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세계관' 그림도 그렸다…헌재 때리는 尹지지자 속내

최근 극우 성향 유튜브 '그라운드씨'와 '신남성연대'에 올라온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관련 비난 글. 사진 유튜브 캡처

최근 극우 성향 유튜브 '그라운드씨'와 '신남성연대'에 올라온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관련 비난 글. 사진 유튜브 캡처

 
설 연휴 이후 헌법재판소가 증인들을 대거 소환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높일 예정인 가운데 특정 재판관들을 대상으로 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공세가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 극우 성향의 유튜브 ‘그라운드씨’ 채널 커뮤니티에는 ‘문형배 세계관’이란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라운드씨 운영자 김성원씨가 주장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관심사 등을 도식화해 놓은 것인데 ‘(문 대행이) 반미주의자 놈 촘스키를 좋아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퍼주자고 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문 대행이 과거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이나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의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서 문장을 인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을 근거로 한 논리적 비약이 담긴 주장들이다. 

지지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2000여 개의 댓글을 다는 등 비난에 가세했다. 한 누리꾼은 “법복 입고 누구를 위해 판결 내리는지 드러났다”며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이는 “헌법재판소 못 믿겠다. 법치주의 다시 배워라”라고 썼다. 신남성연대와 같은 극우 유튜버들도 이 게시물을 각 채널에서 공유하며 문 재판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30일 오후 5시 기준 헌재 홈페이지에 12만여건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잇따랐다. 사진 헌재 홈페이지 캡처

지난 30일 오후 5시 기준 헌재 홈페이지에 12만여건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잇따랐다. 사진 헌재 홈페이지 캡처

 
헌재 홈페이지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농성은 이어지고 있다. 자유게시판에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난달 14일부터 지난 30일까지 47일 만에 120만 건 넘는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글인데, 최근 들어 재판관 개인의 이념이나 정치 성향을 공격하는 글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문 대행의 경우 제목 기준으로만 11만 건 넘는 글이 쏟아지며 주요 타깃이 됐다. 이 대표와의 친분설을 언급하며 “이재명 찐친구 문형배는 사퇴하라”거나, 유엔기념공원 방문 후기를 두고 “6ㆍ25 북침론 편든 좌파 판사”라는 식이다. 문 대행과 함께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진 이미선 재판관(10만2000건), 윤 대통령 측이 기피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정계선 재판관(4만8000건),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인용 의견을 낸 정정미 재판관(2만7000건)까지 묶어 ‘사퇴 4인방’으로 지목하는 글도 꾸준히 올라온다.


지난 30일 서울구치소 앞에 세워진 입간판. 전율 기자

지난 30일 서울구치소 앞에 세워진 입간판. 전율 기자

 
헌법재판관들을 둘러싼 유언비어는 집회 현장에서도 재차 공유되며 지지자들의 항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에는 ‘2025년 을사오적 사법농단 어용판사’라는 제목과 함께 문 대행과 이 재판관의 이름이 적힌 입간판이 세워졌다. 경기 군포시에서 온 홍모(70대)씨는 “문 대행이 이재명 대표와 친하다는데 좌파들한테 뒷돈을 받았단 이야기가 있다”며 “전광훈TV·펜앤드마이크TV 등 유튜브를 보고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서울구치소 인근에 설치된 현수막. 헌재 판결에 대해 비판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율 기자

지난 30일 서울구치소 인근에 설치된 현수막. 헌재 판결에 대해 비판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율 기자

일부 정치권 인사들도 가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문 대행이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임을 언급하며 “(재판관들이)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지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 29일 자신의 SNS에서 “문형배 소장대행, 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은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손 떼고 즉각 회피해야 한다”며 “헌재가 아무리 스스로의 오만함과 비뚤어진 권위의식으로 편향성을 가리려 한다 해도 국민들은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는 사법부를 향한 정치적 여론몰이에 대해 ‘불리한 결정에는 불복하겠다는 포석인 동시에 심각한 법치주의 훼손’이라고 우려했다. 헌재 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윤 대통령 지지세력이 나중에 헌재 결정에도 불복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부지법 난입사태에 이어 헌재 재판관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한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재판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헌재도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판사 출신인 문유진 변호사는 “일반 형사재판의 경우 피고인의 법 위반 여부에 따라 이분법적인 결론만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자들의 탄원서가 제출돼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탄핵재판의 경우 법률 위반이라 하더라도 사회 분위기, 국민의 법감정에 비추어 ‘위반 정도의 중대함’을 보기 때문에 여론전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극단적 정치 행위가) 오히려 지지 대상에게 손해라는 인식이 있어야 자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