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토교통부와 GTX-A 운영(주),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개통한 운정중앙~서울역 구간(북부 구간)은 총 길이가 32.3㎞이며, 민자로 건설됐다. 역은 운정중앙·킨텍스·대곡·연신내·서울역 등 5곳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 대피선(구난선)은 서울역에서 운정중앙역 방향으로 4㎞ 지점에 단 한 곳만 설치됐다. 대피선은 열차가 역이나 중간 신호장에서 더 높은 등급의 열차가 먼저 통과하도록 옆으로 대피할 수 있게 만든 선로다. 급행열차 운행 등에도 사용된다.
요즘엔 사고나 고장 등 비상 상황 때 승객 대피는 물론 후속 열차와의 추돌사고 예방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대피선은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대피나 우회선로 구성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피선을 일정 거리마다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통상 선로 활용도와 안전 측면을 고려해서 적정 개수를 산정해 건설한다. 앞서 지난해 3월에 개통한 A노선 수서~동탄 구간(남부 구간)에는 성남역과 구성역에 2개씩, 모두 4개의 대피선이 설치돼 있다.
평소에는 이 대피선을 이용해서 GTX 열차가 정차하며, 선로를 같이 쓰는 수서고속열차(SRT)는 본선을 통해 그냥 통과한다. 그러다가 유사시에는 긴급 대피용으로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북부 구간에 대피선이 적은 것에 대해 A노선을 건설한 대림 E&C 관계자는 “역 간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대피선을 여러 곳에 둘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A노선의 운영을 맡은 GTX-A 운영(주)의 고지근 부장은 “열차가 고장 나는 경우 멈춰선 위치에 따라 서울역 인근의 대피선이나 차량기지(운정) 중 더 가까운 곳으로 견인조치를 하게 된다”며 “승객은 본선에 설치된 환기구를 통해 대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사시 철도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한다. 박민규 한라대 철도운전시스템학과 교수는 “열차 고장 때 가까운 곳에 대피선이 없으면 다른 열차 운행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GTX가 국내에선 처음 도입된 대심도의 급행철도이기 때문에 기존 도시철도나 광역철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시설분야 전문가는 “GTX 열차 고장 때 인명피해가 없다고 가정하면 본선 개통을 우선해야 하는데, 대피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운행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근에 있던 열차가 고장 열차에 접근해 연결하고, 서울역 부근이나 운정차량기지까지 이동하는 경우 총 40분에서 1시간가량 소요될 거로 추정돼 이 사이 GTX 운영은 양방향 모두 극심한 지연이 불가피할 거란 얘기다.
이 전문가는 또 “응급조치로 하나의 선로만으로 양방향 열차를 차례로 통행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안전을 고려할 때 무리하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피선이 서울역 쪽에 너무 가깝게 설치돼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대피선은 사고나 고장 때 피해 심각도가 가장 큰 곳, 즉 역 간 중간지점이나 접근성이 떨어져 상황 대응에 문제가 있을 곳에 설치해야 하는 데 서울역 인근은 그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대피선 추가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민규 교수는 “적정 위치에 대피선이 추가될 필요가 있어 보이며, 그 지점도 운영 효율성을 고려해서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광균 송원대 교수도 “중간 역사에 대피선을 추가 설치하면 유사시 대응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하지만 추가 설치에 따른 비용 조달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2030년에 추가 개통 예정인 창릉역에 대피선을 설치하는 방안도 언급한다.
이에 대해 서정관 국토부 수도권광역급행철도과장은 “대피선이 많으면 좋겠지만, 비용과 경제적 타당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유사시 신속한 안전조치가 가능하도록 준비를 보다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