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확정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한국의 대(對)아세안 수출액은 전년 대비 4.5% 상승한 1139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1330억4000만 달러)과 미국(1277억9000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역대 아세안 수출 중 2022년(1248억9000만 달러)을 제외하면 최대치기도 하다.
이외에 석유화학(석화) 수출도 18.3% 증가한 66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증가율만 따지면 중국(5%)이나 미국(3.9%)보다 훨씬 빠른 성장세다. 석화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지역은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 기조라 제조업과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커지면서 수출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K뷰티’ 열풍으로 화장품 수출은 19.8% 급증한 14억3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아세안에서 조립·테스트·패키징(ATP) 등 반도체 후공정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반도체 요충지’로서의 시장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아세안 반도체 산업의 도약’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ATP 공정의 13%가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다. 장상식 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아세안 국가는 노동집약적인 패키징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후공정이 약한 한국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만큼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아세안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직접 베트남을 찾아 인공지능(AI)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논의했고, 우주 항공 기업 스페이스X도 베트남과 위성 통신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구글은 말레이시아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관련 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지난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을 잇달아 찾아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도 중장기적으로 미·중 양국에 수출을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해 아세안 시장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슬비 무협 연구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강해질수록 지리적으로 가깝고 노동력이 값싼 아세안 시장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아직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베트남을 제외하면 아세안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만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이 안정화된 이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신윤성 산업연구원 한·아세안정책협력센터장은 “아세안은 한 번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초기 선점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한국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서 아세안과의 일관성 있는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