리머', '싕스')
그것도 좀 웃긴 게, 저는 한 곡 했어요. (웃음) 진태 형은 한 서너 곡 하고 돈도 많이 벌었잖아요. 나는 '아는 사람 얘기' 한 곡. (웃음) 그전에 '랩서커스' 해서 뮤직비디오 만들어 무료로 내놓고, 빅보이도 그렇고. 그러다가 '아는 사람 얘기' 한 개 낸 거예요. 그걸 가지고 그래~. 하하하. 만약 테이크원이 뭔가 심하게 들어오거나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었으면 디스를 했겠지만, 굳이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테이크원이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디시이용자 'ㅇ부부부ㅜ')
저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그 음악 하나 했다고 제가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블랙 슈트'가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저 사람들에게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디스전이 갑자기 훅 떠올랐다가 훅 사라진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의 관심이 다 그래요. 싸움이 일어나면 '야 싸워~ 때려~' 이러지만. 일단 싸울 때 감각이 없어지잖아요. 맞아도 아프지도 않고. 대놓고 싸우는 거예요. 이성을 잃은 거죠. 그럴 때 '야, 죽여', '싸워', '너는 왜 안 싸워? 너도 싸워' 이렇게 되는 건데, 이게 나중에 가면 판도 지저분해지고, 이제는 '뭔가 좀 이상한데?', '아니지'않나?', '재미도 없다' 슬슬 빠져요. 그리고 터진 사람들은 일주일 후 아픈 게 부어오르는 거죠. 그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저도 디스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고, 디스로 커왔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아요. 팬도 생기지만 헤이터도 생기고, 이슈도 생기지만 책임도 따르게 돼요. 그래서 디스전을 할 때는 명분이 있고, 내가 정말 감정이 있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사람들이 '산이 왜 안싸워? 너도 싸워', '테이크원이 네 이야기 하는데? 너도 싸워' 이런다고 제가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번 디스전은 누가 봐도 몇몇이 확실히 다쳤어요. 그런데 과거 피타입, 산이 씨, 제이켠 씨가 한 디스전은 세 분 모두에게 도움이 됐어요.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나 득이 되는 디스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시이용자 'ŁØAÐ')
디스전을 해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면 저도 당장 디스 하겠지요. 하나 잡아서. 나에게 득 되는데. 그런데 꼭 득이 되지만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커리어를 잃게 되고, 랩을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어요. 말 그대로 디스를 해서 이득이 되면 저와 사이가 좋아도 JYP를 디스하겠지요. 최고의 이슈를 받고, 실시간 검색도 올라가고, 뉴스에도 나오고, 다 산이와 JYP만 이야기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무분별한 거예요. 결국엔 책임이 따르게 돼 있어요. 만약 제가 JYP와 안 좋게 나와 JYP를 디스했다면, 저는 앞으로 제 가수 활동에 지장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제 책임인 거예요. 이게 용감한 건지, 무책임한 건지, 무분별한 건지는 구별하고 해야지요.
-이번 디스전은 팬들이 부추기는 것도 많았다고 생각해요.
컨트롤이라는 '익스큐즈'를 달고 그 이름 아래 '지금은 디스해야 해', '무조건 싸워야 해'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원래 의미는 그게 아니라 경쟁을 하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건 내 안에 있던 걸 까발리는 게 됐어요. 너 전에 이랬잖아, 폭로전.
-그걸 팬들이 부추겼다는 거죠.
심심하니까. 남 싸우는 건 재밌거든요. 자기가 다치지는 않거든요. 나중에 '재밌었어' 하고 뒤로 빠지면 돼요.
-팬들의 부추김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혹시 하셨나요?
원래 이게 힙합 게임이에요. 평화스럽다가 가끔 치고받고 싸워서 몇 명 떨어지고, 새로운 애들 나오고. 이런 식으로 미국 힙합도 발전했죠. 사실 저한테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왔어요. '산이 형은 왜 게임에 끼지 않아요?' 이 정도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넌 래퍼도 아니야 개XX야'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사람들도 있었어요. 자기 심심하니까 너도 빨리 껴서 판 크게 만들어 재밌게 놀아보자, 불 질러보자, 이미 불났으니 휘발류 들이 붓자 이거예요. 다 태워버리자는 거예요. 끌 생각은 안 하고. 끄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자기는 다치지 않고 보는 사람이니까. 너 죽여 저 XX가 나쁜 XX야. 쟤가 너 욕했어. 그러는 거죠. 너무 과하게 그러는 사람들은 '쟤 뭐지?' 그런 식이었죠.
