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한국정부 배상책임, 2심도 인정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손녀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양민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시네마달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손녀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양민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시네마달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따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첫 2심 판결이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1부(이중민 김소영 장창국 부장판사)는 17일 응우옌 티탄(64)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는 응우옌씨에게 3천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살상에 가담한 부대원의 고의나 과실 및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가해 부대원들이 당시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이고, 살상행위가 작전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국가배상법에 의해 정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수십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응우옌씨가 소 제기 당시까지 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봤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다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될 경우 장애 사유가 해소된 시점을 소멸시효 기준점으로 본다.


응우옌씨는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사건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살펴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의 대리인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가 상고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응우옌씨는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2월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서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에서 가족들을 잃고 자신도 총격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3천만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2023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 당시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응우옌 씨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 배상의 지연, 물가 및 통화가치의 변화 등을 고려해 정부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4천만원으로 정했다. 다만 응우옌 씨의 청구 금액이 3천만100원이라 그 범위 한도에서 배상금이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