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에 이어 1년 만에 인터넷을 뒤흔든 작품이 나타났다. '뿌세계'라는 애칭까지 얻어가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바로 JTBC '부부의 세계'다. 불륜으로 파탄 난 부부의 모습을 밑바닥까지 파헤친 이 드라마는 잠깐 삐끗하면 흔한 '막장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대본-연출-연기-제작진 어느 하나도 삐끗하지 않고 뚝심 있게 앞으로 진행하면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특히, 김희애로 대표되는 연기자들의 힘 있는 연기는 방영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섰고, 그 결과 모든 배우들이 단숨에 드라마 팬들의 '완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 리스트 중 가장 앞에 있는 배우는 누가 뭐라 해도 한소희 일 것이다. 때로는 밉지만, 때로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불륜녀인 '여다경' 역을 맡은 그는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만 시작되면 온라인 게시판에는 여다경을 욕하는 글이 쏟아졌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한소희의 연기를 칭찬하는 글이 자리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종영 후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발견한 스타 한소희를 만나봤다.

<프로필>
본 명 : 이소희
생년월일 : 1994년 11월 18일
데 뷔 : 2017년 SBS '다시 만난 세계'
- 드라마
2017년 : 다시 만난 세계(S), 돈꽃(M)
2018년 : 백일의 낭군님(tvN), 옥란면옥(K)
2019년 : 어비스(tvN)
2020년 : 부부의 세계(J)
- 예 능
2019년 : 바다가 들린다(MBN)
- 드라마 종영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작년 9월부터 시작을 했죠. 스태프들과 정도 많이 들었어요. 행복한 감정보다는 우울한 느낌이 있어요. 아쉬운 만큼 동기부여도 많이 되었어요.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 작품이라 각별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 왜 우울한 감정이 더 많이 들었을까요?
일단은 정이 많이 들었어요. 팀 자체에. 그러다 보니까 정말 행복한 감정으로 촬영을 계속 해 나가다가 뚝 하고 갑자기 멈춰버린 거잖아요? 당장이라도 다음 주에 촬영 갈 것 같은데 촬영이 없다 보니까 그리움이 우울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 역 자체가 강렬했다 보니 들어가기 전 조심성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길 (저의) 전작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많이 생각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 자체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큰 틀은 같지만 각자의 캐릭터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욕구나 욕망의 카테고리가 다르다 보니까 비슷하지만 굉장히 다른 캐릭터였어요. 그리고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연기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어요.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감정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이 저한테는 더 어려웠던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는 신선했던 것 같아요. 이미지 고착될까 봐 걱정이 안 들었다면 사실 거짓말이죠.
- 여다경 역을 하실 때 큰 틀을 보면 전에 했던 다른 역할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역할에 포커스를 맞춘 부분이 있다면요?
(돈꽃의) 서원이랑 다경이 두 인물을 본다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이 캐릭터가 극 끝으로 가면 갈수록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사실 서원이랑 다경이가 정말 비슷해요. 아이도 있고, 금수저라는 배경도 있지만, 사실 서원이는 아이를 빌미로 삼아 자신의 어렸을 때 겪었던 결핍의 욕구를 채우려는 캐릭터라면 다경이는 부족한 것 없이 살았다가 처음으로 자기가 주체적으로 쌓아 올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을 밝히는 캐릭터라서 그 부분이 제일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이대도 다경이가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덜컥 임신을 하다 보니까 그것에 대한 중압감과 부담감도 분명 서원이와는 조금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감정에서 차이가 있어요.
- 본인도 여다경이 센 캐릭터인 걸 알고 있었을 거고, 욕도 많이 먹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끝난 시점에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얻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었나요?
사실 대본을 보고 원작을 보면서 이 드라마는 무조건 시청자분들이 흥미를 느낄 거라는 소재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머니 연령대 시청자 분들이 환호하고 열광할 드라마라고 드라마가 오픈되고 가면 갈수록 20대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 예상 밖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20대 여성분들은 다경이의 심정을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경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 배우 본인의 입장에서 다경이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순수하죠. 앞뒤 안 보고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부모도 등질 수 있을 정도의 무모함도 저는 매력이라고 봤고요, 2년 뒤에도 가정을 지키려고 어린 나이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조차도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만큼 성숙해질 수 있는 캐릭터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불륜녀임에도 사랑을 받았어요. 그 포인트는 어디일까요?
