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정권 바뀌자 제동?…"공사 중지" 명령한 국가유산청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이 생길 예정인 1500m 일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이 생길 예정인 1500m 일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오랜 진통 끝에 시작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국가유산청이 희귀식물 이식 공사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공사 중지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12일 국가유산청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기헌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설악산 오색삭도 설치사업 현상변경 조건부 허가사항 이행 관련 보고’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지난 9일 양양군의 무단 공사 강행 사실을 확인하고 11일에 ‘공사 등 행위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행 계획 제출 없이 희귀식물 이식…국가유산청 “공사 중단”

앞서 국가유산청은 문화재청이었던 2023년 5월에 설악산 오색삭도 설치사업에 대해 ▶무장애 탐방로 구간의 식생 훼손 최소화 ▶희귀식물의 현지 외 보전 방안 강구 등을 조건으로 현상 변경을 허가했다.

설악산 희귀식물인 만병초에 이식 대상 표시가 돼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설악산 희귀식물인 만병초에 이식 대상 표시가 돼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문제는 양양군이 착수신고서 및 조건부 허가사항 이행계획을 국가유산청에 제출하지 않은 채로 지난 9일 만병초 등 희귀식물 이식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국가유산청은 양양군에 즉각 공사를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달 안에 오색케이블카 공사 현장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희귀식물 보전 방안은 물론 조건부 허가사항 전반에 대해 철저히 검토할 예정”이라며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이행상황 점검 등 사후관리도 엄정히 진행하겠다”고 했다. 


조건부로 사업을 승인한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도 대응에 나섰다.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희귀식물 등의 보전 대책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양양군에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조치 계획을 보고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 보완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넘게 갈등 겪다 尹정부서 첫 삽…사업 차질 불가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모형. 중앙포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모형. 중앙포토

오색케이블카는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끝청 해발 1430m 지점, 3.3㎞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1982년 사업계획이 수립된 지 40년 넘게 갈등을 겪다가 2023년이 돼서야 비로소 첫 삽을 떴다. 

강원 1호 공약으로 ‘설악산케이블카 추진’을 내세웠던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이후 원주지방환경청과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업이 멈추게 됐다.

핵심 선행 절차인 희귀식물 이식 공사가 중단되면서 지주 설치 등 전체 공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양양군은 당초 내년 9월까지 공사를 끝내고 상업 운전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현재 현장 사무실과 자재 창고 등만 설치한 상태다. 식물의 특성상 여름철이 지나면 이식이 어렵기 때문에 공사 중단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관련 절차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어 공사 재개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며 “국가유산청의 이행상황 점검에 적극 협조해빠른 시일 내 공사가 재개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후죽순 케이블카 추진…“이재명 정부 바로미터 될 것” 

오색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다른 케이블카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시절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빗장이 풀린 이후 지리산과 한라산 등 20곳 이상에서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도 대선 과정에서 지역 공약으로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검토했지만, 환경단체와 갈등 등을 우려해 최종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정부가 강력한 조정자 역할을 맡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타당성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향후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