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법원장이 폐기한 고정성 개념은 근로자의 업무 성과 등과 무관하게 반드시 지급하는 돈만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 등 조건이 달린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으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게 기존 판례의 취지였다.
조 대법원장은 먼저 “고정성 개념은 통상 임금에 관한 근로관계 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고정성 개념은 통상 임금의 범위를 축소해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은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며 새 법리를 제시했다.
통상임금이란 ▶법령의 정의에 충실해야 하며(법령 부합성) ▶당사자가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강행성)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고(소정근로 가치 반영성) ▶연장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하고(사전적 산정 가능성)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로를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정책 부합성)는 내용이다.
11년 만에 판례가 바뀌며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조 대법원장은 이번 법률 효과가 장래에만 발생한다는 ‘장래효’를 강조했다. “법적 안정성과 신뢰 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새 법리에 따라 기존 임금을 재산정해달라는 줄소송이 전망되는 만큼, 법리를 소급 적용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러면서도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다투는 중인 병행 사건에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 법리를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취지로 재판 중인 세아베스틸 사건 등 기존 재판에는 새 법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별도 설명 자료를 통해 “장래효를 채택한 판결 중 ‘병행사건’까지 소급효를 미치도록 한 것은 최초”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통상임금의 기능과 본질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충실히 해석하여, 통상임금의 본질인 소정 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했다”며 “재직 조건부 임금,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 등 다양한 임금 유형에 정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이라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총 “기업 경영 환경 악화할 것”반발…“6조 추가 비용 발생”
이어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세 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로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향후 지속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다.
앞서 경총은 지난달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를 통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연간 6조7889억원의 추가 비용이 기업에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통상임금 산입 시 29인 이하 사업장과 30~299인 사업장 근로자의 월 임금 총액 격차(혜택받는 근로자 기준)는 기존 월 107만1000원에서 120만2000원으로 13만1000원 확대된다는 내용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