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제(康熙帝). 바이두
이번 사자성어는 강유병제(剛柔幷濟. 굳셀 강, 부드러울 유, 아우를 병, 건널 제)다. 앞 두 글자 '강유'는 '강함과 부드러움'이다. '병제'는 '아울러 적절히 배합해 사용한다'란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강함과 부드러움을 병행한다’는 의미가 된다. 비슷한 표현으로 강유상제(剛柔相濟)가 쓰인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강한 수단과 유연한 수단이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유병제(剛柔幷濟). 바이두
군사 분야에서 성공은 계속됐다. 29세엔 정성공(鄭成功) 후손의 항복을 받아내고 타이완(臺灣)섬을 손에 넣었다. 수차례 러시아와 전투를 치른 후, 35세엔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고 최초로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 대부분은 우연이 아닌 그의 치밀한 계산과 '강유병제' 전략의 성과였다. 강한 일격이 필요한 순간엔 병력의 솔선수범 지휘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통치기에 청나라 영토는 꾸준히 증가했다.
경제 분야에서 그는 특히 치수(治水)에 힘을 기울여 황하 주변의 홍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백성의 세금 부담 경감을 위해 다양한 정책도 새로 도입했다. 독과점을 엄격히 금지한 것을 제외하면, 민간의 상업 활동에 대해 대체로 지나친 간섭보다는 자유와 방임을 우선했다.
그의 이런 일관된 노력 덕분에, '숙황(熟荒)'으로 명명된 특수한 장기 불황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었다. 즉 시장이 확장되고 노동이 세분화되는 등, 영국 철학자 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강조한 소위 '경제적 역동성(economic dynamism)'이 강화된 것이다.
학문 분야에서 이룬 성과도 만만치 않다. 그는 학자들을 소집해 총 4만7,035자가 실린 '강희자전(康熙字典)'을 편찬했다. 이로써 한(漢)나라 허신(許愼)이 저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540개 부수 체계가 214개 부수 체계로 새롭게 정돈됐다.

강희자전(康熙字典). 바이두
그는 황제인 자신을 하늘의 '신하'로 낮추곤 했다. 무소불위의 황제를 군림하는 자가 아닌, 섬기는 직책으로 해석한 것이 놀랍다. 요즘 공직자들의 상식적인 직업관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는 지방 관료의 편지까지 일일이 답장을 하며 분주하게 국정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는 주변에서 기존 관료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만류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황제로 살면서, 만약 어떤 한 가지 일이라도 근면하지 않게 되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칠 수 있습니다. 또한 만약 어느 한 순간이라도 태만하면 후대에 길이길이 우환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는 68세까지 살아 당시 기준으로 천수를 누렸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조심스럽게 먹고 마시고, 규칙적으로 취침과 기상을 하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그의 이런 관점은 상식과 과학에 부합한다. 그는 단약(丹藥)이나 불로장생 등 헛된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강희제는 큰 업적을 이룬 황제였다. 동시에 인간미를 상실하지 않고 원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인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강함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섞어 구사한 것도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을 듯싶다.
'강유병제'. 난해한 느낌의 중용(中庸)보다 이해하기도 한결 수월하다. 간결하지만 음미할수록 큰 지혜가 담긴 말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