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개 기능을 담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기록된 캐비노티에 더 버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 조립 과정.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바쉐론 콘스탄틴은 설립 10년 주기로 특별한 제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260주년이었던 2015년에는 57개의 기능을 탑재한 회중시계 ‘캐비노티에 Ref. 57260’을 발표했고, 이보다 10년 앞선 2005년엔 16개 기능을 탑재한 손목시계 ‘뚜르 드 릴’을 비롯해 여러 기념비적 모델을 공개했다.

2025년 창립 27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히스토릭 222’ 워치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 1977년 모델을 재해석해 내놨다.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270주년 서막을 올리는 의미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지난 1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히스토릭(Historiques) 222’ 워치를 공개했다. 1977년 브랜드 설립 222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222’ 모델을 재해석한 시계다. 222는 현재 브랜드를 대표하는 컬렉션인 ‘오버시즈’에 영감을 줄 정도로 브랜드 역사에 중요한 제품이다. 2022년엔 시계 전체를 금으로 만든 222 모델도 출시됐다.

백케이스로 드러난 자체 제작 오토매틱 무브먼트 2455/2. 동력을 축적하는 부품인 22캐럿 골드 소재 로터엔 제품 이름 ‘222’와 함께 베젤을 연상시키는 플루티드 모티브를 가장자리에 새겼다.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케이스 디자인
222는 당시 유명 시계 디자이너 요르크 하이섹이 디자인했다. 출시 직후 이 시계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새로운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파일럿∙다이버 등 전문가용 스포츠 시계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덕에 시계 애호가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드레스 워치와 스포츠 워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업계의 평가도 받았다.

1977년에 선보인 222 모델 캠페인.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222 워치의 스케치 과정.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270주년 기념으로 나온 새 시계 히스토릭 222는 오리지널 모델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본떴다. 대신 착용감 개선, 무브먼트 변경을 통해 성능을 끌어 올렸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최고 마케팅 경영자 알렉산드라 보글러는 “222는 지난 수십년간 브랜드가 출시한 시계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모델”이라며 “빈티지 감성과 현대적 분위기를 합친 이 모델의 재출시를 통해 270년 생일을 맞은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엮어내고자 했다”고 발표 소감을 밝혔다.

1977년 오리지널 모델과 2022년에 선보인 골드 소재 히스토릭 222 워치.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정확한 심장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힘
시계를 정면에서 봤을 때 가운데가 볼록한 토노 형태의 히스토릭 222 케이스 위에는 다면으로 이뤄진 플루티드 베젤을 얹었고, 5시 방향에 브랜드를 상징하는 말테 크로스 엠블럼을 장식했다. 커다란 육각형 링크로 이뤄진 메탈 브레이슬릿은 러그(케이스와 시곗줄을 연결하는 부품) 없이 케이스에 연결돼 자연스럽게 손목을 감싼다.

케이스 지름은 37mm다. 여성도 부담 없이 찰 수 있는 크기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오리지널 모델의 심장은 두께 3.05mm의 울트라-씬 칼리버 1120였다. 시∙분과 날짜 기능을 갖춘 무브먼트로 당시 시계에서 가장 얇은 풀 로터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기록했다. 새 시계엔 바쉐론 콘스탄틴을 대표하는 자체 제작 무브먼트 2455/2를 탑재했다. 옛 심장보다 0.55mm 두꺼워졌지만, 진동수를 시간당 2만8800회로 끌어올려 정확성이 향상됐다. 동력을 축적하는 부품인 로터는 22캐럿 골드로 만들었다. 로터의 회전으로 풀 와인딩 될 경우 파워리저브는 40시간이다.
짙은 블루 다이얼의 12시 방향에는 브랜드 이름과 함께 말테 크로스 로고를 장식했고, 6시 방향에는 오리지널 모델에 사용한 서체를 활용해 구동 방식을 의미하는 ‘AUTOMATIC’을 새겨 넣었다. 3시 방향에 있는 날짜 창을 다이얼 중앙 쪽으로 미세하게 옮겨 분침의 가독성을 살린 것도 새 모델에서 눈여겨볼 변화다. 인덱스와 시곗바늘엔 야광 물질인 수퍼 루미노바로 코팅해 가독성을 높였다.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라임 그린 컬러는 오리지널 시계에 사용한 트리튬 야광 물질을 연상시킨다.