그게, (웃음) 동정의 감정인 것 같아요. 다경이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에요. 제가 봤을 때는 6회 이후에 다경이가 느끼는 감정이 초반에 지선우 선배님이 느끼는 감정과 되게 동일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결국 다경이는 이태오를 사랑한 것 밖에는 죄가 없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시고, 뭔가 동정 어린 시선이 생겨난 것 같아요. 그리고 다경이에게는 제니가 있고. 어린 나이에 엄마 노릇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후반에는 그런 시선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끝까지 사랑받을 수 없다는 캐릭터라고 저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실은. 동정 여론이 정말 ‘요만큼’이었어요. 사실. 끝까지 벌 왜 안 받느냐는 비난도 받았고요.
- 실제로 금수저 엔딩이라는 비판이 많아요. 여다경을 연기한 배우로서 항변을 한다면요?
사실은 현실적이고 씁쓸한 결말이에요. 금수저 내연녀가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 자체가요. 정말 태오라는 인물은 바닥 끝까지 무너지는 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다경이는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새 인생을 산다는 게 시청자들 입장에서 덜 사이다일수도 있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다경이의 결말은 그 이후인 것 같아요. 그 이후에 더 집중을 해주셨으면 좋겠는게, 다경이는 지금부터가 사실 지옥이에요. 스물다섯 나이에 아빠가 없는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신뢰는 다 잃었어요.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해도 비극으로 끝날 거라는 걸 제일 잘 알고 있는 캐릭터인 거죠.
- 마지막에서 젊은 남자분이 준 쪽지를 놓고 간 건 다경이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신뢰 결여가 아니고 한 마디로 하자면 전의 상실이에요. 앞의 모든 지옥과도 같은 전쟁을 다 겪은 후에 다경이에게 남은 감정은 거의 없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남자의 대시에도 정말 요만큼의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 마지막 회 나온 도서관 남자가 다시 만난 세계에서 상대역이었던 배우 윤선우 씨인데 일부러 그렇게 캐스팅하신 거예요?
아뇨. 저는 촬영 전전날 선배님이 캐스팅됐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연의 일치였어요. 또, 오빠 이름이 윤선우예요. 그것도 신기했어요. 감독님도 신기해하셨어요.

- 그럼 전 작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캐스팅했는데 그런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
네. 스토브리그를 감독님이 보시고 그렇게 된 거로 알고 있어요.
- 드라마 찍으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셨을 것 같아요.
다경이와 저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랑만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예전에 했었어요. 정말 드라마를 하고 나서는 결혼과 가정은 사랑으로만 묶어놓을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맨 땅에 헤딩할 수 없고, 나 자신이 자존감이 높아지고 단단해져야지만 가정을 제가 책임지고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실 결혼은 못할 것 같아요. (웃음)
- 마지막 다경이와 비슷한 심경이었겠어요.
그렇죠. 찍으면서 너무 고통도 많이 받았고, 시청자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 모든 감정이 공감되는 게 되게 불쾌할 정도였어요. 정말 인간의 내면 밑바닥에 있는 감정까지 다. 도덕적으로 불륜이라는 걸 저지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태오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이상하게 다경이 심정이 이해 가는 게 되게 불쾌하면서도 그런 감정이 되고. 그러다 보니까 결혼을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예전에는 다경이처럼 사랑이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이제는 뭐가 있어야 결혼을 할 것 같아요?
일단 제일 첫 번 째는 신뢰의 문제인 것 같아요. 신뢰가 깨지는 게 정말 사소한 거잖아요. 새벽에 울리는 전화라거나, 6시에 퇴근한다고 하는데 7시 반에 오면 한 시간 반 빈 시간이라거나. 그런 것 때문에 신뢰가 깨지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걸로 신뢰가 깨지니까 더더욱 결혼에 대해서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완전 극 중 예림이네요.
그러니까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옳다 그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하고요. 태오는 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륜을 저질렀잖아요. 책임감 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는 건가.
- 다른 인터뷰에서 이태오를 ‘찐따’라고 표현하셨는데, 여다경이 이태오를 찐따라고 느낀 시점은 언제였을 것 같아요?
사실 너무 많아요. (웃음) 5부에 지선우 뒤통수를 때리는데 어쨌든 둘이 사랑한 거잖아요? 도와달라고 태오를 쳐다보는 신이 있는데 태오 선배가 절 보고 고개를 젓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진짜 너무 별로였어요. 태오의 찌질한 씬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 가장 컸던 것은 12화 엔딩이었어요. 사실. 다경이와 가정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선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키스를 하는 장면이 아, 태오는 진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캐릭터구나 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어요.
- 5부 마지막에서 김희애 씨를 때렸잖아요. 떨렸을 것 같은데 괜찮았나요?