-얼마 전 한 공연에서 '망했다는 그 소리에, 회사빨? 아직도 그게 회사빨이라고 생각해?' 등의 가사가 담긴 랩을 하셨는데, 그거 듣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 바스코 형 앨범에 피처링 했던 곡인데 개사해서 불렀어요. 그렇죠. 스트레스가 많았죠. 속사정이라는 게 있는 건데 사람들은 그게 보이지 아니니까. 만날 산이는 회사빨, JYP빨 그러는데 막상 제가 받은 것도 없고. 그때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 VERSE를 좋아해 줬어요. 제가 처음으로 욕도 하고 강하게 나오니까 진심이 나온다고 하시고.
-욕을 해야 진심이 느껴지나? 하하하.
그러니까요. (웃음) 되게 좋아해 줬어요.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 반응이 좋으니까 제가 나중에는 랩들을 뭔가 설명하고, 해명하는 식으로 쓰고 있더라고요. 내가 지금 왜 안 나오냐, 이걸 일일이 구질구질하게. 예전에는 '야. 꺼져. 나 산이야' 이랬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내가 누구 탓을 하는 랩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걸 깨닫고 그런 랩을 안 했지요.
-안 그래도 초창기 산이 씨의 랩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없어졌었죠. '난 음악에 소질이 없나?' 회사에 60곡 가까이 냈는데 한 곡의 타이틀도 못 건졌다는 것에서 '나는 음악에 소질이 없구나, 내가 못하는구나'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럼 랩 지니어스는요?
자괴감이 드는 거죠. 계속. 한 때는 박수받고 사람들이 '잘해요' 그랬지만 나중에 계속 내려가 공연도 없고, 스케쥴도 없고, 공연 어쩌다 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페이 받고, 여기저기 피처링 해달라고 하면 '네. 얼마만 주시면 할게요' 이런 식으로 제가 제 가치를 싸구려로 만들고, 더는 자존심도 없고, 라디오 나가서 바보같이 웃기는 거 막 하고, 점점 제가 쌈마이가 되는 느낌이고…. 나중에는 '나 원래 쌈마이었구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됐어요. 음악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고. 뭐가 좀 나와야 피드백이 있는데 나오는 건 없고 다 안 된다 거절만 되고. 그러니 난 안 되는 놈이구나 이렇게까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바닥을 쳤어요. 제가 가라앉는 게 보이더라고요. 힙합 공연 가서도 후배들이 인사도 안 했어요. 저는 그냥 망한 케이스로 보는 거예요. 언더에서 잘 나가다가 회사 들어가 안 돼서 망한 케이스, 이렇게 사람들이 보기 시작하고. 저는 뒷얘기가 들리잖아요? 저와 친했던 사람들이 '산이 쟤는 끝났어, 망했어 끝' 이렇게 말하는 게 들리니까 많이 다운돼 있었죠. 뭘 해도 자신감은 없었고요.
-미국에 돌아갈 생각은 안 했나요?
하지만 전 포기는 안 했어요. 그런 순간이 한순간 있었던 거지. 그럴수록 이 악물고 '봐라' 이런 식이었죠.
-이번에 성공해서 그렇게 뒷말했던 사람들 연락 많이 올 것 같아요.
어우, 연락 많이 하죠. 난 다보여. 너희가 나에게 뭔 얘기 했는지 다 알아. 연락 와서 '산이야 형이야 축하한다. 이번 공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저는 이미 이 사람 다 알아요. 비즈니스 관계는 유지할 거예요. 단, 인간적인 부탁을 할 때 제가 그걸 들어줄 이유는 하나도 없죠. 저는 제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알았어요. 제가 정말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제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싫은 내색 하나도 안 하고 녹음실 봐주고, 믹싱해주고, 내가 비트 한두 개 들고가도 그거 가지고 밤새 작업해주고 같이 고민해준 사람들이 누군지 저는 다 알아요. 나머지는 다 가짜, 비즈니스예요.
-이 회사는요?
