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이을용-이태석 시대 활짝 열릴 겁니다"

새해에 전성기를 활짝 열어 젖히겠다고 다짐한 이을용(왼쪽)-태석 부자. 긴현동 기자

새해에 전성기를 활짝 열어 젖히겠다고 다짐한 이을용(왼쪽)-태석 부자. 긴현동 기자

"우리 부자(父子)의 시대가 활짝 열릴 겁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4강의 주역 이을용(50) 프로축구 경남FC 감독과 한국 축구대표팀 측면 수비수 이태석(23·포항 스틸러스)은 2025년 새해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이태석은 이 감독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한일월드컵이 막 끝난 2002년 7월에 태어났다. 이을용-태석 부자를 지난달 31일 경기 구리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나도 (이)태석이도 새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각자 일정이 바빠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들 등을 쓰다듬었다. 이 감독은 새해부터 K리그 2(2부리그) 경남을 이끈다. 2025시즌은 다음달 15일 개막한다.

이을용(오른쪽) 감독은 경남 감독으로, 이태석은 A대표팀 수비수로 성공을 꿈꾼다. 김현동 기자

이을용(오른쪽) 감독은 경남 감독으로, 이태석은 A대표팀 수비수로 성공을 꿈꾼다. 김현동 기자

2002 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 튀르키예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성공한 이을용(오른쪽). 중앙포토

2002 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 튀르키예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성공한 이을용(오른쪽). 중앙포토

 이 감독은 선수 시절 K리그 통산 290경기에 출전했고, 튀르키예 트라브존스포르에서도 뛰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51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월드컵에서도 두 차례(2002·06년) 뛰었다. 2011년 은퇴 후 지도자 길을 걸었지만, 감독은 처음이다. 강원FC 코치, FC서울 코치,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 등 감독을 보좌하는 역할만 했다. 이 감독은 "오랜 기다려 감독이 된 만큼 멋진 축구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1975년생 친구 중에서 가장 친한 (안)정환이가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 그래도 힘내라'라고, 벌써 광주FC 4년 차 감독인 (이)정효는 '기왕 하는 거 높이 올라가라'고 격려했다"고 전했다. 

 경남은 2019년 강등된 뒤 2부에 머물렀다. 지난 시즌엔 2부 13개 팀 중 12위에 그쳤다. 이 감독 임무는 무너진 경남의 재건과 1부 승격이다. 이 감독은 "올 시즌 1차 목표는 플레이오프, 목표 달성 시 우승이나 승격도 노리겠다"고 말했다. K리그에 이 감독과 인연 깊은 지도자가 많다. 윤정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은 대표팀 동료, 조성환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제주 시절 감독이다. 이 감독은 "초보 감독 티 내지 않고 노련하게 팀을 이끌겠다. '이을용 표 축구'는 빠르고 공격적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해 11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태석.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해 11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태석. 사진=대한축구협회

이태석(왼쪽)은 아버지 이을용처럼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이 목표다. 김현동 기자

이태석(왼쪽)은 아버지 이을용처럼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이 목표다. 김현동 기자

 이태석은 "경남이 승격해 1부 리그에서 우리 팀(포항)과 대결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경남은 코리아컵(FA컵)에서는 포항을 만날 수도 있다. 이태석이 "아버지여도 승부는 승부다. 프리킥 찬스에서 골을 노릴 것"이라고 도발하자, 이 감독은 "나야말로 절대 안 봐줄 거다. 우리 경남이 무조건 이길 것"이라며 웃었다. 2021년 FC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태석은 지난해 8월에 포항으로 이적했다. 이적 후 주전을 꿰찼고 코리아컵 우승까지 경험했다.


 이태석에도 2025년은 중요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본격적으로 뛰는 첫 시즌이다. 이태석은 지난해 11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쿠웨이트전(원정, 한국 3-1승)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A매치에 데뷔했다. 이로써 이을용-태석 부자는 김찬기-석원, 차범근-두리 부자에 이어 한국 축구 역대 세 번째 'A매치 출전 부자'가 됐다. 이태석은 "어릴 때부터 '스타 플레이어 아버지 덕을 봤다'는 뒷말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더 열심히 했다. A매치 데뷔로 힘든 과거를 보상받았다"고 말했다.

이을용 프로축구 경남 감독(오른쪽)이 31일 경기도 구리시 장자호수생태공원에서 포항 수비수인 장남 이태석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024.12.31.

이을용 프로축구 경남 감독(오른쪽)이 31일 경기도 구리시 장자호수생태공원에서 포항 수비수인 장남 이태석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024.12.31.

 이명재(울산HD)와 대표팀 왼쪽 풀백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할 이태석은 "올해는 풀타임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감독은 "티 내진 않았어도 (아들의 A매치 데뷔에) 속으로 많이 기뻤다. 내 그늘 때문에 쉽진 않았을 텐데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이태석은 "아버지를 이어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 내년 월드컵 출전이 목표"라며 "대표팀에서도 잘하고, 포항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겠다"고 말했다.

 축구 팬 사이에서 이 감독은 '을용타(打)'로 통한다. 2003년 중국전에서 상대 선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려 퇴장당했다. 발목을 걷어차이자 화를 참지 못했다. 특히 엄살 부리던 상대를 근엄하게 꾸짖는 표정으로 더욱 화제가 됐고 별명까지 얻었다. 이태석은 "유튜브에서 그 영상을 봤다. 상대가 도발해도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고 잘라 말했다.

2003년 중국전 당시 '을용타'로 화제가 된 이을용. SNS 캡처

2003년 중국전 당시 '을용타'로 화제가 된 이을용. SNS 캡처

이을용(왼쪽) 감독과 아들 이태석은 모두 '왼발의 달인'으로 통한다. 김현동 기자

이을용(왼쪽) 감독과 아들 이태석은 모두 '왼발의 달인'으로 통한다. 김현동 기자

 이태석은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터프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은 왼발 능력이 뛰어난 테크니션"이라고 감쌌다. 이 감독은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왼발 패스로 황선홍의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튀르키예와의 3~4위전에서 왼발 프리킥 골을 터뜨렸다. 이태석은 아버지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역시 날카로운 왼발이 주 무기다. 누구의 왼발이 더 위협적일까. 눈치 보던 이태석이 "아직은 아버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하자 이 감독은 망설임 없이 "지금은 내가 한 수 위"라고 장담했다.
구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