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등 세 편의 아트버스터... 그의 한 해는 '찬란'했다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는 최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데미 무어)을 받은 영화 '서브스턴스' 등 지난해 세 편의 아트버스터를 관객에 선보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는 최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데미 무어)을 받은 영화 '서브스턴스' 등 지난해 세 편의 아트버스터를 관객에 선보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내 예술영화 시장에서 10만명 이상 관객을 모은 예술영화는 '아트버스터'(아트와 블록버스터를 합친 말)로 불린다.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은 지난해 '악마와의 토크쇼'(10만명), '존 오브 인터레스트'(20만명)에 이어 '서브스턴스'(8일 현재 18만명)까지, 세 편의 아트버스터를 배출했다.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예술영화 세 편을 잇따라 공개하며, '찬란'한 한 해를 보낸 찬란의 이지혜(56) 대표를 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침 '서브스턴스'의 주연 데미 무어가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여서 그의 표정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데미 무어가 본인의 인생사가 투영된 작품에서 온몸을 던진 연기를 했잖아요.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에게 자극이 될 겁니다. 내친 김에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으면 합니다."

'서브스턴스'는 퇴물 취급 받는 중년 여배우의 회춘(回春)을 위한 위험한 선택을 그린 호러 영화. 충격적인 설정과 비주얼로 세상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를 겨냥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곧바로 구매를 결정한 이유는 세 가지다. 

완성도와 재미를 함께 갖췄고, 찬란이 강점을 보이는 호러 장르인데다, 칸 영화제(각본상 수상)를 포함한 유수 영화제에서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15년 째 예술영화 수입을 하고 있는 그가 지금껏 구매한 영화 중 가장 높은 금액을 베팅한 이유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한 장면. 세상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저격한 영화다. 사진 찬란

영화 '서브스턴스'의 한 장면. 세상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저격한 영화다. 사진 찬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의 한 장면. 독특한 설정의 공포영화로 지난해 개봉해 1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사진 찬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의 한 장면. 독특한 설정의 공포영화로 지난해 개봉해 1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사진 찬란

 
'서브스턴스' '악마와의 토크쇼' 뿐 아니라, '유전'(2018) '미드소마'(2019) 등 찬란의 흥행작 중에는 독특한 설정의 호러물이 많다. 찬란의 호러물은 믿고 본다는 영화 팬들도 생겨났다. 좋아하지 않던 호러 장르에 익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호러물을 찾아봤다는 그는 "마니아층이 확실한 호러물은 예술영화 수입을 계속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너머의 독일군 수용소장 가정의 안온한 일상과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처절한 고통의 소리를 통해 인류사 최대의 비극을 그려낸다.  

"재작년 칸 영화제(심사위원 대상 수상)에서 보고 굉장히 욕심 났어요. 하지만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어두운 소재여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그래도 제 마음에서 그 영화가 떠나지 않더라고요. 만약 그때 포기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밖 독일군 수용소장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인류사 최대의 비극을 그려냈다. 사진 찬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밖 독일군 수용소장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인류사 최대의 비극을 그려냈다. 사진 찬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젊은 관객 사이에서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 극장에서 꼭 봐야 할 영화로 소문이 나면서 관객 몰이를 했다. 13년째 찬란의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배우 소지섭이 투자한 영화라는 사실이 회자되면서 흥행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연 단위로 찬란의 전체 라인업에 투자하고 있는 소지섭은 이 대표에게 "든든한 지원군"같은 존재다. 그는 "소지섭 씨가 좋은 예술영화를 국내 관객에 선보이는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며 "그의 영화 취향은 마이너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표에게 예술영화 수입업은 '배반감'과 '희열'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좋은 영화라는 확신을 갖고 들여왔는데 관객의 외면을 받을 때도 있지만, 영화의 장점과 마케팅이 맞아 떨어져 흥행할 때 느끼는 기쁨 때문에 일을 계속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잡지 기자·편집장 출신의 그가 예술영화 수입에 뛰어든 건, 영화사 마케터로 일할 때 만났던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 때문이다. "영화 일이 쉽진 않지만, 그런 작품들을 간간이 만나게 되고, 그게 힘이 돼서 계속 버티는 것 같다"면서 "관객이 마음으로 느끼는 좋은 영화로 중국 로맨스 영화 '여름날 우리'(2021)로 세운 찬란 최고 흥행 기록(42만명)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이후 매년 두세 편의 독립영화 배급을 하는 그는 "재작년에 배급한 '지옥만세'의 경우 관객 수가 1만4000명에 불과했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됐을 때 반응이 뜨거웠다"며 "관객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도록 영화인들이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