이 사람들은 아니에요. 라이머 형은 오히려 저를 믿어준 사람이죠. 주위에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산이가 될까? 쟤는 끝난 것 같은데' 해도 믿어주고 저를 데리고 왔으니까요.
-그래서 빅보이로 불러달라는 건가요?
네. 산선생님, 랩지니어스 다음에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빅보이는 원래 예전에 썼던 곡인데, 그 곡을 쓸 때가 굉장히 힘들었을 때예요. 저 자신을 일으키기 위해 썼던 곡인데 다행히 많은 분이 진심을 봐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마음을 열고 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뭐야, 쟤 오글거려' 이런 사람도 있는데, 많은 분이 마음을 열고 '산이가 이런 고통을 가지고 있었구나' 안아주셨기 때문에 저도 앞으로 그런 분들을 위해 힘이 되는 음악, 여러 가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래퍼분들도 예능에 자주 나오시는데, 산이 씨도 예능 나오실 계획 있나요? (디시이용자 'ㅇㅇ')
불러만 주시면 땡큐죠. 제가 잘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런 것에 대해 반감이나 그런 것 없어요.
-억지로 소속사에서 시켜서 하기 싫어도 나가실 건가요?
억지로 나간 적도 없었고요, 하면 '네 좋아요' 그러고 나갔던 것 같아요.
-긍정적인 성격이신가 봐요.
성격도 긍정적이고, 일단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엔터테이너지, 선생님이나 철학자라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려는 사람은 아니에요.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있는 거지 제가 더 높은 사람이 되고, 괜히 멋있는 척하고, 뭐 있는 것처럼 하려는 그런 것은 없어요. 오히려 제 음악을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예능과 음악은 분리할 수 있어요. 제일 좋은 예가 (조)권이 같은 경우. 예능에서 재밌게 잘하지만, 음악할 때 애절한 다른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그게 프로인 것 같아요.
-지금 1위 하신 것 부모님도 아세요?
그럼요. 엄마아빠도 매일 체크하죠. 엄마아빠가 오히려 더 많이 체크해요. '산이야 이런 안 좋은 글 올라왔다. 봐봐'.
-그럼 가슴 아프지 않아요? 부모님께서 나를 욕하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요.
어쩔 수 없는 거겠지요. 다른 연예인 부모님들도 다 보실 테니까요. 저는 특별히 많은 건 아닌데, 엄마아빠도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거겠지요.
-부모님이 음악 활동 많이 반대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죠. 대학 좋은 데, 4년제 가서 음악 한다고 그러니까. 거기다 저희 집이 특별히 유별난 집도 아니고, 그냥 애틀란타에 있고,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데 음악 한다니까 '정신차려, 그건 네가 고등학교 때 그냥 연예인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현실을 봐. 너같이 할 줄 아는 애 정말 많아. 네가 뭐가 되겠니?' 그렇게 하셨죠. 그런데 저는 도전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서른 살 되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어요?
많이 했죠. (앨범 내고) 2년 반 겨울 됐을 때. 그때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어요. 2013년 초, 2012년 말. 처음으로 정말 많이 후회했어요. '이래서 엄마아빠가 공부하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변호사 되고 의사 되라고 하는구나' 했죠.
-희망의 빛이 안 보일 텐데.
안 보였죠. 당연히 회사는 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곡은 나오지 않고, 통장 잔액을 봤는데 2만 원이 있는 거예요. 2013년 1월 1일 술을 잔뜩 마시고 한강을 혼자 걷는데 이제 나이는 스물 아홉이 되었고, 엄마아빠는 아직도 고생하시고, 점점 늙어가시고, 힘드시고…. 엄마아빠 4년째 보지 못했어요. 성공하기 전에는 안 갈거라고 했거든요. 금의환향 하고 싶어서. 너무 막막했죠. 아, 그냥 직장 다닐걸.
-대학도 좋은 대학 나오셨고.
나쁘지 않지요. '차라리 영어강사를 했어도 이거보다 나을걸. 이게 뭐야 돈 하나도 못 벌고' 했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에 정말 앞길이 깜깜하더라고요. 하여튼 되게 안 좋았어요. 심적으로 많이 우울했던 것 같아요.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텐데요.
