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수거책 '미필적 고의' 인정…대법서 유죄로 뒤집힌 이유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기소된 40대 여성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40대 여성 A씨는 2022년 3월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뒤 "서류 전달 업무를 해 보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응한 A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월 171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했다. A씨는 '김미영 팀장' 지시에 따라 이동 장소, 약속 시간, 돈을 입금할 계좌번호 등을 전달받고 약 7일간 서류 전달 및 현금 수거 업무를 했다. A씨는 피해자 8명으로부터 총 1억 6900만원을 편취하며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에서는 A씨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갈렸다. 쟁점이 된 건 A씨에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었는가였다. 1심에서는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일부 실행행위를 분담했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행위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김미영 팀장'이 회사 홈페이지를 갖추고 실제로 첫 3~4일간은 서류 전달을 시킨 점,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면접 절차가 전반적으로 제한됐던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A씨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속았다고 봤다. A씨는 남편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추천한 점, A씨가 장염으로 출근을 못 하게 되자 진단서를 제출한 한 점 등을 보면 A씨가 자신의 일을 정상적인 회사 업무라고 믿었던 것으로 봤다. 출근 7일차에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고 자신의 일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다음날 경찰에 자수한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에서는 이 판단을 다시 한번 뒤집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달 15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대전지법에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의 나이나 지능, 경력으로 비춰봤을 때 채용 절차나 담당 업무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별도의 대면 면접절차나 신원보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위와 과정은 코로나19 확산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이례적"이라며 "100만원씩 쪼개 무통장 이체하는 방식은 사회 일반의 거래관념이나 경험칙에 비춰보더라도 통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A씨가 사건 당시 47세로 약 10년간 한의원 간호조무사, 요양병원 코디네이터 등으로 근무하는 등 사회 경험이 있는 점 등도 고려했다.  

A씨가 이용한 채용 사이트에 보이스피싱 모집에 대한 경고가 있었던 점 등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반드시 보이스피싱 범행의 실체와 전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각각 범죄의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