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 신임 대표는 이날 당선 후 첫 연설에서 미국이 캐나다에 존중을 보여줄 때까지 보복 관세 조치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경제를 약화하려 시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는 우리가 만드는 것, 우리가 파는 것,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부당한 관세를 부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캐나다의 가계·노동자·기업을 공격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가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하키에서처럼 무역에서도 캐나다가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5년 3월 9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자유당 신임 대표가 첫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니 대표는 또 "캐나다 정부는 정당하게 보복 조치를 했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이 우리에게 존중을 보여줄 때까지 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합병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에 대해선 "캐나다는 절대로 어떤 형식으로든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 1월 13일 미국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트럼프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직 중앙은행장이 재치 있게 말할 줄 안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했다. 해당 영상은 370만 번 조회됐다.
하지만 카니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진 않다. 캐나다 현지 매체인 글로브앤드메일은 "카니 대표가 이달 말 캐나다 의회가 새 회기에 들어가기 전에 조기 총선을 선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경우 4월 말~5월 초 조기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조기 총선이 실시되지 않아도 선거법에 따라 캐나다는 오는 10월 20일 이전에는 4년마다 이뤄지는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현직 의원이 아닌 카니 대표는 법적으로는 의원직이 아니어도 총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카니가 캐나다 역사상 최초로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총리인만큼 가급적 빨리 의원직을 확보하는 게 낫다"(로이터통신)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와 개인적 악연 없어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카니는 2008년 2월 캐나다은행 총재로 취임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캐나다 경제를 잘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2020년 외국인 최초로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총재를 맡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제 충격에도 맞섰다.
전임 트뤼도 총리와 달리 트럼프와 악연이 없다는 건 장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향후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해빙 무드'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조기 총선에서 지지율 1위인 보수당에 밀려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기에 자칫 "2개월짜리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카니 행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변수는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보수당의 압승이 예상됐으나 최근 트럼프를 향한 반감이 커지면서 자유당의 지지율은 상승세다. '51번째 주' 발언에 분노한 중도·진보 성향 유권자가 결집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 자유당 마크 카니가 2025년 3월 9일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인삿말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캐나다 CBC뉴스가 각종 여론조사를 집계해 발표하는 여론조사 트래커에 따르면 자유당은 보수당과 지지율 차이를 당초 20%포인트 이상에서 최근엔 10%포인트 안팎으로 좁혔다.
이코노미스트는 "6개월 전만 해도 카니와 같은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특권층이면서 진보주의적인 정치인)은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텐데 지금은 캐나다의 주권과 경제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카니는 트럼프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캐나다가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전쟁'에 돌입한 와중에 미군 등과 합동으로 북극권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캐나다군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9일까지 북극해에 인접한 캐나다 최북단 일대에서 미국·영국·벨기에·스웨덴·핀란드와 연례 연합훈련인 '나눅(Nanook·북극곰) 작전'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 캐나다 군 관계자들은 "트럼프의 조롱성 언급과 일방적 관세 부과에 따른 갈등에도 양국 군당국이 평소와 다름없이 협력을 지속하려 노력 중"이라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앨버타주(州) 에드먼튼에서 자랐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잉글랜드은행 총재에서 물러난 뒤엔 유엔의 기후변화 대책 및 금융 특사로 활동했다. 핀테크 업체 스트라이프의 이사를 지냈다. 영어·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실력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개발도상국을 주제로 연구해온 영국 경제학자 다이애나 폭스 카니와 결혼해 자녀 네 명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