제가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인지 이걸 이겨내려고 하지 거기 빠져서 오래 있지는 않았어요. 정말 음악이 제 구세주가 된 거죠. 그 경험들을 음악으로 풀어냈으니까요. 아티스트로서는 우여곡절이 많을수록, 내 인생은 불행할지 몰라도 곡 자체는 정말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아는 사람 얘기'도 그때 나왔었고요.
-가수들은 노래 한 곡 낼 때마다 스완송이네요. 진짜.
아하… 이 노래가 또 나온다고 해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는 않아요. 에미넴 같은 경우도 좋은 곡들이 많은 게 삶의 우여곡절이 많잖아요. 삶이 평탄하면 결국 나올 수 있는 건 뻔한 것 같아요.
-삶이 부유해지면 래퍼들의 노래는 재미가 없어진다고들 이야기하죠.
그럴 수도 있지요. 진짜. 배고픈 것보다는 아니겠지요. 눈빛이 덜 살아 있겠지요. 편해지니까요.
-그런게 두렵진 않나요?
두렵죠. 그건 정말 매일 일깨워야 할 것 같아요. 겸손해야 하는 것 그리고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것이요. 조금 됐다고 가사 한줄한줄 막 쓰려고 하지 않고요.
-산이 씨 노래가 에미넴 노래를 많이 연상케 한다고 해요. (디시이용자 'ㅇㅇ')
에미넴을 제가 워낙 많이 좋아해요. 지금도 롤모델이고.
-너무 많이 영향을 받아 냄새가 강한 게 장점은 아니라고 하죠.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다른 노래 들어보면 다른 사람스러운 것도 있어요. 아무래도 내가 '이 사람처럼 하고 싶다' 해서 만든 곡도 있거든요.
-빅보이는 에미넴, 아는 사람 얘기는 긱스 같다고들 하죠.
긱스 노래는 아무래도 느낌이 '오피셜리 미싱유'와 비슷해서 그런 거고, '러브식'도 비슷한 과예요. '불행했으면 좋겠다'가 에미넴 느낌이 많이 나서 그때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에미넴은 어떤 점이 가장 좋으세요?
일단 감정이 좋아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에미넴의 가사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에미넴이 랩할 때 표출하는 감정들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요. 저도 에미넴의 감정을 가장 좋아하고요. 여러 가지 색이 나요. 장난스러움, 분노 이런 것들이요.
-혹시 에미넴 말고 다른 래퍼의 영향을 받기도 했나요?
저는 릴 웨인도 정말 좋아해요.
-가사 쓸 때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디시이용자 'ㅇㅇ')
솔직히 루트가 뻔해요. 다른 사람의 작업물 혹은 책이나 영화 같은 거.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이죠. 아니면 여행, 경험. 딱 이거예요. 제 라이프사이클이 단순해요. 일 아니면 연습. 아니면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영감 얻는 것. 그래서 책과 영화 많이 보려고 하고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작업하고, 집에만 있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해요. 그러면 뭔가 일이 생기니까 해프닝에 대해서 제가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단순하네요.
되게 단순해요. 일, 연습 아니면 곡 만들기. 딱 이거예요.
-재미없진 않아요?
이게 제일 재밌어요. 저는 노는 것도 일이 되니까요. 클럽 가고, 술 마시는 것도 일이 되는 거예요. 요즘 무슨 음악이 나오나 생각하며 춤추고 놀면 그게 연습도 되고요.
-그렇게 매순간 음악을 생각하는 게 래퍼들의 기본자세여야 하나요?
모든 직업의 자세가 아닐까요? 성실한 거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숨 쉴 틈은 만들어 두잖아요.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산이 씨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고, 그냥 24시간 노래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많이 그래요. 음악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뭘 하나를 보더라도 '저기서 뭘 건져낼 수 있을까' 생각해요.
-누가 가끔 그게 괴로울 때가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건 전혀 없나요?
괴롭기도 하죠. 왜 안 괴롭겠어요. 안 나오면 괴롭죠.
-그것보다는 '내가 너무 이 세계밖에 모른다' 이거죠.
솔직히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바보가 돼요. 어쩔 수 없이 되게 멍청해져요. 저도 원래 이렇게까지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다른 분야에 문외한이 되어요. 이것만 집중하고 이것만 보기 때문에. 남자라면 전구도 갈 수 있고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진짜요? 전구 못 갈아요?
