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미쓰비시에 돈 받을 길 열렸다…추심 1심 승소

지난해 9월 12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비를 맞고 서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12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비를 맞고 서있다. 뉴스1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추심금 소송에서 승소했다. 판결이 집행되면 강제징용 피해자가 추심금 소송을 통해 일본 기업에서 배상금을 지급받는 첫 사례가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51단독 이문세 부장판사는 18일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故) 정창희 씨 유족 등 6명이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 유족 승소 판결했다.  

이날 소송은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승소한 손해배상 소송의 배상금을 받기 위해 제기됐다. 당시 대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정씨 등 피해자들에게 1인당 80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이같은 선고를 사실상 무시하면서 피해자들은 실제로 배상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일부 유족은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 배상금으로 달라”는 추가 소송을 냈다. 그러자 정부는 2023년 3월 일본 전범 기업 대신 국내 기업들이 기부금을 조성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다.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 15명 중 13명은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고 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정씨와 박해옥 할머니 유족은 일본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정씨 유족은 2023년 3월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의 자산을 추심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인 엠에이치파워는 한국미쓰비시중공업이 100% 출자해 세워진 종합무역 회사로, 한국 법인이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지분 구조상으로 손자 회사이며, 임원도 대부분 일본인이다. 유족이 제기한 소송은 엠에이치파워가 미쓰비시에 내야 하는 IT 관련 수수료를 원고인 피해자 유족 측에 우선적으로 갚도록 해 달라는 취지다.  

피고 측은 미쓰비시와 채권관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확한 수수료 금액은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에서는 지금까지 발생한 수수료 등에 비춰 채권액을 산정해 보면 유족들의 청구액 8360여만원을 초과한다고 봤다.  

이 판사는 피고 회사가 정씨 배우자에게 약 1900만원을, 자녀들에게는 약 12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선고하면서 이같은 사항을 가집행할 수 있다고 했다. 가집행은 판결 확정 전에 곧바로 판결 내용을 강제 실현할 수 있는 제도다. 만일 피고가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원고는 이날 판결을 근거로 피고의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이 위치한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김정연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이 위치한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김정연 기자

 
다만 아직 법적인 절차가 남아 있어 유족들이 실제로 금액을 수령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피고는 이날 선고에 항소하며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 피고가 가집행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금액을 법원에 공탁해야 한다. 이 금액은 최종 승소 후 법원의 공탁금 담보 취소 결정에 따라 수령할 수 있다.  

정씨 유족이 최종 승소하면 일본 기업의 돈이 피해자에게 직접 돌아가는 사례로는 두 번째가 된다. 앞서 2014년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씨가 히타지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히타치조선은 2심 패소 후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보증금 성격으로 6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원고 측은 2023년 12월 대법원 확정 선고 후 이를 근거로 공탁금을 수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