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겠다, 훈아답게 가겠다"던 나훈아, 끝내 눈물 터졌다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공연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나훈아. 마지막 무대에서 “웃는 얼굴로 이별의 노래를 부르겠다”며 히트곡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예아라예소리]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공연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나훈아. 마지막 무대에서 “웃는 얼굴로 이별의 노래를 부르겠다”며 히트곡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예아라예소리]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 온/ 이 세상을 믿었다 후회 역시도 없다/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

가수 나훈아는 노래 인생 마지막 곡으로 자신이 작사·작곡한 ‘사내’를 골랐다. ‘사내답게 살다가 사내답게 갈 거다’란 노랫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부르는 동안 그의 눈시울은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를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는 객석을 빈틈없이 채운 관객들에게 “구름 위를 걷는 스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젠 땅 위를 걷겠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팬들의 꽃다발 선물 세례에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영화 ‘기러기 남매’(1971)에 함께 출연한 남진(오른쪽)과 나훈아. [중앙포토]

영화 ‘기러기 남매’(1971)에 함께 출연한 남진(오른쪽)과 나훈아. [중앙포토]

나훈아는 지난해 2월 “‘박수칠 때 떠나라’는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는 편지로 은퇴를 선언한 후, 약 1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라스트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해 4월부터 인천·대전·광주·울산·대구·부산 등 14개 도시를 돌았고, 마지막 도시인 서울 공연도 12일 마이크를 드론에 실어보내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총 38회 진행된 나훈아의 ‘라스트 콘서트’는 한 회도 빼지 않고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1967년 데뷔한 그는 58년 동안 불꽃같은 가수 인생을 걸으며 ‘가황(歌皇)’의 자리를 지켰다. 지금까지 낸 앨범은 200장이 넘고, 1200여 곡의 자작곡을 포함해 2600여 곡을 취입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그는 “내가 노래하는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며 ‘고향역’ ‘홍시’ ‘사랑’ ‘영영’ ‘고장난 벽시계’ 등 히트곡을 이어 불렀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스크린 속 자신의 80~90년대 음성과 듀엣으로 들려줬다. 흰 수염, 백발의 나훈아와 수줍은 미소의 청년 나훈아 모습이 대비됐다.


1986년 ‘울긴 왜 울어’ 앨범 재킷. [중앙포토]

1986년 ‘울긴 왜 울어’ 앨범 재킷. [중앙포토]

그는 97년 소록도 공연과 96년 일본 오사카 공연을 평생 잊을 수 없는 공연으로 꼽았다. 소록도에서 그는 노래를 신청한 한센병 환자를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오사카 공연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일본이 독도가 자기들 거라고 우기는 데 속이 뒤집어졌다. 마침 일본에서 공연 제안이 와 ‘독도는 우리땅’을 소리칠 마음을 먹고 갔고, 실제 무대에서 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남진과 나훈아 라이벌 구도가 심화했던 70년대 “남진이 사주했다”고 주장하는 괴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적도 있다. 2008년 일본 폭력조직에 의한 신체 절단설 등의 괴소문에 나자 기자회견을 열어 “바지를 내려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라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파격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나훈아의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은 민감한 시사 이슈에도 예외는 없었다.

2020년 KBS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앙포토]

2020년 KBS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앙포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15년 만에 출연한 TV방송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KBS2)에서는 “역사책을 봐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라를 누가 지켰느냐 하면 바로 국민 여러분”이라고 발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일 ‘라스트 콘서트’ 서울 공연에서도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 니는 잘했나?”라며 현재 정치 혼란 상황을 언급했다. 이에 야권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12일 공연에서 그는 “양쪽 다 문제 있다는 얘기”라며 “둘이서 나눠 가지고 누가 잘났네 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전국에 열풍을 일으킨 그의 무수한 히트곡 중 최신곡은 2020년 발표한 ‘테스형’이다. 마지막 무대에서 나훈아는 테스형의 이름을 빌려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꿈에 테스형이 나온다. 테스형이 하는 이야기가, 주변 신경 쓰지 말고 혼자 제대로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겠다”면서 “또 중요한 것 하나는 힘들게 번 돈 다 쓰고 죽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