예를 들어서요. 뭔가를 해야 할 때 못해요. 예를 들어 타이어 펑크가 나면 못 갈아요. 이 직업은 또 누가 항상 해주고, 매니저가 챙겨주고 그러다보니까 혼자서 못하는 게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게 단점이에요. 저는 왠만하면 제가 하려고 하는 편인데. 점점 문외한이 되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본인이 쓴 가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면요?
많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돌아간 힘 저축하지 않았거든' 이게 있어요. 이건 영화에서 본 거예요. 어떤 영화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바다에서 쌍둥이 형제가 누가 더 멀리 가나 수영시합을 해요. 그럼 항상 동생이 이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형이 이긴 거예요. 빠져 죽을 수도 있는데 더 멀리 간 거예요. 동생은 무서워서 중간에 멈추고는 '형 어디가!' 하고요. 나중에 '형, 어떻게 해서 날 이길 수 있었어?' 물어보니 '저축할 힘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갔다'라고 해요. 죽을 작정하고 간 거예요. 거기서 저도 영감을 받아 내가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다시 살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저축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갔다고 말 한거죠. 그때는 다 내려놨었으니까요. (이야기 속 영화는 '가타카'다)
-얼마 전 리드머 필자들이 라임이 훌륭한 래퍼, 리듬감이 훌륭한 래퍼를 이야기할 때 산이 씨가 언급됐어요. 그런 산이 씨가 생각할 때 라임이 훌륭한 래퍼, 리듬감이 훌륭한 래퍼는 누구인 것 같아요?
라임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화나나 피타입 이런 분들이 최고기는 해요. 장인이죠. 순수 언어의 장인. 언어를 가지고 마스터하는 사람들. 그런데 제가 추구하는 방식은 조금 달라요. 저는 아무리 라임이 좋아도 그 라임을 맞추느라 딜리버리가 깨지는 건 안 하려고 해요. 문맥상 라임을 맞추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을 '이! 렇게 말!하는 것'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들릴 때 이상하게 들리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최대한 말하는 것같이 하려고 해요.
리듬감은 뭐 '다이나믹 듀오'요. 어렸을 때도 최고여서 만날 듣고 자랐는데, 지금까지 그 실력을 계속한다는 건 피나게 연습한다는 거거든요. 이렇게 못 해요. 대부분은 '옛날에 잘했던 사람이고 지금은 좀 촌스럽네?' 이렇게 되는데 둘은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도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럼 같이 작업하고 싶은 래퍼들이 있다면요? (디시이용자 '생수', 'ㅇㅇ')
음… 현재 생각이 안 나는 거 보면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너무 오래 굶었기 때문에 아무 파트도 남에게 주기 싫어요. 제가 다 하고 싶어요. '아는 사람 얘기'도 제가 노래하잖아요? 옛날 같았으면 '아, 형 저 노래 못해요 안 돼요. 이건 무조건 노래하는 사람이 해야 해요. 저한테 어울린다고 해도 안 돼요. 다른 사람이 해야 해요' 그랬을 거고, 불안해했을 거예요. 유명한 사람이 피처링을 하면 노래가 더 잘 될 가능성이 많잖아요. 요즘 범키 잘 됐으니까 '범키 무조건 껴야 해요. 피처링 범키' 이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 상관없어요. 지금 저는 제가 다 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 굶어서 제가 다 먹고 싶어요.
-그런데 노래 되게 잘하시던데요.
요즘에는 못 하는 사람도 (각종 장비를 가리키며) 이게 있기 때문에 다 잘해요. (웃음)
-앞으로도 그럼 계속 혼자서?
그렇지는 않아요. 이번 첫 곡만 그랬던 것 같아요. 다음 곡은 같이 해요. 처음 말하는 건데, '블랙 슈트' 다음에 제 미니앨범 선공개곡으로 곡이 나가는데 그건 셋이서 해요. 버벌진트와 스윙스.
-우와 오버클래스네요.
네. 오버클래스 그렇게 해서요. 2008년도에 하고 처음이거든요. 5년 만에 하는 거예요.
-오버클래스 앨범 기대하는 분들이 좋아하시겠네요. 세 분이 한곳에 모였으니 뭔가 작업물이 하나 나오겠구나 했거든요.
네. 근데 아쉽게도 대중적이에요. 으하하하하. 2008년처럼 그런 힙합은 아니에요. 그래도 노래 자체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오버클래스 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디시이용자 '내주둥이는찰..')