무브먼트 위에 다이얼을 세팅하는 과정.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을 포함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시계 전체는 금속 결을 살린 새틴 브러싱과 반짝이는 폴리싱을 교차로 가공 처리해 입체감이 돋보인다. 케이스 크기는 지름 37mm, 두께는 7.95mm로 남녀 모두에게 잘 어울린다.
1755~2025, 탁월함을 향한 270년의 여정
바쉐론 콘스탄틴은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시계 제작을 멈춘 적 없는 유서 깊은 매뉴팩처 브랜드로,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스위스 고급 시계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중이다. ‘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Do better if possible, and that is always possible.)’라는 문구는 브랜드의 모토다. 전문성과 창의성을 향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설립자 장-마크 바쉐론의 손자 자크 바텔레미 바쉐론과 19세기 초 비즈니스 파트너로 합류한 프랑소아 콘스탄틴이 주고받은 서신에 적힌 내용이었다. 그 둘의 만남 이후 바쉐론 콘스탄틴은 컴플리케이션(시각 제공 이외에 시계에 담은 여러 기능)을 제작하고 이를 조합하는 하이 워치메이킹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이 컴플리케이션 제작 전문성
바쉐론 콘스탄틴은 브랜드가 보유한 아카이브(기록 저장소)에 기록된 최초의 캘린더 워치(1790년)를 시작으로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만들었다.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투르비용,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차임 워치, 스카이 차트∙항성시 등 천문학 정보를 담은 메커니즘, 2100년까지 날짜 정보를 자동으로 계산해 알려주는 퍼페추얼 캘린더까지 그 종류도 여러 가지다. 코티에 시스템이라 불리며 24개 도시의 시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월드타임(1932) 컴플리케이션은 현재까지도 이 기능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1932년에 제작된 최초의 코티에 시스템이 적용된 월드 타임 워치(왼쪽)와 45도 회전한 쿠션형 케이스로 디자인 혁명을 이끈 아메리칸 1921 워치.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이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는 여러 기능을 한 시계에 넣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제작에 두각을 나타냈다. 예로, 1900년대 중반 이집트 국왕을 위해 제작한 옐로 골드 소재 회중시계에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3가지 차임(미니트 리피터, 그랑 소네리 및 쁘띠 소네리), 두 구간의 시간을 흐름을 동시에 재는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와 월령,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등 여러 기능을 담았다.
2024년에는 260주년 기념 회중시계(57개 기능 탑재)에 이어 2877개 부품으로 제작하고 무려 63개의 기능을 갖춘 ‘캐비노티에 더 버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공개했다. 이 시계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자신이 세운 기록을 깨고 다시 한번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 제조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캐비노티에 더 버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의 앞뒷면. 63개의 기능을 담은 시계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정교한 메커니즘에 필적하는 섬세한 장식
바쉐론 콘스탄틴은 ‘기술과 미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며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 시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 정신은 설립 초기부터 브랜드가 고수해온 철학이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장식의 범위는 시계 전체다. 케이스에 다양한 모티브를 새겨 넣거나, 다이얼 위에 작은 조각을 채우거나, 세밀붓을 활용해 그림을 그려 넣는다. 시계의 심장인 무브먼트에도 장식이 이뤄진다. 페를라주, 꼬뜨 드 제네브, 베벨링, 인그레이빙 등 다양하다.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긴 채 금속을 도려낸 후 그 위에 가공하는 스켈레톤 무브먼트는 바쉐론 콘스탄틴 장식 예술의 현재를 보여준다.

고대 문명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조각한 골드 아플리케가 특징인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그레이트 시빌라이제이션' 시리즈. 다이얼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가장자리에 배치한 4개의 작은 창을 활용해 시간, 날짜, 요일 정보를 보여준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현재 바쉐론 콘스탄틴은 매뉴팩처 안에 자체 장인 기술 공방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각 분야의 전문 장인은 인그레이빙(조각), 젬 세팅, 에나멜링, 기요셰(다이얼과 무브먼트 등에 새기는 패턴 장식) 작업을 진행한다. 시계를 작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는 작업이다.

고대 지도를 샹르베 에나멜 다이얼로 표현한 메르카토르 워치.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고대 문명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조각해 다이얼로 사용한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그레이트 시빌라이제이션’(2022년), 총 130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118개를 세팅한 칼리스타(1979),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지도 제작자 게르하르트 크레머의 서거 4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그가 만든 지도를 샹르베 에나멜 다이얼로 구현한 메르카토르(1994) 등이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시계다.

총 13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하이 주얼리 시계 칼리스타(왼쪽)와 제임스 워드 패커드를 위해 제작한, 20캐럿 골드 케이스가 돋보이는 포켓 워치.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 시계에 단순히 장식 기법을 구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컴플리케이션 메커니즘을 접목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 작품은 1918년 미국 기업가 제임스 워드 패커드를 위해 만든 회중시계다. 시간의 흐름을 재는 크로노그래프와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차임 기능을 더한 메커니즘만으로도 특별하다. 하지만 케이스에 수공 세공 장식을 해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까지 더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타일 & 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앙 셀모니.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바쉐론 콘스탄틴은 270주년을 맞아 혁신적 컴플리케이션과 아름다운 장식 기법이 어우러진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브랜드의 스타일 & 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앙 셀모니는 “올해는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기회의 시간이다”라고 말하며 “기계적인 측면에서의 연구와 혁신, 공예 기술에 대한 헌신을 접목한 시계를 통해 워치메이킹 철학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