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17일 발간한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 등으로 고용이 둔화하고,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북은 기재부가 매달 펴내는 보고서로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 공식 평가가 담겨있다. 표지가 녹색이라 그린북이라고도 불린다.
기재부는 지난달(지난해 12월) 그린북에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 심리 위축 등 하방 위험 증가가 우려된다”고 썼다. 이달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란 표현이 빠졌고, 대신 ‘고용 둔화’를 언급했다. 지난해에는 높은 고용률 등을 부각하며 긍정적 평가를 해왔던 것과 대조된다. 경기 전반에 대한 진단도 “하방 위험 증가 우려”에서 “하방 위험 증가”로 달라졌다. ‘우려’란 단어를 빼고 경기 추락이 현실이 됐다는 점을 부각했다.
김귀범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조만간 지난해 4분기 GDP(국내총생산)가 발표될 텐데, 전날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말했다”며 “그것을 참고해 ‘우려’란 단어를 빼고 ‘하방 압력 증가’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지난 16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소비나 내수 특히 건설 경기 등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졌고, 계엄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2%를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만2000명 줄면서 3년10개월 만에 처음 감소했다. 실업률도 지난달에만 0.5%포인트나 뛰며 3.8%를 기록했다, ‘쉬었음’ 등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고용률(61.4%)은 0.3%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 취업자의 감소 폭(-9만7000명)이 커졌고, 최악의 불황을 겪는 건설업 취업자도 크게 줄었다(-15만7000명).
가계·기업의 경제 심리 위축도 뚜렷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SI)는 88.4로 전달(지난해 11월)과 견줘 12.3포인트 급락했다.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상황이 나쁘다는 의미다. 기업심리지수(전산업 CBSI)도 지난달 4.5포인트 하락했고, 이달 전망 지수는 전월보다 7.3포인트 더 낮았다.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 역시 지난해 11월 62.4에서 지난달 53.7로 떨어졌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파로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 오르며, 11월(1.5%)에 비해 상승 폭이 확대됐다. 계엄 이후 달러당 원화값이 1500원대에 육박하면서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달 수입 물가는 전월보다 2.4%, 1년 전보다는 7.0%나 뛰었다.
이는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과자·음료·생필품·화장품 등 가격 인상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의 가격 오름폭이 크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고환율 영향을 받으면서 기름값도 13주 연속 상승세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16일 리터당 1713.63원을 기록하며 올해 들어서만 2.6%(42.98원) 올랐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로 동결했다. 계엄·탄핵 사태까지 겹쳐 경기 위축 우려가 더욱 커졌지만,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동결을 선택했다. 이에 나라 살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기재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컨트롤타워로 관계기관이 공조해 올해 경제정책방향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며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전체 예산 7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김귀범 과장은 “경제정책방향에 썼던 것처럼 필요 시에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