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같은 힘을 자랑하는 여자 테니스 세계 1위 사발렌카. 왼 팔뚝에 호랑이 문신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자테니스가 로저 페더러(44·스위스)·라파엘 나달(39·스페인·이상 은퇴)·노박 조코비치(38·세르비아·세계 5위)가 이끌던 '빅3' 시대가 저문 가운데 여자부는 8년간의 무한경쟁 시대를 끝내고 '4강 체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메이저 23회 우승의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4·미국·은퇴)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한 주인공은 아리나 사발렌카(28·벨라루스·세계 1위), 이가 시비옹테크(24·폴란드·2위), 제시카 페굴라(31·미국·3위), 코코 고프(21·미국·4위)다. 나란히 세계 랭킹 1~4위에 올라있는 네 선수는 다음 달 열리는 프랑스오픈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프랑스오픈은 호주오픈·윔블던·US오픈과 더불어 테니스 4대 메이저로 꼽히는 대회다.
사발렌카는 무시무시한 상승세로 '만년 2인자' 꼬리표를 뗐다. 시비옹테크에 밀려 2022년부터 3년 가까이 세계 2위에 머물렀던 그는 지난해에만 두 차례 메이저 우승(호주·US오픈)을 쓸어 담으며 마침내 1위로 올라섰다. 사발렌카는 팬에게 '호랑이'로 불린다. 왼 팔뚝에 큼지막한 호랑이 타투가 있어서다. 18세 때 '코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싸우자'라는 의미로 새겼다. 플레이 스타일도 맹수처럼 상대를 몰아친다. 그는 1m82㎝의 큰 키와 넓은 어깨를 이용해 내리꽂는 강서브가 위력적이다. 22일 독일 포르셰 그랑프리에서 준우승한 사발렌카는 프랑스오픈에서 통산 네 번째 메이저 우승 트로피에 도전한다. 클레이(흙) 코트에서 열린 포르셰 그랑프리는 프랑스오픈의 전초전 격이다.
냉정한 승부사 시비옹테크. 현존 최강자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시비옹테크는 최근 사발렌카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여전히 '현존 최강자'로 꼽힌다. 현역 여자 선수 중 가장 많은 메이저 우승(5회)을 달성했다. 그중 네 차례 우승 트로피를 프랑스오픈(2020·22·23·24년)에서 들어 올렸다. '클레이코트의 황제' 나달과 닮아 별명도 '여자 나달'이다. 나달은 프랑스오픈 역대 최다인 14회 우승자다. 많은 전문가는 '다음 달 프랑스오픈이 끝나면 시비옹테크가 세계 정상을 탈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수학 문제 풀이와 독서를 즐기는 시비옹테크는 힘보다는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덕분에 경기력이 꾸준하다. 고향 폴란드에선 축구 스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37·바르셀로나)와 함께 '국민 남매'로 불린다.
한국계 미국 스타 페굴라. 금수저 출신이지만 노력형이다. AFP=연합뉴스
페굴라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한마디로 대기만성형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세계 60~70위권에 머물렀던 페굴라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급성장했다. 28세 때이던 2022년 세계 3위권 선수가 됐다. 페굴라는 하프 코리안으로 유명하다. 어머니 킴(56)이 한국계 입양아다. 미국의 기업가 테리(74)를 만나 1993년 결혼했다. 아버지 테리와 어머니 킴은 미국에서 천연가스, 부동산 등의 사업을 하는 억만장자 기업가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페굴라 부부의 순자산이 67억 달러(약 8조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페굴라 부부는 2011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버펄로 세이버스를 1억8900만 달러(약 25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2014년 9월엔 미국프로풋볼(NFL) 버펄로 빌스를 14억 달러(약 1조8700억원)에 인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부는 공동 구단주다. 페굴라는 '금수저라서 편하게 운동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2014년부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페굴라는 "부모님의 그런 배경으로 인해 힘들 때도 있었다"면서도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선수 생활 초반 부모님의 도움이 나의 성장을 촉진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페굴라는 '여자 4강' 중 유일하게 메이저 우승이 없다. 작년 US오픈 준우승이 최고 성적인 그는 프랑스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왕좌에 도전한다.
세리나 윌리엄스의 후계자로 불리는 고프. AP=연합뉴스
고프는 2004년생 '초신성'이다. 18세 때이던 2022년 프랑스오픈에서 준우승에 오르며 세계 테니스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US오픈에선 우승까지 차지하며 '10대 수퍼스타'로 떠올랐다. 고프는 '세리나 윌리엄의 후계자'로 통한다. 테니스를 시작한 것도 윌리엄스 때문이다. 2009 호주오픈 TV 중계에서 우연히 윌리엄스의 플레이를 보고 테니스에 반했다. 농구선수 출신 아버지와 육상선수였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고프는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 천재'로 통했다. 미국 기업들은 앞다퉈 고프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고프는 2022년 스폰서 계약을 통해 약 100억원 이상을 벌어 들였다. 키 1m75㎝인 고프는 빠른 발과 강한 체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정교한 샷과 지구력을 무기로 상대를 압박한다. MZ세대인 고프는 경쟁을 즐긴다. 대회 출전 기간 카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현지 맛집을 찾아 다닌다. 선수들은 피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즐겨 먹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