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은 기후물리연구단의 악셀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이 호주ㆍ남아프라카공화국 연구진과 함께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정확한 발상지와 이주 원인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온라인 판에 29일 오전 게재됐다.
연구진은 남아프리카에 사는 후손들의 DNA를 추적해, 현생 인류의 정확한 발상지를 찾아냈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왔음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발상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유골은 동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반면, 살아있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혈통인 ‘L0’의 후손은 남부 아프리카에 주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하위 계통의 출현 시점은 인류의 이주 시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팀머만 연구진은 개선된 연대표와 후손들의 언어ㆍ문화ㆍ지리적 분포 정보를 연계해, 최초의 이주 경로와 발상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특히 현생 인류가 발상지에서 이주한 원인이 지구 자전축 변화로 인한 아프리카 지역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사실도 증명했다. 연구진은 해양 퇴적물 등 고(古) 기후 자료와 기후 컴퓨터 모델 분석으로 답을 얻었다. ‘세차운동’이라 불리는 지구 자전축의 느린 흔들림이 남반구의 여름 일사량을 변화시켰고,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 전역의 강우량이 주기적으로 변화했음을 밝혀낸 것이다.
세차운동과 기후변화로 인해 약 13만년 전에 인류 발상지의 북동쪽 잠비아와 탄자니아 지역에 녹지가 생겨났고, 다시 약 11만년 전에 나미비아ㆍ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서쪽으로 녹지가 형성돼 이주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순선 IBS 기후물리단 연구위원은 “아프리카 지역의 녹지 변화가 유전학적으로 분석한 이주 시기 및 경로와 일치해, 현생 인류가 기후변화로 인해 이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유전학적 증거와 기후물리학을 결합해 초기 인류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악셀팀머만 단장은 “호주의 유전학자들이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하고, IBS의 기후물리학자들이 고기후를 재구성해 인류 첫 이주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현생 인류 최초의 어머니는 20만년 전에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과학자들이 지난 수십년간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분화를 추적한 결과,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L0 혈통보다 더 오래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장은 “20만년 전에도 지구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인류 종족들이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살고 있었다”며 “지금까지 발견, 연구된 것을 바탕으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현존 인류와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인류의 DNA 중 가장 오래된 혈통이 보츠와나 북부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인간 게놈 연구가 제대로 시작되기 전인 40년전만 하더라도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며 “현재로서는 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일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향후 또 다른 발견을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악셀팀머만 단장 연구진은 L0 외 다른 혈통의 이주 경로도 추적해, 인류의 조상들이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 기후 변화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초기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를 계속해서 풀어나갈 계획이다.
미토콘드리아
세포 소기관의 하나로 세포 호흡에 관여한다. 따라서 호흡이 활발한 세포일수록 많은 미토콘드리아를 함유하고 있으며 에너지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불린다. 미토콘드리아 내 DNA는 모계를 통해 후대로 유전되기 때문에 인류의 기원을 찾는 유력한 방법으로 쓰인다.
세차운동
태양과 달의 인력으로 인해 지구 자전축이 약 2만1000년의 주기로 회전하는 현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