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중견 여행사 A투어의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올겨울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소비자의 줄취소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해외여행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한 탓에 여행업계가 순식간에 대혼돈에 휩싸였다.
사고가 일어난 29일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었다. 여행사 대부분이 주말에 전화 상담을 받지 않는 바람에 여행사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날 낮부터 취소 요청 글이 쇄도했다.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여행상품은 물론이고, 다른 저비용항공을 이용하는 상품에도 취소 문의가 올라왔다. 30일 여행사가 전화 상담을 개시하자 취소 문의가 전화로 몰리는 중이다.
A투어 관계자는 “저비용항공이 취항하는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중심으로 취소 요청이 집중되고 있다”며 “유럽이나 미주 같은 장거리 지역은 취소 문의가 적지만 비행기 탑승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고객이 많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취소 문의는 구체적이다. ‘예약한 상품의 비행기가 사고기와 같은 기종인지’ ‘대형 항공사로 비행편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무안공항에서 사고가 난 보잉사의 B737-800은 국내 저비용항공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종이다. 화물기를 제외한 제주항공 보유 여객기 38대 중 36대가 737-800이고, 다른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19대)와 티웨이항공(27대)도 이 기종을 주력기로 사용 중이다.
취소 요청이 쏟아지자 제주항공은 무안 출발·도착 노선뿐 아니라 국내선·국제선 전 노선에 대해 위약금 없이 취소를 받아주기로 결정했다. 다른 저비용항공사는 30일 정오 현재 결정을 못 내렸다. 제주항공을 제외한 저비용항공사들은 1월 5일까지 폐쇄가 결정된 무안공항을 이용하는 항공편 외에는 취소·변경에 관해 규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B여행사 관계자는 “다른 항공사를 탑승하는 여행 상품도 취소 문의가 많아 골치가 아프다”며 “위약금을 내더라도 여행을 포기하겠다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는 잇따른 악재로 인해 급격히 침체한 분위기다. 올해 엔데믹의 그늘을 벗어났나 싶던 시점에 티메프 사태가 터졌고, 연말 탄핵 정국으로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난 데다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돼, 광고 및 홍보 활동도 어려워졌다.
A여행사 관계자는 “이번 주 예정된 홈쇼핑 광고를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연말에는 내년에 출발하는 여행 예약이 몰릴 때인데 지난주보다 절반 이상 신규 예약이 감소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