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뉴스1.
韓 대사 초치 '맞불'
이날 주한중국대사관 관계자도 카카오톡을 통해 일부 내신 기자들에게 "(싱 대사의) 베팅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말"이라며 "한국 정부의 입장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왜 한국 정부 공격으로 규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원칙 대응'에 대해 여전히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다.
주한 외국 대사관 중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운영하며 정부의 각종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 해당 대화방은 지난 8일 싱 대사가 이 대표 면담 당시 읽어 내려갔던 A4 5장 분량의 발언 전문을 배포하고, 이튿날인 9일 싱 대사 발언을 두둔하는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입장문 링크 등을 전달하는 창구로 쓰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뉴스1.
당시 왕 대변인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기자 문답 형식의 입장문에서 "싱 대사가 중국의 입장과 우려를 소개하는 것은 그 직무 범위 안에 있다"며 "현재 중ㆍ한(한ㆍ중)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尹에 "말참견" 막말도…
지난 4월에도 왕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대만 문제와 관련한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의 '부용치훼'(不容置喙)를 언급했다. 이에 외교부는 "국격을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이자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이례적으로 강한 수위로 항의했고 장 차관이 싱 대사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공개 초치했다.

지난해 6월 브리핑하는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그러자 중국은 한 달여간 정부 차원에선 극단적 표현을 아낀 채, 관영 매체를 동원해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났다", "윤석열 정부의 극단적 친미 정책으로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한 여론을 물밑에서 조장했다. 참다못한 주중한국대사관이 지난달 4일 "저급한 표현으로 우리 외교 정책을 치우친 시각으로 폄훼했다"는 항의 서한을 보냈지만, 중국은 관영 매체를 자제시키는 대신 "매체의 관점은 중국 국내의 민의를 반영한다"(왕 외교부 대변인, 지난달 8일)며 거들기에 나섰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한중국대사관이 민주당 측에 신임 대사 부임이나 당대표 취임 등 특별한 계기도 없이 '이 대표와 대사관저에서 저녁을 먹고 싶다'고 청할 때부터 이미 한국의 외교 정책을 대놓고 비난할 기회를 찾고 있었던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용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교수는 "한국 내정에 간섭하는 도발적 언행을 통해 내부 충성 경쟁을 위한 실적을 쌓고, 한국의 정치 지형을 교묘히 이용해 야당과 함께 윤석열 정부를 때리려는 중국의 공세가 한동안 계속할 수 있다"며 "다만 이런 행태는 안 그래도 심각한 반중 감정을 더욱 자극할 뿐이며 중국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야당을 더욱 수세로 몰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뉴스1.
"전랑외교는 백해무익"
외교가에선 "전랑외교의 선봉장으로 꼽히는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지난해 12월 말 취임하면서 올해부터 중국 정부 차원에서 정제되지 않은 공세적 메시지가 늘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싱 대사를 비롯한 중국 측의 무례한 발언은 결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롯해 중국 내부에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싱 대사는 지난 9일 이 대표와 면담에서도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는 이들은 중국 인민들이 시진핑 주석님의 지도하에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확고한 의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싱 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불거진 양국 갈등은 지난 4월 한ㆍ미 정상회담,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대중 외교에 집중하려던 정부의 구상에도 악재다. 박 장관은 친 부장과 지난해 1월 취임을 축하하는 통화만 했으며 아직 대면 협의는 못 했다. 코로나 19로 지난 4년 동안 중단됐다가 올해 재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ㆍ일ㆍ중 정상회의도 중국의 비협조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