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우울증 ②
# "학교에 가면서 한강 지날 때마다 '이 시간에 빠져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정도를 넘어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고 살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면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사고라도 나길 기도했다."
김현경 작가의『아무것도 할 수 있는』의 일부다. 김 작가가 인터뷰한 26명의 우울증 환자 중 두 명의 고백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가 우울증에 걸린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환자는 김 작가에게 "그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얘기를 털어놨다.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너져버린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겉으로 괜찮은 척했다"고 말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사나요. 의욕이 없고 감흥도 없어요."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한 우울증 게시판의 글이다. "버티면 괜찮아질까요?" "저 너무 불안해요." "맨날 울고 싶고, 그러지 않으면 잠이 와요." 이런 류의 우울증 하소연 글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도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 환자의 절반가량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는다. 치료받는 사람도 병이 많이 진행돼서야 찾는다. 우울증은 여전히 주홍글씨다. 우울증을 앓은 환자 김정원(45,『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의 저자)씨는 'F321' 환자다. 이는 중등도 우울증을 나타내는 질병코드이다. 김씨는 "우울증 진료를 받았더니 수학 공식 같은 코드가 찍혔다. 인생 학점이 F라도 되는 듯 병명 코드까지 F로 시작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정신과'는 단순히 세 글자 낱말이 아니다. 미친, 비정상, 자살, 우울, 정신병, 낙인, 낙오자, 실패, 패배 같은 단어와 주로 짝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편견은 여전히 견고하다. 고위공무원은 자녀가 우울증 진료를 받은 뒤 기록이 남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가족이 도와주면 달라진다. 교사 C(41)씨도 어느 순간 불면과 불안증세가 심해졌다. 머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두 세 군데를 돌다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지지해줘서 빨리 치료받게 됐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못한 점, 직장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서귤은 “우울증을 혼자 삭이지 않고 병원 찾은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원씨는 이런 말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고 피할 것을 주문했다. "나도 우울해" "괜찮아. 요즘 안 우울한 사람 없어" "다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야. 마음을 강하게 먹어" "의사가 돌팔이 아냐? 얼굴 좋아 보이는데 우울증이라니 잘못 진단한 것 같은데" 등등.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에 대한 오해가 줄고 있지만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약에 대한 오해가 제일 아쉽다. 우울증은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처방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며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없을뿐더러 인지 기능을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황수연·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