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에 들어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드라이브에 가속 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만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적극적으로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민주당이 입법 속도전의 1순위로 꼽는 것은 상법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재계 등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강행할 태세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난주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 내주 중에 상법 개정안 토론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며 “재계와 함께 중재안을 만들어 연내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재계 반발을 무마할 ‘당근책’으로 배임죄 완화 등을 고려하고 있다. 지도부 관계자는 “경영진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기보다 책임을 면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상법개정안 토론회 개최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사회를 맡을 예정이다. 이 대표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제1당인 민주당이 시장 안정화, 투자 보호조치 등 경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여당과의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입법도 빈틈없이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당초 민주당은 지난 4일 관련 토론회를 열고 5~6개 기업 경영진과 투자자 6~7인을 초청해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었으나 비상계엄으로 취소됐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양곡관리법(쌀 의무매입제) ▶국회법(예산안 자동부의제 폐지) ▶국회 증언·감정법(기업 영업비밀 자료나 증인 출석을 언제든 요구) 등에 대해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를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직무대행은 교과서적으로 ‘현상의 유지·관리가 주 업무”라며 “한 총리가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당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보상에 대한 특별법’과 ‘사면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외에 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고속도로법 ▶AI 기본법 등에 대해서도 ‘내년 1월 처리’를 목표로 세웠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 입법을 주도해 수권 능력을 보이겠다는 취지다. 여야 이견이 조율되지 않는 경우엔 단독처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혼란스러운 정국인 만큼 협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은 하겠다”면서도 “대외적으로 시급한 법안이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 특별법은 연구개발(R&D) 분야에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을 놓고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도부 관계자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경제 관련 법 처리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당의 전통적 가치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