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계엄지시 내려왔다"…유독 철물점 노린 '軍간부 사칭' 왜

지난 16일 충남 당진시 한 철물점에 물건을 사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군(軍) 간부라고 소개한 남성은 물건을 먼저 보내주면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철물점 주인에게 말했다. 남성이 구매 의사를 밝힌 물건은 드릴공구 세트로, 값은 100만원 정도였다.

지난 16일 충남 당진에서 군(軍)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철물점 주인에게 보낸 가짜 공문서. [사진 당진시]

지난 16일 충남 당진에서 군(軍)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철물점 주인에게 보낸 가짜 공문서. [사진 당진시]

남성은 철물점 주인 휴대전화로 부대명과 담당자 이름 등이 담긴 ‘물품 공급 결재 확약서’와 올해 ‘부대 정비 소모품 구매 승인서’ 등 공문서를 찍은 사진도 보냈다. 며칠 뒤 남성은 다시 철물점에 전화를 걸어와 “훈련하는 장병의 전투식량 가격이 갑자기 올라 회계서류 등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 일단 사주면 갚겠다”며 주인에게 1000만원 상당의 전투식량 구매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철물점 주인이 군에 연락해 공문에 적힌 이름의 간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후 남성은 더는 연락하지 않았고 군 당국이 철물점 주인에게 걸려온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진에서는 다른 철물점에서도 유사한 전화가 걸려왔지만, 주인의 확인 절차로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짜 공문서 보낸 뒤 외상거래 등 요구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당진시는 군과 연락망을 구축하고 “군 관계자를 사칭하며 외상거래를 요청하면 곧바로 시청이나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최근 충남을 비롯해 인천과 경기 등에서 군부대 간부를 사칭해 대금 지급을 약속하고 공구 등을 받아 가로챈 사기 사건이 발생, 자치단체와 군 당국이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충남 당진에서 군(軍)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철물점 주인에게 보낸 가짜 공문서. [사진 당진시]

지난 16일 충남 당진에서 군(軍)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철물점 주인에게 보낸 가짜 공문서. [사진 당진시]

실제로 지난해 12월 인천에서는 철물점 2곳에서 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인천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A씨와 B씨는 지난해 12월 12일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으로부터 각각 1600만원과 800만원가량의 사기 피해를 보았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철물점 물품을 구매하겠다면서 연락한 뒤 특정 유통업체에서 전투식량을 대신 구매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후 해당 남성은 잠적했고 업체 측도 환불을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천·광주광역시 등에서도 유사 사건 발생

당시 남성은 철물점 주인 A씨에게 “2차 계엄지시가 내려왔다”며 겁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철물점 주인을 상대로 피해 경위를 조사한 뒤 사건을 강원경찰청에 이송했다. 군 간부 사칭 사기는 강원경찰청이 집중 수사 기관으로 지정돼 피해자 조사를 마친 뒤 사건을 이송하게 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에서도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군인 사칭 사건이 잇따르자 관할인 육군 제31보병사단이 사태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광주에선 현역 군인을 사칭한 인물이 음식이나 물건을 주문할 것처럼 행세하며 자영업자에게 다른 업체 대금을 결제해달라는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위조한 군부대 공문과 영수증을 제시해 자영업자들이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게 관계 당국 설명이다.

같은 달 인천 강화도에서는 군 간부를 사칭해 단체 음식 주문을 미끼로 식당에서 돈을 뜯어내려 한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기도 했다. 당시 강화도 식당 6곳에서 “군인 사칭 피싱 범죄가 의심된다”며 112에 신고했다.

한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초까지 이 같은 사건이 전국에서 76건 접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