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 중국의 비자 면제 정책 등 관계 개선의 청신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5년은 한·중 관계의 새로운 원년이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중국 특파원 출신 전·현직 언론인과 중국 전문가가 모여 한·중 관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나섰다. 지난 2일 중국 전문 계간지 한중저널이 주최하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아주일보, 차이나랩, 주한중국대사관의 후원으로 개최된 ‘2024 한중언론포럼’에서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중 관계, 외교·안보, 경제, 언론의 역할 등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첫 세션 주제 발표에서 홍인표 한중저널 편집인은 “최근 몇 년간의 한·중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2022년은 암중모색기, 2023년은 관계 개선을 모색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한 해, 2024년은 고위급 교류가 활발해지고 훈풍이 불기 시작한 한 해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인표 편집인은 “한·중 관계는 새로운 조정기로 진입했고, 해빙의 기반은 마련됐지만 여전히 각종 도전 요인이 잠복해 있다”며 “상호 존중, 갈등 현황 관리, 실질적 협력 확대 등 관계 안정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한·중 관계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개선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낙관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중 간 해빙 분위기에 대해 박민희 한겨레 외교 담당 선임기자는 “현 상황은 중국이 미·중 관계 속 미국의 동맹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전략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라며 “한국의 전략적 준비나 대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안보 분야의 한·중 협력에 대해선 “서로에 대해 과한 기대를 가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한·미 동맹이나, 북·중 관계 등 한계를 파악하고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세션 발제에 나선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한·중 관계에 대한 인식·기대·역할 차이를 언급하며 “지금의 한·중 관계는 ‘사건’과 ‘국면’의 차원이지 하나의 정책적 기조라 볼 수 있는 ‘구조의 차원’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기대치를 낮추는 게 좋다”고 분석했다. 한·중 관계 개선과 협력에 대한 ‘신중론’을 강조한 그는 “개선의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창원 파이낸셜 뉴스 논설위원은 현재 한·중 양국 관계가 휘발성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단기 비자 면제 등은 ‘사건’ 수준이지 ‘국면’ 차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또 “구조적으로 어떤 질서하에서 중국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은경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은 이어진 토론에서 “한·중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면 접점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면적을 넓혀야 한다”며 “양국의 공통 이익이 많지만 그만큼 상충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절대 쉽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박 차장은 최근 중·러 군용기의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침입을 예로 들며 “양국이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신호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해석이 나올 만한 일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중 경제 협력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오광진 조선비즈 이코노미조선 편집장은 ‘자본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1월에서 9월까지 한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순위를 보면 중국이 2위인데, 그 규모가 2022년과 2023년 두 개 연도를 합친 것보다 크다. 그런데 지난해 대미 수출 호조는 한국이 미국 내 FDI에서 1위를 한 덕이 크고 미국 역시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이득을 봤다. 이렇듯 한국의 대중 수출이 구조적 적자로 굳어가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중국 자본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게 오 편집장의 주장이다.
오 편집장은 “중국의 질적 변화 속에서 우리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그는 “기술 유출 방지 등 시스템은 갖춰야 하지만, 막연한 선입견은 버리고 더 열린 자세로 있는 그대로 중국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창원 논설위원은 한·중 경제 협력에 대해 “양국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봉합적 협력’과 ‘지속 가능한 협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2기 출범이라는 현상에 대응하는 협력은 일시적이고 협소한 수준일 것이고, 절대 패권의 약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협력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각자 자강(自強)을 추구하고 있는 한·중 간의 협력이 성사되려면 ‘상인 정신’과 ‘전략적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성훈 JTBC 국제팀 선임기자는 새로운 한·중 관계를 위한 언론의 역할로 ‘지중(知中)’을 꼽았다. 박성훈 선임기자는 “언론 보도와 현실 간의 인식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는 중국”이라며 “여기에는 중국의 보도‧정보 통제라는 외부적 요인과 기사 발제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의 반중 정서 등 내부적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팩트가 제대로 확인된 기사를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확인된 기사, 현장이 있는 기사야말로 ‘지중’을 위해 언론이 가야 할 길이자 달라지고 있는 한·중 관계에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은경 차장은 언론의 역할과 관련 한계점도 지적했다. 기자는 양국 관계에서 접점을 찾고 선을 이어줄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최근 중국의 ‘반간첩법’ 시행 등으로 현지 특파원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제한된 취재 자료로 기사를 쓰다 보니 왜곡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는 뜻이다. 박 차장은 또 특파원을 자원하는 인재가 부족한 상황을 언급하며 장기적인 인재 양성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희옥 소장은 중국에 대한 ‘의도적 오독’과 ‘해석 과잉’ 문제도 제시했다. 기자들이 프레임에 갇혀 자유롭게 보도를 할 수 없는 상황과 중국을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해 주관적 해석이 강해지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또 그는 ‘반중 정서’의 정치화와 한반도 이슈 과대화 문제를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맞는 외교를 하고 우리와 생각을 같이하는 국가(Like-minded country)를 물색하는 힘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