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7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프리랜서 김성태
대한소아심장학회 이사장인 이형두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소아 심장 분야의 기피 현상은 의료사고에 따른 '형사 리스크'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가 나쁘면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분위기 때문에 생명과 직결된 소아 심장 분야의 지원율이 크게 떨어졌다"며 "설사 지원하더라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진료에 그칠 가능성이 커 이는 장기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의사·환자 단체, 의료사고 안전망에 머리 맞댄 이유
대한소아심장학회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환우회)는 최근 공동 성명을 내고 "과도한 분쟁으로 소아청소년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고위험·고난도·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행위가 위축 또는 기피되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성명의 핵심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형사 고소에 앞서 의료분쟁 조정 절차를 우선한다는 것이다. 안상호 환우회 대표는 "의사·환자 단체가 함께 필수의료 의료진의 수사·사법 리스크를 줄이고, 환자 피해 발생 시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낸 것은 국내 최초"라고 밝혔다. 의료사고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의사와 환자가 머리를 맞댄 셈이다.
이번 합의의 배경에는 소아 심장 진료 인력의 급감이란 의료계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2017년 12월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을 가속한 계기로 꼽힌다.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7년 112.1%에서 2023년 25.5%로 떨어졌다.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대한소아심장학회 회장)는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난 사건이지만, 당시 의사가 국민 앞에서 수갑을 찼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 분야를 선택하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소아 심장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소아흉부외과 전문의는 15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학회는 추정한다.
학회 측은 의료 과정 중 중상해나 사망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와 보호자에게 위로를 전하고, 조정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의료계에선 의료사고 직후 건넨 사과나 위로가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료진이 쉽게 사과하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져 왔다. 이 교수는 "환자들이 의료계 입장을 먼저 이해해준 만큼 의사들도 사고 발생 때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경과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엔 필수의료 관련 의료사고에서 의료진의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불기소하는 등의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이 포함돼있다. 이 교수는 "대선 국면에서 의료개혁 논의가 다소 묻힌 측면이 있지만, 정책 추진의 동력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