그때가 잘 생각이 안 나요. 제가 큰 충격을 받으면 그때 상황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아침부터 긴장을 많이 했어요. 사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그 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원작이 정말 세거든요. 그 장면이. 그렇다 보니까 원작대로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한국 정서에 맞춰야 할지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또 촬영할 때는 한 번에 끝났어요. 그때만 긴장했지, 그 이후에는 자유로워졌어요.
- 이태오에 대해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하셨는데 어쨌든 캐릭터 자체는 태오를 사랑해야 하고, 찐따 같은 남자에게도 애정을 느꼈기에 불타올랐던 거잖아요. 찐따 같음에도 여다경이 태오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였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다경이가 이태오를 왜 사랑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다경이는 정말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인물이잖아요. 정말 뭘 하든 상상 이상의 삶을 살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도 없고, 욕구도 없고, 성취감을 얻어본 적도 못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이태오라는 인물은 가진 것도 없지만 예술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맨땅에 독립영화를 찍는 패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캐릭터 설명 상. 그렇다 보니까 다경이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의 용기와 패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고,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어요. 포지션이라고 해야 하나? 선우와 태오 관계가 선우가 태오를 감싸고 어르는 포지션이라면, 태오와 다경은 태오가 다경을 조금 어르고 달래는 감정들이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부모 외적으로 태오에게 의지를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자살하려던 태오를 지선우는 감싸잖아요. 여다경은 어땠을 것 같아요?
다경이의 입장에서 봤을 땐, 질려버렸을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선우와 태오 사이에는 애증이라는 감정이 있지만, 다경과 태오 사이에는 애밖에 없다 보니까.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태오에게서 모든 정이 다 떨어졌을 것 같아요. 그대로 돌아갔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여다경이라는 인물이 이태오를 사랑하고, 가정에 대해 집착하고, 많이 질려 하는 모습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을 세밀하게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집중하셨나요.
제가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는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서 계산하는 연기를 하게 되면 전체가 다 망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있는 그대로 날것의 감정으로 상처를 받고 표현을 하고, 나는 다음에 태오를 버릴 거니까 여기를 계산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아예 배제하고 연기를 했어요. 그래서 다경이의 감정은 70, 80%가 아니라 온전히 100%였던 것 같아요. 100% 태오를 사랑하고, 100% 상처를 받고, 100%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고, 100% 태오를 버리고. 잔 감정이 없는 캐릭터라고 저는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잔 감정이 있었다면 유부남 태오에게 빠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까 그렇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다경이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것에 굉장히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아빠가 많은 걸 감싸줘서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딸의 행복만을 바라는 아버지가 나왔어요.
그래서 다경이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오냐오냐 컸기 때문에 그런 일도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그렇게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되는 게, (웃음) 잘못된 부분들을 명확하게 찍어준 적이 있었어요. 그 장면에서도 불륜을 저지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경아 아이는 내가 키울게 다경아 그렇게 어르고 달래는 게 사실은 자식을 위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오냐오냐 자란 다경이였기때문에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결혼이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나 기준이 생기신 것 같아요.
저는 딱 두 개. 함부로 결혼하지 말고 함부로 애 낳지 말자. (웃음) 뭐든지 신중해야 하고, 신중하게 결혼해도 박살날 수 있다.

- 반대로 드라마 인기가 너무 높다 보니까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확대하는 작품이라는 평이 있어요.
저희 드라마가 비혼 장려 드라마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그 정도로 감정을 극대화시켜서 표현한 거 아닌가 그런 글들을 많이 봤어요.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게 단순 막장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저는 이건 현실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주는 핵심적인 내용은, 그래서 결국에 100% 피해자는 누구냐 이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는 준영이에요.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100% 다경이가 피해자가 아니고, 선우가 아니고 태오도 아니고 100% 피해자는 준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원초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결말은 결혼과 불륜 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불륜은 흔하진 않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데,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 일로 인해서 가장 피해를 받는 건 누구냐. 저는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런 글들을 봤을 때 뭔가 그렇게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정말 날것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준영이도 문제라는 이야기 많아요. 박막례 할머니도 준영이를 욕했죠. (웃음)
다경이 입장에서 저도 정말 준영이가 싫었는데, 애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실 걔가 진짜 ‘나 반항할 거야’ 그렇게 해서 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경이 집 왔다 갔다 하면서 엄마한테 '이혼 안 하면 안 돼?' 이러는 것도 왜 저래 그랬는데 나중에는 준영이가 이해가 되는 거예요. 마지막에 엄마 아빠 모습에 질려버린 듯한 모습으로 뛰쳐나가는 저는 그 장면에서 많이 울었어요. 결국은 준영이가 최대 피해자고, 준영이의 행동들이 이해가 됐거든요. 이게 신기한 것 같아요. 보는 입장마다 관점이 다른 게요.
