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놓은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액이 연간 10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소득세 개편안과 국민의힘 일각에서 주장하는 종합부동산세 폐지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를 합산한 결과다. 상속세 배우자 공제 폐지, 소득세 물가연동제까지 포함할 경우 세수 감소 규모는 2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커진 조기 대선 가능성에 명운을 좌우할 중산층 표심을 얻으려는 전략이지만,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에 대한 고려 없이 정치권이 경쟁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정치권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감세 경쟁의 전선은 상속세에서 소득세∙부동산세로 넓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앞세운 건 소득세다.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은 최근 근로소득세율 6% 구간을 현행 ‘1400만원 이하’에서 ‘1500만원 이하’로, 15% 구간을 ‘1400만~5000만원’에서 ‘1500만~5300만원’으로 조정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렇게 조정하면 세수는 연간 2조7000억원(종합소득세 포함) 줄어든다.
민주당은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한도를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은 기본공제를 170만원으로 조정할 경우 세수 감소분을 2조원으로 추정했다. 180만원으로 올리면 대략 3조원대의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민주당은 물가가 오르는 만큼 과세표준(과표)을 조정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추진도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12조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한 토론회에 참석해 직접 밝힌 수치다. 이 대표조차도 “어느 정도 선에서 조정할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국민의힘은 부동산으로 맞불을 놨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현재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중과세(최고 5%)를 지방 주택 추가 구매자에 한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다주택자 중과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세수 감소분은 지난해 기준 4655억원 정도다. 종부세는 주택보다 토지분 비중이 크다. 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종부세 전면 폐지로 방향을 튼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대략 5조원 규모의 세수가 사라진다.
여야 감세 경쟁의 진앙이었던 상속세는 세수 감소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다. 여야 모두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공감하고 있는데 이 경우는 세수가 얼마나 줄어들지 추계가 어렵다. 상속세는 세율이나 공제 한도 등에 따라 전략 자체가 달라지는데 현재로썬 개별 납세자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산세→유산취득세’ 변경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약 2조원)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세수 상황은 암울하다. 2년간 무려 87조2000억원이 계획보다 덜 걷혔다. 올해도 규모가 문제일 뿐 세수 결손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가 내놓은 올해 국세 수입 예산안은 382조400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45조9000억원 증가해야 한다. 여기엔 지난해보다 법인세 수입이 좋을 거란 기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경기 둔화와 트럼프발(發) 통상 충격을 고려하면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기여도가 큰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해 흑자 전환으로 기대를 키우고 있지만 2023년 영업적자 등 이월결손금 등 공제액이 많아 실제 법인세가 예상보다 적을 거란 전망이다.
내수 부진,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하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 다른 세목 역시 큰 폭의 세수 증가를 기대할 상황은 아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이 주장하는 감세 정책이 현실화하면 세수 여건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안 좋아 추가경정예산으로 재정을 풀자는 얘기를 하는 판에 감세라니 타이밍이 맞느냐”며 “세금을 깎아주면 나머지는 어디서 가져올 것인지 종합적인 로드맵도 없이 마구잡이로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깎아주기’로 시작한 선거전은 본격적인 ‘퍼주기’ 경쟁으로 확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총선 공약을 등을 고려하면 여야 할 것 없이 청년이나 소상공인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을 앞세울 전망이다. 현금성 지원금도 늘어날 게 뻔하다. 민주당은 추경안에서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총 13조원 투입되는 사업이다. 이와 별개로 지역화폐 할인비용 국비 지원 의무화(2조원)도 추진한다. 국민의힘 역시 비수도권 GTX 확충 등 사회간접자본(SOC) 공약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정부의 총지출은 연평균 6% 속도로 증가했다. 아직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40% 정도지만 현재 증가율을 유지하면 5년 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6%)에 도달하고, 10년 후에는 50%를 넘어서 복지 강국으로 불리는 독일∙스웨덴 등을 추월한다. 대부분 고령화 등에 따라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비용이다. 지출 대응책을 마련할 상황에 감세로 역주행에 나선 꼴인데 여야 모두 구멍 난 세수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 대안은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의 부재 속에 재정 당국은 통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상식적으로 모든 세금을 다 깎아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기획재정부 관계자)며 답답함을 토로할 뿐 여야 사이에 끼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동력을 잃었다.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적자가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할 원칙을 세워 두자는 지적이다. 예정처에 따르면 올해 85조원대인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5년 후 약 100조원으로 증가한다. 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관세로 보완하는 강수라도 둘 수 있지만, 한국은 감세 후 부족한 세수를 메울 대안조차 없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조세개혁을 통한 세입 기반 확충, 균형 잡힌 재정 운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기자
-
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