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포탄 900만발 보내자 러, 이동식 방공시스템 줬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위해 지난해 한 해에만 포탄 900만발을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위해 러시아 화물선이 49차례나 동원됐고, 미사일 등까지 포함한 전체 군수물자 지원 양은 컨테이너 2만 개 이상 분량이다. 이는 한·미·일 3국의 주도로 11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이 28일 발표한 첫 번째 보고서에서 북·러 간 불법적 군사 협력 실태를 파악한 결과다. 

지난해 10월 한·미·일 등 11개국이 참가한 다국적제재모니터링(MSMT·Multilateral Sanctions Monitoring Team)이 출범했다. 당시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서올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커트 캠벨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 오카노 마사타카 당시 일 외무성 사무차관 등과 나란히 서서 MSMT 관련 발표를 하는 모습. 공동취재단=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한·미·일 등 11개국이 참가한 다국적제재모니터링(MSMT·Multilateral Sanctions Monitoring Team)이 출범했다. 당시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서올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커트 캠벨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 오카노 마사타카 당시 일 외무성 사무차관 등과 나란히 서서 MSMT 관련 발표를 하는 모습. 공동취재단=연합뉴스

"러시아 방공시스템 북한에 이전"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는 북·러 무기 이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북·러 군사협력에 활용되는 네트워크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북한에서 러시아로 컨테이너 2만 개 이상 분량의 포탄, 탄도미사일, 중포(重砲), 대전차무기, 대전차 로켓 등 군수물자가 이전됐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 중순 사이 포탄과 방사포탄 약 900만 발이 러시아 화물선을 통해 49차례에 걸쳐 이전됐다. 러시아 극동 항구에 도착한 포탄은 철도를 통해 중서부 탄약고로 이동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은 러시아에 완성차, 방사포, 자주포, 재장전 차량 등을 포함해 3개 여단이 사용 가능한 분량의 200대 이상의 중포를 넘겼다.

MSMT는 북한의 뒷배를 자청한 러시아의 훼방으로 종료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전문가 패널을 대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권위 있는 유엔 안보리 체제 내에서의 활동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간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상임이사국인 중·러의 훼방으로 제대로 저격하지 못했던 북·러의 불법 군사 협력을 낱낱이 서술했다.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북한으로 '반대급부' 차원에서 제공한 기술과 무기 체계도 적시됐다. 특히 러시아가 적어도 1대 이상의 이동식 방공시스템 '판치르'(Pantsir)급 전투차량을 북한에 이전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공개한 5000t급 신형 다목적구축함 '최현호'의 방공무기체계가 러시아 판치르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보고서를 통해 공식 확인된 셈이다.


이외에도 MSMT는 "러시아가 북한에 탄도미사일 데이터 관련 피드백을 제공하고, 유도 성능을 개량하는 작업도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원해온 기술인데, 실제 전장에서 쓰는 북한 미사일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도 기술 이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미사일총국과 국방과학원, 탐지전자전총국이 구축함 '최현'호에 탑재된 무장 체계들의 성능 및 전투 적용성 시험을 지난달 28~29일에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최현함에 탑재된 함대공 유도탄 탑재 발수, 추적레이더, 기관포, 구동축 등이 러시아 '판치르'와 거의 똑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미사일총국과 국방과학원, 탐지전자전총국이 구축함 '최현'호에 탑재된 무장 체계들의 성능 및 전투 적용성 시험을 지난달 28~29일에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최현함에 탑재된 함대공 유도탄 탑재 발수, 추적레이더, 기관포, 구동축 등이 러시아 '판치르'와 거의 똑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신문=뉴스1

 
보고서에는 지난해 1만 1000명, 그리고 최근 3000명 이상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러시아로부터 포병과 드론 대응, 그리고 기본적인 보병 작전 훈련을 이수했다"는 지적이 담겼다. 북한군이 전장에서 습득한 구체적인 훈련 내용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축적한 현대전 경험이 향후 남측을 겨냥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군인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 이창호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불상(중장),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 대사. TVBS 화면 캡처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군인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 이창호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불상(중장),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 대사. TVBS 화면 캡처

"제3국 계좌로 금융 거래" 

보고서는 북·러 간 '검은 네트워크'의 실상도 거론했다. MSMT는 2023년 11월부터 12월까지 무기 거래에 활용된 러시아군 수송항공사령부와 러시아 국영항공사 224 항공단이 운영하는 항공기 정보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또 "남오세티아에 개설된 북한의 루블화 계좌를 통해 금융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6월 정부는 러시아산 정제유를 북한에 판매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남오세티아 소재 '유로마켓'을 독자 제재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로 북한 노동자의 해외 파견이 금지됐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만 북한 노동자 8000명이 러시아에 파견됐다는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MSMT는 "러시아가 올해 상반기에 수천명의 북한 인력을 추가로 건설, 임가공업, IT, 의료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관측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도 북한 노동자 481명(건설 관련 198명, 섬유 관련 283명)이 러시아에 추가 파견됐다.

보고서 전문은 웹페이지 https://msmt.info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엑스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엑스 캡처

MSMT, 러시아 책임론 부각 

이날 MSMT 11개국은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성명에서 MSMT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북한 제재 위원회(1718 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해체된 데 따른 국제 감시 공백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이번 보고서의 의의를 설명했다.

MSMT는 이어 "전문가 패널이 해체 이전의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된다는 전제 하에 유엔 제재 체제의 핵심 요소로서 전문가 패널을 재설립하기 위한 대화의 기회는 여전히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장 전문가 패널 복원을 실제로 염두에 둔 발언이라기보다는 패널 해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러시아를 향해 MSMT의 정당성을 문제 삼지 말라는 선언적 메시지로 풀이된다. MSMT 결과물에 불만이 있다면 기존의 전문가 패널을 되살리면 되지 않으냐는 반박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MSMT와 러시아 간 별도의 소통은 없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탄생한 MSMT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지난 2월 첫 운영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이날 첫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동력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다만 자발적으로 모인 국가 연합에 가까운 MSMT가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전신인 유엔 전문가 패널에 비견할 공신력과 신뢰도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과 러시아 등의 행동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가 뒤따를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더 많은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보고서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MSMT의 규모를 11개국에서 확대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