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선고 날 못잡는 헌재…그 뒤엔 한계 부닥친 3·3·3 원칙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108일째인 지난 31일에도 선고일 지정을 하지 못했다.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은 이날 국회 법사위에서 선고일에 관해 “평의 내용은 모른다”면서도 “국민적 관심과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심리 중”이라고만 했다. 이번 주 선고마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재판관들이 전 정부를 포함한 지명권자에 휘둘려 아무 결정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법조계 의심도 커지고 있다. 헌법학계에선 이번 기회에 개헌을 통해 재판관 구성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모습. 김경록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모습. 김경록 기자

 

여야, 재판관 실명 거론하며 진영 싸움

헌재의 선고 지연 배경으로 꼽히는 핵심 요소는 마은혁(더불어민주당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다. 여야는 이날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내란 지속, 헌정 붕괴, 경제 위기를 키운 책임을 지고 즉시 임명하라”(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마 후보자는 법복 입은 좌파 활동가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임명이 아니라 사퇴”(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라고 했다.

이렇게까지 싸우는 이유는 결국 “진보 성향의 마 후보자가 들어올 경우 결론이 달라진다”는 ‘이념 재판’ 의심 때문이다. 현 8인 체제는 임명 배경 등에 따라 5(인용) 대 3(기각 또는 각하)으로 굳었고, 마 후보자가 들어올 경우 인용 정족수 6인을 채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현 8인 재판관 추천권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문형배·이미선), 김명수 전 대법원장(정정미·김형두), 조희대 대법원장(김복형), 윤 대통령(정형식), 민주당(정계선), 국민의힘(조한창)으로 나뉜다. 민주당은 이 중 “정형식·조한창·김복형 재판관은 을사 5적의 길을 걷지 말라”(박 원내대표)며 반대 3인을 특정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3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더불어민주당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3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더불어민주당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87년 헌법 '3·3·3원칙', 결국 탈 났나…“나눠먹기식” 잠재 

법조계에선 “정치권이 재판관 이름까지 거명하며 결론을 예측하는 것은 문제지만, 헌법상 재판관 구성 방식의 한계도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7년 6월 항쟁 결과로 설립된 헌재는 헌법상 ‘9인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111조 2항)하고 ‘(그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111조 3항)는 규정에 따라 구성된다.

이는 행정·입법·사법부에 3명씩 추천권을 줌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지만, 나눠먹기식 구성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차진아 고려대 법률전문대학원 교수는 “3·3·3은 각 정파에 따른 코드 인사 배경이 되기도 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만 해도 8 대 0 인용이 나왔지만, 이후 당파성 강한 인물을 넣으려는 여야의 시도가 노골화하면서 헌재가 점점 진영싸움의 마지막 보루처럼 됐다”고 말했다.

3·3·3 구조에 애초 편향성이 잠재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대통령 몫 3명과 국회 여당 몫 1.5명을 확보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의 지명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며 “1972년 군사 정부에 신설된 헌법위원회 구성 방식을 전두환 정부가 87년 헌법에 무비판적으로 넣은 결과”라고 했다.

국민의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간사(가운데)와 위원들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등 민주당의 국헌문란 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간사(가운데)와 위원들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등 민주당의 국헌문란 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어느 정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느냐에 따라, 또 임명권자의 정파적 의지에 따라 헌재는 얼마든지 정치 집단으로 구성될 잠재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헌법학 교수는 “임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임명권자 의중에 따른 재판관 결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학계 “오래전부터 개헌 논의…독일식 모델 가야”

이번 기회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 교수는 “사법부 코드 인사를 막기 위해 개헌을 하자는 주장은 헌법학계에서 꾸준히 있었다”며 “독일식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독일 헌재는 재판관 16명 전원을 국회(하원·상원 각 8명씩)에서 임명하는데 의결 정족수를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정해놨다. 후보자 추천위원회 단계에서도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본회의로 간다.

차 교수는 “독일처럼 선출하면 정파성이 강한 후보자를 지명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안으로선 최선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도 “독일식 모델이 밋밋한 재판관만 뽑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현시점에서는 독일식 개헌이 사법 신뢰도를 높일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헌법재판관 자격과 구성의 쟁점과 과제’(2016)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9인 재판관 중 대통령이 3명, 상·하원이 각 3명씩 임명하는 등 의회 역할을 상당히 인정하고, 일본 최고재판관은 내각이 법조인 외에 관료·외교관·교수 중에서 임명하며, 총선에서 찬반 국민심사투표를 거친다.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과 독립성 및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결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야 의원들의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야 의원들의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8일까지가 헌법수호 의지 갈림길”…헌재 “기다려달라”

헌재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재판관 구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방치하고 넘어갔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관심을 가지고 개헌이든 입법 논의든 해야 한다”면서도 “우선 더 시급한 것은 헌재가 문·이 재판관이 퇴임하는 18일 전까지는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6인 체제가 될 경우 윤 대통령 사건뿐 아니라 헌재 기능 자체가 사실상 마비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헌재가 그런 초헌법적 사태를 막지 않는다면, 존재 이유도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 관계자는 이날 문·이 재판관 퇴임 후 6인 재판관 체제가 되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은 더 힘들어진다는 물음에 “재판관들도 내용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18일 전 선고를 낼지 말지는 더 기다려달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