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교과서 발행사 임직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교과서 지위 유지 촉구 공동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새 학기 시작이 5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교육 현장의 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1년간 원하는 학교만 자율적으로 AI교과서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AI교과서 발행사들은 “전면 도입이 아니면 손해가 막심하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일부 학교에선 “말이 자율이지 사실상 반강제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업체 “소송 검토, ‘1년 후 의무’도 못 믿어”
13일 오전 천재교육·에누마 등 발행사 6곳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AI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강등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발행사들은 “AI교과서를 원안대로 학교 현장에 도입해서 교육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과 학교에 따라 차등 없이 학생들이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AI교과서 지위가 교육자료로 낮아지면 업체들의 생존권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헌법소원, 행정소송, 민사소송 등 법적 구제 절차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발행사 측은 교육부의 ‘1년간 학교 자율 선택’에 대해서도 행정 소송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천재교육 관계자는 “AI교과서를 올 3월부터 전면 도입하겠다는 교육부 발표를 믿고 개발에 참여했는데, 유예 기간이 시행되면 회사 입장에선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1년 자율 후 의무 도입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도 여전히 AI교과서 도입에 대한 입장과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시·도교육청을 통해 관내 학교에 AI교과서를 선정하도록 지시하는 공문·매뉴얼을 보내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회 교육위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일까지도 경남·경북·광주·울산·인천·충남 등 6개 교육청은 관내 학교에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세종시교육청은 공문을 보냈다가 AI교과서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통과된 후 이를 철회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다시 보내기도 했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공문을 보면 AI교과서를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돼 있어서 그대로 안내할 경우 현장의 혼란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혼란 최소화를 위해 최종적으로 지위가 결정되면 그에 맞춰 관련 사안을 안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관계자는 “다만 AI교과서 지위와 관계없이 우리 교육청은 전면 도입이 시기 상조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종훈 경남교육감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AI교과서는 1~3년은 시범 운영 기간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전면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열린 2025년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부총리는 AI교과서 등 주요 정책이 교육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당부한다고 밝혔다. 뉴스1
AI교과서의 전면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1년간 학교 자율 선택’이 사실상 ‘반강제 도입’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방과 후 학교·고교학점제 등 교육부가 올해 추진하는 주요 정책 곳곳엔 AI교과서를 활용하는 방안이 들어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실상 대다수 학교와 교육청에 AI교과서를 쓰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앞서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지난 10일 올해 주요 정책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3월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반기에는 AI교과서 채택률이 전국적으로 70~8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AI교과서 도입이 결정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구는 올해 3월부터 수학과 영어 과목에서 예정대로 AI교과서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도 “교육감이 AI교과서 도입을 적극 권장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상태”라고 했다. 강경숙 의원은 “특정 시·도교육청은 교육감 의지에 따라 자율이 아닌 강제로 AI교과서가 도입되고, 현장에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예산만 낭비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계에선 17일 예정된 AI교과서 관련 국회 청문회 후 최상목 권한대행이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강등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후 열린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025년 교육부 핵심 과제로 AI교과서 등을 언급하며 “올해 집중해야 할 교육 정책들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챙겨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후연·이보람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