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관문서 만난 김치전, 네팔식 막걸리에 제격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끝〉

지구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 바로 아래 위치한 네팔은 산악지대가 많다 보니 이동이 불편해 각종 산업이 발달하기 힘든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나 히말라야라는 천혜의 자원 덕분에 관광업이 발달했다. 2023년 기준 해외 관광객 숫자가 연간 100만 명을 돌파했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한국인도 꽤 많다.

한국인 고객들에 의해 메뉴 계속 보강

한국에는 가본 적도 없는 네팔인 부부가 히말라야로 트래킹 온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식을 배워 식당을 운영중인데, 만리타국에서 자연스레 고향이 떠오를 만큼 따뜻하고 맛있다. [사진 이승훈]

한국에는 가본 적도 없는 네팔인 부부가 히말라야로 트래킹 온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식을 배워 식당을 운영중인데, 만리타국에서 자연스레 고향이 떠오를 만큼 따뜻하고 맛있다. [사진 이승훈]

히말라야 여행의 관문인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과 숙박업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매우 특이한 케이스로 한국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식당이 있다. 상호명은 소비따네(Sabitane Korean restaurant).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포카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 이 집을 한 번은 방문했거나 최소한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10여 곳이 넘는 포카라의 한식당 중에서도 생긴 지 오래됐고 평판도 좋은 곳이다.

네팔 구릉족 출신의 주인장 부부 죠띠 구릉(41)과 남편 기스너 구릉(42)은 김치찌개, 닭볶음탕, 계란말이, 제육덮밥, 수제비 등 다양한 한식을 선보이고 있지만 한국에는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심지어 한식당에서 근무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다양한 한식을 선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보다 더 인기일까?

원래 이 식당은 한식이 아닌 뚝바, 모모 등 평범한 네팔음식을 팔던 곳이다. 2004년경 히말라야 트레킹을 왔다가 우연히 방문한 여러 한국인이 인심 후한 죠띠 사장을 보고 어떤 남성은 김치 담그는 법을, 어떤 자매는 찌개·계란말이·김치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부부는 당시 갓 태어난 딸 소비따(21)의 이름을 따서 상호명도 바꾸었다. 여러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에 의해 메뉴는 계속 보강됐고 어떤 이는 한국인을 위한 음식 메뉴판까지 만들어 줬다. 마음 따뜻한 한국인의 정이 만리타국 식당에 차곡차곡 지층처럼 쌓여갔다고나 할까.


이후 소비따네는 험준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 지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한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16년 지금의 넓은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작년부터는 택시기사였던 남편까지 본격 합류했다. 고추장, 라면 등 대체 불가한 식재료는 한국에서 어렵게 구해오고, 쌀은 현지에선 주로 인디카를 먹기에 자포니카로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일본쌀을 사용한다. 식당 가장 구석에선 직접 닭을 키운다. 덕분에 계란말이 등은 물론 닭백숙, 닭볶음탕, 닭죽 등 다양한 한국식 닭요리도 맛볼 수 있다.

소비따네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또 다른 비기가 있다. 직접 양조해서 판매하는 네팔식 전통 막걸리 ‘창(Chang)’과 소주 ‘럭시(Raksi)’다. 두 술은 네팔 전역에서 나는 기장, 쌀, 밀, 옥수수, 보리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우리로 치면 기장과 비슷한 곡물인 꼬도(Kodo)로 빚은 술을 가장 높게 친다. 소비따네는 꼬도와 함께 쌀을 사용해 네팔 누룩으로 술을 빚어 제공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옛 주막에서 막걸리를 빚어 과객들에게 판매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창의 시큼털털하고, 럭시의 톡 쏘는 맛조차도 우리술과 매우 유사하다.

세계 곳곳에 막걸리 양조장 생기고 있어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서 한식당 ‘소비따네’를 운영하고 있는 가족과 필자 이승훈씨(뒷줄 맨 왼쪽). [사진 이승훈]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서 한식당 ‘소비따네’를 운영하고 있는 가족과 필자 이승훈씨(뒷줄 맨 왼쪽). [사진 이승훈]

소비따네에서 한식과 함께 창과 럭시를 반주로 곁들이다보니 우리술 막걸리가 떠올랐다. ‘막걸리’는 한국 고유의 단어지만 막걸리의 법적 용어인 탁주(濁酒)는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 함께 쓰인다. 각자 독음은 다르지만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전역의 쌀농사 문화권에선 각 나라마다 막걸리 스타일의 전통술이 존재한다.

한국의 막걸리는 1988년을 기점으로 맥주에게 최다 시장점유율 주종의 위치는 내줬지만 2023년 출고금액 기준으로 맥주, 희석식소주에 이어 세 번째로 소비자들이 많이 소비하는 주류다. 2021년에는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유산(당시 국가무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됐고, 향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뜀박질을 하고 있다.

2010년경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시작으로 일본에 막걸리 열풍을 일으켜 많은 수출을 이루어 냈고, 결국 일본 고유의 도부로쿠(濁酒) 시장이 확장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선 한류 영향으로 K푸드가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 등 쌀 문화권으로 막걸리 수출량도 증가 추세에 있다. 네팔처럼 가양주 형태로 남아 명맥을 이어 나아가는 곳도 있지만 아시아 지역 대부분에선 맥주, 와인, 보드카, 위스키 등에 밀려 자신들의 전통주임에도 불구하고 마이너한 주류로 산업화에서 뒤쳐져 있다.

한국은 쌀 문화권에서 가장 막걸리를 잘 지켜왔고 제일 맛있게 만들고 잘 마신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미국 뉴욕의 ‘하나 막걸리(Hana makgeolli)’, 프랑스 파리의 ‘메종 드 막걸리(Maison de makoli)’, 영국 런던의 ‘오감 타파스 바(Ogam tapas bar)’ 등 전 세계 방방곡곡에 막걸리를 포함한 우리 전통주 양조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자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승훈 백곰우리술연구소 대표.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막걸리학교, 한식진흥원 등의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