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대구에서 스토킹 범죄 신고에 따른 경찰의 신변 안전조치를 받고 있던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가스 배관을 타고 달서구 아파트 6층으로 침입해 50대 여성 A씨를 살해한 뒤 도주한 40대 남성 B씨를 세종시에서 이틀째 수색 중이라고 11일 밝혔다. 지난달 12일 경기 동탄에서 안전조치를 받던 30대 여성이 납치·살해된 뒤 관할 경찰서장이 같은 달 28일 공개 사과한 지 2주 만에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대구 달서구 피해자 역시 지속적인 흉기 협박 등을 신고한 뒤 참변을 당하면서 경찰 안전조치의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2021년 피해자 위험 등급을 세분화하는 등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신고에 대한 보복 살인 등 범죄를 막지 못하면서다.

차준홍 기자
특히 여러 차례 스토킹 범죄를 신고한 피해자가 잇달아 살해되면서 경찰 안전조치의 효과에 대해 근본적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 살인 사건부터 대구 사건까지 6개월간 유사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각각 경기 이천과 동탄에서 전 연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던 피해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사귀던 남성으로부터 스토킹·협박·폭행 등에 시달리다가 변을 당했고, 사전에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있었다. “가해자와 원만히 합의했다”고 알린 이천 사건을 제외하곤 경찰이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조치를 내리고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등 보호 장비를 제공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유형은 ▶전문시설 보호 ▶임시숙소 제공 ▶신변경호 ▶순찰·폐쇄회로(CC) TV 설치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스마트워치 지급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7월 기준 안전조치 1717건 중 1025건(59.7%)이 스마트워치 지급이었다.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위급한 순간 버튼을 눌러 위치를 전송하는 방식인 만큼, 즉각적인 범행을 막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1년간 전 연인으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당하다가 지난 3월 경찰에 신고한 30대 여성 C씨는 “스마트워치 배터리가 다 돼 꺼져 있어도 다음 날 ‘왜 꺼졌냐’고 전화가 오는 수준”이라며 “(워치를) 반납할까 했지만 스토킹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걸 보며 이거라도 붙잡아야 하나,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외 미등록자가 집 주변을 배회하거나 경계구역을 침범할 경우 실시간으로 112 긴급신고가 가능한 지능형(AI) 폐쇄회로(CC)TV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단 지적이 나온다. 이번 대구 스토킹 살인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복면을 쓰고 피해자가 있는 6층까지 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하면서 별다른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서울 일선서 한 여성청소년과장은 “현실적으로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스마트워치·AI CCTV 제공인데 범인이 가스 배관을 타리라고 예상하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탄 납치살인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거주하던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 현관과 화단. 손성배 기자
피해자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현장 경찰들 사이에선 ‘인력 부족’이 고질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 통과 이후 범죄 피해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현장 인력은 충원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지방청 스토킹 범죄 및 전담 경찰관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스토킹전담 경찰관 1인당 약 106건의 범죄를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한 일선서 여청과장은 “연이은 스토킹 살인사건에 현장 경찰들은 죽을 맛”이라며 “관계성 범죄 특성상 예상치 못한 사건이 강력범죄로 커질 위험이 있어 늘 긴장 상태”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서울 일선서 여청과장은 “수사관 한 명당 사건을 수십건씩 갖고 있는데 피해자가 임시 숙소 등 보호조치를 거부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찰서마다 수사 인력을 늘리고 임시숙소 환경을 개선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스토킹 범죄에 있어 ‘가해자 제재’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AI CCTV, 스마트워치 등 피해자 보호 위주 안전조치는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비록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거나 구속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스토킹 살인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가해자 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2022)’에 따르면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해외 각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GPS 위치추적 전자관리 제도가 이미 도입됐고 영국과 호주에서도 시범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