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마록' 세계관 속 가상의 비밀 종교인 '해동밀교'(사진)의 전경이다. 3D 그래픽 작업물을 2D 애니메이션이나 카툰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3D 카툰 렌더링' 작업을 통해 구현했다. 사진 로커스 스튜디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장면이다. 2020년대 개봉작 중 유일하게 관객 수 100만명을 넘긴 ‘사랑의 하츄핑’(2024)을 포함, 지난 15년간 전국 관객 수 1만 이상을 기록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모두 ‘어린이 타깃’이었다. 그러나 최근 12세 이상 관람가인 ‘성인 타깃’ 작품들이 연이어 극장에 걸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들이 악에 맞서는 대서사시를 담은 오컬트 장르다. 이우혁 작가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인터넷에서 연재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전투 장면은 블록버스터를 방불케 하는 몰입감을 자랑한다.
이대희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스터 로봇’은 어느 날 로봇이 되어버린 남자와 가족을 잃은 소녀가 의지해나가는 이야기. 도시를 배경으로 로봇과 소녀가 몸 바쳐 서로를 구하는 장면은 ‘타격감’을 중요시하는 액션 마니아들을 공략했다.

'미스터 로봇'은 30년 후, 로봇이 보편화 된 2055년을 배경으로 한다. 폐기를 앞둔 오류 로봇 맥스(사진)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된 로봇 관리대 대원(RCC) 한태평이 나나라는 소녀를 구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장판 뽀로로 공룡섬 대모험', '유미의 세포들' 등에 참여한 302 플래닛이 공동 제작을 맡았다. 사진 NEW
OTT도 가세했다. 넷플은 올해 오리지널 영화로 첫 한국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별에 필요한’은 소설 원작 ‘그 여름’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의 로맨스 작품.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 제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의 ‘롱디 커플’ 이야기를 그렸다. 감독 또한 아이러브캐릭터와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은 어린이물, 판타지물이라는 애니메이션 시장의 인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다양화 전략’의 바람이 분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2003년 시작된 애니 ‘뽀로로’의 흥행에 힘입어 ‘어린이 타깃’ 위주로 성장해 왔다. 2000년대 초 애니메이션 투자 및 제작 열풍이 일기도 했으나, 한국 영화의 흥행 등으로 입지가 줄었다. 성인들 사이에선 일본·미국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며 설 곳이 더 좁아졌다. 타깃을 확대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이유다.

지난해 8월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 내 전광판에 나오는 '사랑의 하츄핑' 광고 영상이다.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수 123만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 상 220만명을 동원한 '마당을 나온 암탉'(2011)에 이어 흥행 2위를 차지했다. 뉴스1
지원 사업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부터 12세 이상 연령이 타깃인 ‘청장년층용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을 신설했다. 원작 IP를 활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올해 개봉한 ‘퇴마록’(2025) 또한 2022년 시작된 ‘IP 활용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받았다. IP 활용은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작품 성공 확률은 높일 수 있어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퇴마록' 속 박윤규 신부(사진)가 성스러운 오오라와 기도를 활용해 퇴마 액션을 취하는 모습. 그는 교리에 반하는 구마 활동으로 파문 당한 신부로, 오랜 친구 장호법을 돕기 위해 '해동밀교'로 향하는 인물이다. 사진 로커스 스튜디오
완성되어 성공까지 이어진 작품의 수가 적다 보니, 투자 유치를 받기도 어렵다. 지원금을 받고 펀딩까지 성공했는데 제작이 무기한 밀려, 지원금이 환수되고 개봉이 4년이나 밀린 ‘거신: 바람의 아이’(2023) 같은 상황도 발생한다. 지원금을 받았다고 작품의 완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생겨나는 문제다.
로커스 관계자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영화 시장 5~6위, 애니메이션 시장 6~9위를 기록하는 규모 있는 시장”이라며 “극장 전체 매출의 20%가량이 애니메이션일 정도로 관객들이 해외 애니메이션 소비에 적극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타깃을 확대하고, 완성작을 늘려 성공 가능성을 높여나가면 승산이 있다고 보는 이유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한창완 교수는 “민·관 모두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 애니메이션 만의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