-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태오가 여다경과 제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좀 화가 났어요. 제니도 딸이잖아요? 준영이밖에 안 찾는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서. 태오는 진짜 안 되겠다 이 생각하면서 봤어요. 작가님이 의도하신 건지, 준영이가 실종된 상태라서 그렇게 쓰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태오의 인생에서 제니와 다경이는 없던 사람처럼 배제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다경이가 잘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주변에서도 욕 했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반대로 가족들 입장에서는 우리 소희가 저런 애가 아닌데 하면서 속상해하셨을 수도 있어요.
저는 이번에 시대가 바뀌었다고 느낀 게 한소희와 여다경을 구분해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 시청자분들이요.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도 ‘여다경은 싫지만, 한소희는 좋아’라는 댓글이었어요. 그런 것만 봐도 극 중 역할과 배우 개인을 아예 분리해 봐주시는 것 같아 그게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친구랑 가족들도 선우 편이지 제 편이 아니라서요. (웃음) 오히려 타격이 없었어요. 드라마 끝나고 카톡 50개가 쌓여있는데 그게 다 욕이고. 저는 그래. (웃음) 오히려 더 덤덤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 부부의 세계 최대 수혜자는 한소희라는데 동의하시나요?
글쎄요. 정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사실이에요. 제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인데, 그만큼 부끄러워져요. 이건 제가 잘해서 잘 된 작품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게 앞으로의 숙제잖아요. 그런 부담감도 따르는 것 같아요.
- 잘 된 작품은 끝났을 때 배우들이 주변 반응이 올라가는 것에서 평정심을 찾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잘해서 잘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평정심을 가지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요. 드라마가 너무 잘 되었고, 저는 앞으로 또 연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이걸로 얻은 것도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작품이 제 인생의 끝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냉정하게 제 자신을 평가하려고 보다 보니까 내가 잘해서 잘된 작품은 아니라고 결론이 나오는 것 같아요.
- 인터넷 반응을 보면 연기력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고 이야기하셨는데, 내가 이 장면은 정말 연기 잘한 것 같다 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하면서 편했던 건 확실히 있어요. 태오에게 잤냐고 물어봤던 장면이에요. 다경이가 처음으로 날것의 감정을 드러냈던 신이었어요. 다경이가 예림과 선우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아니야 우리 사랑은 온전해’라고 계속 부정하고, 자기의 감정을 누르고 살았던 거라면, 그 신에서만큼은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태오에게 자기 치부를 드러냈던 신인 거죠. 그때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편했던 것 같아요. 숨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선우와 태오의 관계를 인정하는 거니까요.
-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건요?
아무래도 선우 선배님이 슬립이랑 향수 보여주던 신이요. 그게 가장 긴 시퀀스였는데 그건 반대로 감정을 계속 숨겨야 했어요. 눈앞에 내가 지선우 대용품이라는 사실이 계속 보여져도 '아니야, 거짓말하지마' 이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넣어야 하는 신이라서 몸도 힘들었어요.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할 때 감정이 육체적으로 힘들잖아요. 그 신이 그것의 반복이었어요.
- 드라마 끝나고 뭐하고 지내세요?
코로나 때문에 계속 집에 있어요. 밀린 영화나 드라마 챙겨보려고 해요. 최대한 ‘부부의 세계’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어요.
- 화보도 찍고, 광고도 찍고 요즘 많이 바쁜데 힘들지 않나요?
힘든데 힘들지 않다고 하면 이해가 되시려나요? (웃음) 육체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것 자체도 조금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기분이에요. 인터뷰도 스케줄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부부의 세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즐겁기도 하고, 기자님들이 이야기하는 다른 의견들이 신기할 때도 있고요. 힘들지만 잘 쉬고 있어요.
- 드라마 중반에 과거 언행과 사진이 논란이 되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나의 모습이라고 했는데 촬영 중반에 힘들지 않았나요?
사실 드라마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저의 다른 면에 집중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어요. 그래서 크게 기분이 상한다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들도 이해해주실 수 있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때의 저도 저고 지금의 저도 저다 그렇게 답변이 나온 것 같아요.
