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난동' 첫 재판…"불법 아닌 국민 저항권 행사" 주장도

'서부지법 난동 사태' 가담자들의 첫 재판일인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한 시민이 가담자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서부지법 난동 사태' 가담자들의 첫 재판일인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한 시민이 가담자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전후 서울서부지법 등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에 연루된 이들의 첫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난입 사태에 대해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우현)는 10일 특수건조물침입 등 혐의를 받는 피고인 63명 중 23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앞서 법원은 피고인 수가 많아 나눠서 재판하기로 했다. 이날은 오전에 14명, 오후에 9명이 재판을 받았다. 나머지 24명은 오는 17일, 16명은 오는 19일 첫 재판을 받는다.

이날 오후에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은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지난 1월 19일 새벽 3시쯤 서부지법에 난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법정에는 판사실을 수색한 혐의를 받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이모(48)씨와 종이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방화를 시도한 일명 ‘투블럭남’ 심모(19)씨도 출석했다. 각각 방실수색과 현존건조물방화미수 혐의가 추가된 두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유튜버와 간호조무사 실습생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피고인 9명 중 6명은 혐의를 전부 또는 일부 부인했다. 한 피고인의 변호인은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때 법원 경내에 들어갔다 체포됐기 때문에 법원의 평온을 해쳤는지에 대해선 법리적 다툼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아직 수사 기록 열람·복사를 마치지 않아 혐의를 일단 부인한다는 피고인도 있었다. 특임전도사 이씨 측 변호인은 “여럿이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방화를 시도한 심모씨 등 2명은 혐의를 전부 인정했다. 나머지 1명은 기록을 확인한 뒤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집단난동 사태 당시 판사실에 침입한 이모(48)씨가 지난 1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씨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특임 전도사'로 알려졌으며, 지난 19일 서부지법 7층까지 올라가 판사의 집무실 출입문을 부수고 침입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뉴스1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집단난동 사태 당시 판사실에 침입한 이모(48)씨가 지난 1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씨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특임 전도사'로 알려졌으며, 지난 19일 서부지법 7층까지 올라가 판사의 집무실 출입문을 부수고 침입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뉴스1

 
재판부는 오전엔 공무집행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14명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 피고인들은 지난 1월 18일 윤 대통령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 서부지법 인근에서 경찰관·기자를 폭행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량을 둘러싸고 공격한 혐의를 받는다. 불법 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법정에 선 경우도 있었다.


국방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직업도 치과의사, 약사, 사업체 대표부터 대학생, 무직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재판부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으로 피고인과 검찰에 충분한 변론 기회를 부여해 공정히 진행하겠다”면서도 “구속 인원이 많은 만큼 심리를 집중해서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오전 법정의 피고인 일부는 이날 공소 사실을 전부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일부 피고인들은 “불법 집회 참여는 인정하지만 경찰관을 폭행한 적은 없었다”거나 “우연히 공수처 차량을 위협하는 스크럼(여럿이 팔을 끼고 뭉친 무리)에 합류했다가 체포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한 변호인은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저항권…불법 아냐"

변호인들은 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설 때 수갑을 착용한 점을 문제 삼거나 모든 변호사가 함께 착석할 수 없어 변론권이 제한된다고 재판부에 항의했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 피고인들을 대리하는 이하상 변호사는 이날 오전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가 기관의 불법에 대해 국민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저항권은 최후 수단으로서 누구나 행사할 수 있고, 거기에는 일정한 유형력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 관점에서 자유 청년들의 행위는 불법 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반드시 무죄 판결이 선고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선 피고인 수가 많아 당사자들과 변호사가 방청석에 착석하기도 했다. 가족, 기자, 일반 방청객 등은 다른 법정에서 중계되는 영상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중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한 가족은 피고인 이름이 불리자 한숨을 쉬었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 가담자들의 첫 재판일인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가담자 측 이하상 변호사가 "반드시 무죄 판결이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서부지법 난동 사태' 가담자들의 첫 재판일인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가담자 측 이하상 변호사가 "반드시 무죄 판결이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폭력 사태를 겪은 서부지법은 청사 보안을 평소보다 강화했다. 법원 정문 양옆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민원인 차량 출입을 금지했다. 난입을 허용했던 후문은 경찰 버스로 전면 차단했다. 법원 방호 직원들은 청사를 출입하려는 취재진과 민원인의 가방 속을 일일이 확인했다. 중계 법정에 들어가는 피고인 가족들을 상대로는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했다.

이날 법원 옆 공덕 소공원 인근에서는 오전 9시부터 수십 명이 모여 서부지법 난동 가담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재판이 끝난 뒤 법무부 호송 차량이 정문을 통과할 때 한 남성은 “애국지사를 당장 석방하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