조현아 같은 경우는 어반자카파 잘 되서 잘하고 있고, 원맨형 같은 경우는 긱스 만들어 잘하고 있고, 솔직히 수면 위에 올라온 사람들은 그정도 있는 것 같아요.
-수면 아래 있는 분들이요. (웃음)
아, 리미(Rimi)도 아마 웜맨 형과 그랜드라인에서 계속 준비하고 있고, 제피(XEPY)는 제 친구인데 계속 블락비나 원더걸스 것도 작업했었고, 이번 제 앨범에도 참여하고, 조PD 형도 참여하고. 계속 프로듀서 하고 있어요. 다 자기 활동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해체한 건 아니죠? (디시이용자 'Logicider')
해체는 안 했어요. 그런 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계속 '야, 모임 한 번 가져보자' 그래요. '오버클래스 컴필레이션 앨범 한 번 또 만들어보자 이제는 클래스가 달라졌으니까' 이렇게요. 예전에는 언더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좀 더 커졌잖아요. 예전 무브먼트 처럼 재밌는 그림을 저희가 수면 위로 올릴 수 있기에 정말 하고 싶어요. 얘기가 오가는 건 사실이에요.
-크루시픽스 크릭 씨에게 앨범 좀 내라고 전해달래요.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대요. 하하하. (디시이용자 '내주둥이는찰..')
형이 앨범 준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외국에 계시고 다른 생활을 하고 계셔서요. 저도 개인적으로 내면 좋겠어요.
-제가 몇년전 슈프림 팀과 인터뷰를 했을 때 '힙합은 1위를 해도 뭘 해도 마이너 장르로 취급하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저는 예전부터 선배님들이 이걸 만들어놓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세대는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거예요. 그분들이 씨를 다 뿌려놨는데 수확은 저희가 하는 거? 그래서 되게 감사해요. 힙합이 불모지인 때가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외국과 다르게 힙합이라는 음악이 게토나 달동네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외국 좀 왔다갔다하고, 외국물 좀 먹고, 돈 많은 집, 압구정이나 강남 이런 데서 시작된 거거든요. 이분들은 돈이 그렇게 부족한 집안이 아니었기에 돈이 안 되는 음악이라도 계속 했어요.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러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해 만들어놓은 건데, 지금은 많이 대중적이 되었죠. 아이돌들도 빠지지 않고 랩을 많이 하니까요. 저희가 수확을 잘 거둬들여 선배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고 감사한 마음도 있어요.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게 있어요.
-그때 가사 규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건 많이 완화됐나요?
아뇨. 너무너무 심해요. 방송 나갈 때는 특히 그래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범키의 '갖고 놀래'를 제 버전으로 했는데, 그때도 많이 바꿨어요. 음악에 욕을 쓴 것도 아니었는데. '술 한잔하고 싶어' 했는데 그게 섹스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하면 다 빼버려야 해요. 그런데 또 텔레비전에서 여자 연예인들 하의실종이라며 그런 의상 입고 나오는데 가사는…. 저는 그런 의상이 싫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가사에 대한 건 너무 심해요.
-그럼 어느 정도 타협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가사에 대한 야성이 사라지겠군요.
타협은 좋은 말은 아니고요, '이건 안 돼? 나 안 해, 언더에서만 할 거야'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는 거고, 저는 머리를 써서 다른 쪽으로 빠지는 거죠. '갖고 놀래' 가사 보시면 '가짜가 판치는 이 현대 사회에 진짜인 널 난 오늘 밤 대우하려 해. 천천히 다가갈게 기아 내리고' 이렇게 해서 현대, 대우, 기아를 다 집어넣었어요. 저는 이렇게 돌아가서, 원래 안 되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방송국에서 이런 거 보면 좋아하지 않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어퍼컷은 아니지만, 아예 안된다고 '나 안 해. 내가 가사 썼는데 왜 안 시켜줘? 방송 안 해' 이것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정문으로 공격 안 되면 옆에서 잽으로 공격해야죠.
-예전에 스윙스 씨가 '스윙스와 산이가 이센스와 프리스타일 배틀 했는데 스윙스와 산이가 개털 되어서 산이는 그 후로 프리스타일 안 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진짜인가요?
