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원 "트럼프 상대하려면, 담대하고 창의적인 지도자 필요해" [월간중앙]

월간중앙이 주목한 22대 국회 뉴리더(10)
‘12·3 비상계엄’ 적중한 정보통,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가능성’ 최초로 제기해
홍장원 메모 가필 의혹에 “6일까지 국회 상주, 만난 적 없어”

군·경찰로 옹위되는 철옹성 속에 국민을 버리고 숨어 들어가서 다시 탄핵당할 위험에 처한다면 친위 쿠데타 내지는 친위 경비계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계엄령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해 7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엄 가능성을 언급하자 본회의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여당 의원들은 발언자인 박 의원을 향해 욕설 섞인 비난을 쏟아냈다.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선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개월여 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 박 의원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박 의원에게 ‘국회의원이 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지난해 7월 계엄 가능성을 제기했던 일”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은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계엄법을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은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계엄법을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계엄은 계몽령? “일고의 가치도 없어”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계몽령’이라고 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대통령이 비상대권(국가 비상사태에 특별한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쓰기 위해서는 전시 등 위기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까 비상대권은 사전 경고용 또는 계몽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합동참모본부에서 발행하는 계엄실무편람 첫 페이지를 보면 ‘계엄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의 틀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계몽령 주장은 사후적 변명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 연설 중 야당이 박수를 치지 않은 것도 계엄 선포 이유로 들었다.
 

“지난 4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를 방문했을 때 공화당은 USA(미국)를 연호하며 환영한 반면 민주당은 항의 피켓을 들고 박수 한 번 안 쳤다. 윤석열의 논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도 당장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는 것 아닌가?”
 
4일 미 워싱턴 DC 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텍사스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알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를 향해 “당신은 권한이 없다(no mandate)”고 야유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USA”를 외치며 반격했다. 여러 외신은 ‘양극화된 미국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28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28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재발 방지 대책은?
 

“전시계엄은 국회에 사후 승인을 받는 걸 가능케 하더라도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은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계엄법을 개정해야 한다. 계엄은 군이 사법·행정권을 운영하는 중차대한 일인 만큼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한때 ‘홍장원 메모 가필’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미디어워치가 사설 문서전문감정기관에 의뢰한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정치인 체포’ 관련 메모 가필이 박 의원 필체로 추정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이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탄핵시키려고 한 내란 행위”라고 찬동하면서 논란이 퍼졌다.

국민의힘은 홍 전 차장의 ‘정치인 체포’ 관련 메모 가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홍 전 차장이 파란색 글씨는 본인의 보좌관 글씨, 까만색 글씨는 본인 글씨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내 글씨라는 건가? 내가 어느 글씨를 가필했는지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대답을 못 한다. 이 메모가 작성된 건 12월 3일 11시 30분이 지나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12월 3일 밤 11시 직전부터 12월 6일까지 국회 밖을 나간 적이 없다. 국정원도 비상 상황이었으니 홍장원이 국정원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홍장원을 만나려면, 국정원 시설을 뚫고 차장 집무실에 들어가야 한다. 차장 집무실에 보좌관만 몇 명인데 어떻게 뚫고 들어가나?”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엄 당시 특전사 대원들이 지참한 것과 같은 케이블 타이를 시연하며 문 봉쇄용이아니라 정치인 체포용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엄 당시 특전사 대원들이 지참한 것과 같은 케이블 타이를 시연하며 문 봉쇄용이아니라 정치인 체포용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계 풀어가는 역할 하고파”

그 말인 즉 만약 홍장원을 만났다면 이를 목격한 보좌관들의 증언이 나왔을 것이다?
 

“국정원 정무직 곁에는 반드시 수행원이 붙어 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국정원에서 홍 전 차장의 보좌관들을 감찰조사 안 했겠나? 그 보좌관들이 홍 전 차장 일정을 아주 세세하게 알고 있는데, 내가 홍장원을 만났다면 진작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홍장원은 서로 만날 사이가 아니다. 나는 홍장원을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했던 사람이다. 만약 홍장원이 계엄하겠다고 마음 먹고 김용현과 계획을 짰으면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국회와 언론에서 수차례 얘기했다. 홍장원이 계엄에 참여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메모 가필 의혹 제기에 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나?
 

“그렇다. (비상계엄) 직후에 국정원 몇몇에게 ‘홍장원과 박선원을 엮을 수 있는 거리를 찾아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제보를 받았다. 전·현직을 만나 ‘혹시 홍장원이 박선원에 관한 얘기 하더냐’, ‘박선원이 혹시 홍장원 얘기 하더냐’ 그렇게 묻고 다닌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박 의원이 홍장원 메모를 국회에서 제시하면서 내란 프레임이 씌워졌다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계엄 가능성을 제기해왔던 사람이다. 지난해 9월 초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경호처장 시절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을 만난 것은 내란 예비 음모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다. 마치 없는 내란죄를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하는데, 윤석열조차 홍장원과 두 차례 통화한 적이 있다고 인정한다. 내가 봤을 때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홍장원과 나를 엮으려고 한 것이다.”
 
1963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박 의원은 영산포상업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동아시아학 석사를, 영국 워릭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마친 외교·안보 전문가다.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문재인 정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총영사를 지냈으며, 2021년 11월 국정원 제1차장으로 임명됐다. 2023년 12월 민주당의 4호 인재로 영입된 그는 22대 총선에서 인천부평을에서 당선됐다.

올해 목표한 것이 있다면?
 

“한·미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보고 한·미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과하게 대했다는 비판보다는 젤렌스키가 트럼프 대통령을 모르고 잘못 접근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 내 희토류 광물에서 나오는 이익을 나눠 갖자고 제안해왔다. 경제 안보는 군사 안보와 연결돼 있다. 미국과 이익을 공유하면 안보는 따라오게 돼 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최기웅 기자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최기웅 기자

 

“트럼프 말, 한 호흡 참으면 기회 열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비교해 높은 한국의 관세를 거론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 4일(현지시각) 연설에서 그는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이 향후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파트너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인되지 않은 말을 연설에서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 대통령직 수행이기 때문에 굉장히 공세적으로 주변국을 압박할 것이다. 이를 위기로 생각해 대비하는 것은 좋으나, 세세한 것까지 반응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예를 든다면?
 

“한국이 미국 제품에 관세를 4배를 매기고 있다고 했을 때 우리가 ‘4배가 아니라 2배’라고 하면 안 된다. 트럼프 본인도 4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트럼프 1기 때 상대해봤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이슈에 대해 말하고 나면 금세 다른 이슈로 화제를 돌린다. 그때 다시 협상할 기회가 생긴다.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한 호흡 참으면 기회는 열린다. 나는 공화당 정부라서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내다보는 이유는?
 

“미국 민주당은 다자주의(多者主義)를 지향한다. 여러 사람이 합의를 본 것이기 때문에 예외가 없다. 하지만 공화당 트럼프는 양자주의(兩者主義)이기 때문에 예외가 많다. 예외는 기회를 뜻한다.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을 두려워할 필요도, 무슨 말에 깜짝 놀랄 필요도 없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 공통분모를 찾자는 일반론적 입장에서 트럼프 정부와 대화하면 된다.”
 

다음 대한민국 지도자는 담대한 사람이어야 되겠다.
 

“그리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를 사와 정제해 수출하는데, 사우디가 직접 정제한다고 해서 광양 지역 정유 공장이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를 수출하는 첫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더는 석유 때문에 중동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미국 석유를 사와 정제해서 팔겠다고 제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 좋아할 것이다. 이런 기회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고 마음으로 진실되게 소통하는 겸손한 이웃 친구가 되겠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