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걸렸던 트럼프 상호관세, 하루만에 부활…전세계 대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제닌 피로 워싱턴 DC 임시 연방 검사장 취임 선서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제닌 피로 워싱턴 DC 임시 연방 검사장 취임 선서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이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시행 중단을 명령한 전날 연방 국제통상법원(CIT)의 1심 판결 효력을 일시 보류시켰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은 항소심(2심) 심리가 진행되는 일정 기간 임시 복원된다.

 
상호관세를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 통상 질서가 대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ㆍ통상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 정부로선 극히 유동적인 환경에서 상황을 최대한 면밀히 파악하며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상호관세, 기존대로 당분간 부과 가능

연방 항소법원은 이날 “CIT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등을 무효라고 한 판결은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ㆍ피고 측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보류된다”고 결정했다. 전날 CIT 판결을 두고 미 법무부 측이 집행 정지를 요구하며 낸 일종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인용 결정)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적어도 항소법원의 ‘추후 공지’가 나올 때까지는 상호관세를 기존대로 부과할 수 있게 됐다.  

항소법원은 이날 명확한 결정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번 결정의 효력 기간이 언제까지인지도 분명치 않다. 다만 항소법원은 원고 측인 미국의 5개 자영업체 및 12개 주에는 6월 5일까지, 피고 측인 미 법무부에는 6월 9일까지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항소법원이 원고ㆍ피고 의견을 모두 취합한 뒤인 6월 9일 이후 1심 판결 효력에 대한 가처분 신청 건에 대해 다시 판단할 수 있는데, 물론 29일 인용 결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반면 29일 결정을 스스로 뒤집고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그러면 다시 상호관세 부과가 정지된 상태에서 상호관세 본안 사건의 항소심 심리가 진행된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의견 취합 후 가처분 신청 재판단 가능성

원고 측은 지난 2월 “대통령의 행정권 남용으로 피해를 봤다”며 상호관세 정책 폐기를 요청하는 취지의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인 CIT는 약 3개월 만인 28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교역 대상국에 상호관세, 캐나다ㆍ멕시코ㆍ중국에 펜타닐 유입 관련 관세를 매기면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은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당초 예상보다 1~2개월 이른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나온 결론이었다.

 
무역ㆍ통상 사건의 경우 본안 사건 2심 판결은 대개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안팎의 심리가 이어지는데, 이번 상호관세 사건은 사안의 긴급성ㆍ중대성을 감안할 때 일반적 사건보다는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1심을 맡은 CIT가 일종의 약식 재판으로 신속하게 진행해 3개월 만에 판결을 낸 것보다는 다소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심은 11명의 판사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로 진행된다.

 

최종 결론, 연방 대법원서 가려질 듯

트럼프 행정부는 본안 사건 2심 판결에서 만약 다시 패소하더라도 상고해 연방 대법원에서 최종심 판결(3심)을 받겠다는 심산이다. 이 때문에 상호관세 정책의 최종 향배는 연방 대법원에서 가려질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CIT 판결은 매우 잘못됐고 너무 정치적인 판결”이라며 “대법원이 끔찍하고 국가를 위협하는 (CIT) 판결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뒤집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급진 좌파 판사들이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며 이념 공세를 퍼부었다.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CIT의 전날 판결을 두고 “또 하나의 사법 과잉 사례”라고 비판한 뒤 “최종적으로 연방 대법원이 우리의 헌법과 미국을 위해 이번 일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연방 대법원이 버팀목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6대3으로 보수 우위 구도이기 때문이다.

관세 정책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드라이브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담당고문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 일로 정부가 놀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어 최장 150일 동안 최대 15%의 관세 부과가 가능한 무역법 122조를 예로 들며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다른 가용 수단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담당고문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대화하 있다. AP=연합뉴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담당고문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대화하 있다. AP=연합뉴스

캐빈 해셋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관세 부과 카드로서) 서너 개의 다른 방법도 있는데 우리가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며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을 매우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요국과의 통상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전날부터 이날 이어진 법원 판결이 통상 협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무역 파트너들로부터 (태도 변화의) 징후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IEEPA, 무제한적 관세 부과 권한 아냐”

하지만 전날 CIT 판결과는 별개로 이날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루돌프 콘트레라스 판사도 장난감 제조업체 2곳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낸 관세 무효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콘트레라스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근거가 된 IEEPA 적용 범위와 관련해 IEEPA 시행 이후 50년간 이 법을 토대로 관세를 부과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IEEPA가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원고 측은 이번 판결의 전국적인 적용을 요청하지 않아 판결 효력은 해당 기업 2곳에만 적용된다. 정부 한 당국자는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미국과의 통상 협상은 최대한 상황을 지켜보며 신중한 기조로 접근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연방 순회항소법원의 결정이 나온 이튿날인 30일 중국이 관세 합의를 위반했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중국이 우리와 맺은 합의를 완전히 위반했다”며 “착한 척은 이쯤에서 끝이다”(So much for being Mr. NICE GUY)라고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어떤 합의를 위반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