- 블로그에 계속 글을 올리는데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블로그는 제가 그림 그릴 때부터 계속 사용했어요. 처음에는 일기장 형식이었는데, 제가 이 블로그 주소를 알려드리지 않았음에도 저를 좋아하시는 팬분들이 20명 30명 정도 블로그를 찾아주시니까 그 모습들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보다 인간적으로 이 사람들과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글을 자주 남겼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대화들, ‘오늘 너무 힘들지 않았냐’ 같은 거요. '감사하고, 행복하고, 여러분도 번창하세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하루의 대화들. 그런 것들을 많이 나누고 싶었고, 저도 그 당시 그걸 나눌 상대가 없었나 봐요. 내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들도 분명 저와 같은 또래의 여성분들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팬 분들에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요.

- 과거 연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지금도 그러세요?
지금도 그래요. 연기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떤 게 잘하는 거고 어떤 게 못하는 건지. 어떤 포인트를 잡고 해야 할지 계속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이고, 그 공부가 끝이 없을 것 같아요. 또 못하면 정말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 미술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받은 만큼 하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 되는 거 자체가 되게 싫더라고요. 뭔가 잘하고 싶은 욕구도 4년 전부터 더 커진 것 같고, 점점 커질 것 같아요.
-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연기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있다면요?
저는 경험에서 나오는 게 중요해요. 슬픔이라는 걸 단순하게 놓고 봤을 때, 만약 감정의 결이 두 개가 있어요. 그런데 배경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 결이 다섯 겹도 나올 수 있고, 열겹도 나올 수 있다고 봐요. 공부하고, 연습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감정의 결들이 분명 있거든요.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 경험이 무조건 연기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제가 살면서 느끼는 것. 음악일 수도 있고, 미술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어렵네요. (웃음)
- 지금 연기 외에 본인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게 있다면요?
작품 전에 김희애 선배님의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거기서 선배님이 배우가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고 있어야지만 건강한 연기가 나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연기에 대해서 집중하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이런 힘든 시간들이 쌓여야지만 원숙미 있는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그 말을 듣고, 요즘 저는 최대한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감정이 들쑥날쑥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편안하게, 차분하게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감정이 한쪽에 치우쳐지는 순간 밸런스가 깨지는 느낌이 들어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있으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 원래 연기자를 꿈꾸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미술을 전공해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 가서 '뭔가 하면 될 거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현실은 비극적이었죠. (웃음) 그래서 서울 올라와 2~3년 동안은 내가 서울에 왜 왔는지, 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타이트하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돈을 좇아서 서울에 온 게 아닌데 결국 돈을 좇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미술도 놓게 됐고. 그렇게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모델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일을 하면서 ‘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거예요. 그리고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내 인생에 하나의 숨통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 일 자체가요. 단순히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 인생 척도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고 싶은 욕망을 따라가다 보니까요. 절대 간절하지 않았던 건 아닌 것 같아요.

- 연기에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힘든 과정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인간관계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알바를 계속하고, 사투리도 안 고쳐진 시점에서 서울 사람들과 떼로 부딪히면서 했던 사회생활이 도움이 안 됐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흙수저 역할을 많이 했었나?' 그런 생각도 문득 들기도 하고 그래요.
- 알바는 뭐뭐 하셨나요?
서울 도착하자마자 한 건 신사동 에이랜드 4층에 있는 주얼리 가게요. (웃음)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언니와 주얼리를 팔았고, 계속 옷가게. 그리고 강남역에 있는 맥주 호프집에서 가장 오래 했었죠. 그리고 장난감 가게. 편의점 알바는 안 해본 것 같아요. 사실 호프집 시급이 제일 세니까 거기서 오래했던 것 같아요. 야간수당이 세니까. 하하하. 그만뒀다 했다 다시 했다 한 걸 합치면 1년 반?
- 그럼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일이겠네요.
그렇죠. 4년 전 정도니까요. 제가 '돈꽃' 했었을 당시 커피집에서 알바를 했어요. 데뷔를 하고도 알바를 했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월급 생활에 익숙해지니까 한 달에 고정수입이 없으면 그렇게 불안하더라고요.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됨에도 일정 생활비가 제 통장에 찍히지 않으면 불안한 게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카페 알바를 계속했어요. 아, '다시 만난 세계' 찍고 나서 한 것 같아요.
- 로맨스 작품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혹시 같이 하고 싶은 분이 계시나요?
전 사랑이 배제된 작품 하고 싶어요. 사랑 때문에 고군분투하고 논란의 아이콘이 되고 이러다 보니까 사랑이 배제된 우정 드라마, 평화롭게 시작해 평화롭게 끝나는 그런 청춘드라마. 로맨스를 할 거라면 차라리 사랑의 결실이 맺어졌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기초공사가 튼튼한 배우요. 갑자기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제가 잘하면 결국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게끔 기초공사가 잘 된 배우가 됐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천천히, 더디더라도 오래 하고 싶어요.
사진 제공 = 9아토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