아, 그거 뭔지 알 거 같아요. 예전에 케이준네 집에 다 모여서 프리스타일을 했었는데, 그때 제가 프리스타일 하다가 집에 갔어요. (웃음) 새벽이었는데 집에 갔어요. 아우~ 이센스가 프리스타일 잘 해요.
-진짜 이제 안 해요?
가끔 깝죽대기는 하는데, 저는 프리스타일 쪽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더 뭔가 되게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사람들이라서요. 저는 조금 더 계산적이고 치밀한 느낌이고요. 그래도 연습해야죠. 계속해야 해요. '나도 방송 나가서 잘하고 싶어' 해서 프리스타일 연습했었을 때는 조금 되었는데, 안 하다 보니까 또 안 되죠. 연습해야죠.
-혹시 직업병은 있나요?
어… 영화를 한 편 봐도 그냥 즐겁게 마음 놓고는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아~ 재밌다' 이렇게 보는 게 아니라 저기서 내가 뭘 얻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예능을 보면서도요. 그게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지 않을까요? 제가 책 한 권을 봤는데 아무것도 끄집어내지 못하면 짜증 나는 것 같아요. 거기에는 분명히 재밌는 표현이나 신선한 단어들이 있었을 텐데. 그냥 넘겨 지나쳤으니까요.
-혹시 박진영 씨에게 공기 반, 소리 반 소리 들었나요? (디시이용자 '맫씨맫씨')
아니오. 그건 진영이형이 'K팝 스타' 하면서 더 강조됐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모든 가수는 노래하는 방법이 다 다르니까요. 스티비 원더도 그렇게 따지면 정식으로 발성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잖아요. 한 방식만 맞다고 하면 음악은 재미없는 게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음악은 답이 없어요. 1 1 이렇게 수학처럼 돼 있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받지 않고요. 저만의 답을 찾아야죠. 색깔을. 연구하고 탐험해야 하고. 가끔은 그 스트레스마저도 즐거워요. 제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재밌네요. 음악은 답을 찾아도 어렵고, 답을 못 찾아도 어렵고요.
계속 헤매는 거죠. 늪에 빠지기도 하고, 노다지를 캐기도 하는 거고. 산삼을 캐기도 하는 거고요.
-본인에게 그럼 이번 노래는 산삼인가요, 노다지인가요?
로또죠. 긁었는데 으헥!!! 777 나오는 거죠. 하하하.
-언제쯤 정산되나요?
3개월인가 4개월 후라고 알고 있어요.
-그럼 아직 실감은 못하겠네요.
아유~ 지금은 똑같이 통장에 몇십만 원 들어있어요. 별로 없어요.
-아직은 몬스터 마시고. (웃음)
돈 나오면 진영이형 가는 바를 가야죠. 하하하.
-정규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정규는 아니고 미니 정도가 10~11월 정도에 나올 것 같아요 그래도 7~8곡 들어가요. 그다음에 정규나 믹스테이프 큰 단위로 생각하고 있어요. 곡들이 정말 많아요. 이번에 나올 중요 곡들이 미니로 엮기 좋아서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인사말 남겨주세요.
시작부터 선보인 폭풍매너에 마치 랩을 하듯 리드미컬한 말솜씨의 산이는 그가 쓴 랩 가사처럼 유쾌한 사람이었다. 듣는 사람조차 한숨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끝은 유머러스했고, 웃음이 함께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산이라는 사람은 꽤 괜찮은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로 '돌아간 힘 저축하지 않았거든'을 꼽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시커먼 바다 아래로 끊임없이 가라앉던 그의 두 발은 결국 바다 밑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는 대신 '내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만화 속 명대사처럼 무릎에 반동을 주고 수면을 향해 힘차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다 내려놨기에 몸도 가벼웠을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벗어나 사람들이 지켜보던 땅으로 올라온 그는 이제 목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바닥난 힘을 충전하고 있다. "산이 어떡하니", "기운 차릴 수 있으려나" 웅성거리던 주변 사람들의 말은 바람이 되어 앞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등을 밀어준다. 이제 그의 보폭은 넓어지고, 속도는 빨라지며, 발걸음은 힘차다. 이제 전속력으로 뛸 준비가 된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그만의 트랙과 대중들의 함성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사진 = 박유진 기자(zinpar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