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난입은 자유운동∙순교"…궤변에 멍드는 법치주의 [현장에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격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법원 현판을 훼손시켰다. 뉴스1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격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법원 현판을 훼손시켰다. 뉴스1

 
지난 19일 새벽 사법부 상징인 법원 청사가 짓밟히는 사태를 국민들은 목격했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 100여 명이 서울서부지법 현관 및 계단쪽 유리문을 깨고 침입한 뒤 7층 영장전담판사실 등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다.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법관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고, 대검찰청은 “법치주의와 사법체계를 전면 부정한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이번 사태가 폭동이라는 데 동의한다”고도 했다.

서부지법 불법행위를 ‘자유 운동’이라며 옹호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유승수·이하상 변호사 등 변호사 20여 명은 최근 유튜브와 SNS 단체방에서 “정당한 국민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쳐

서부지법 불법행위를 ‘자유 운동’이라며 옹호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유승수·이하상 변호사 등 변호사 20여 명은 최근 유튜브와 SNS 단체방에서 “정당한 국민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쳐

그런데 서부지법 불법 난입을 ‘자유 운동’이라며 옹호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이하상 변호사 등 난입 피의자 변호인을 자처한 20여 명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정당한 국민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윤 대통령 체포·구속영장 발부는 불법이므로 물리력 행사는 정당하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변호사는 “법치가 무너졌는데 건물이 서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법원 침입을 옹호했다.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저항권은 헌법·법률에 명시돼있진 않지만,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기본권을 보장할 최후의 수단으로 인정되는 개념이다. 1997년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에 의해 헌법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중대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고 ▶다른 합법적 구제 수단으로는 헌법 수호를 달성할 수 없을 때 저항권이 인정된다고 규정했다. 법조계에서 서부지법 난동은 저항권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참여하는 등 정상적으로 법적 절차가 진행됐다”며 “법원을 향한 폭력이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관 출신 한 법조인도 “윤 대통령 구속이 국가 권력에 의해 헌법 질서가 무너진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시위대에 소요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현건조물방화미수 혐의 등로 10대 A씨가 지난 25일 구속됐다. A씨는 군중을 향해 난입을 선동하는 모습이 여러 영상에서 포착됐다. 제이컴퍼니 유튜브 캡처

현건조물방화미수 혐의 등로 10대 A씨가 지난 25일 구속됐다. A씨는 군중을 향해 난입을 선동하는 모습이 여러 영상에서 포착됐다. 제이컴퍼니 유튜브 캡처

변호인들은 우발·단순 가담자를 마구잡이로 불법 체포·구속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경찰 채증자료와 유튜브 영상 등엔 법원 시설 파손, 방화 시도 등 장면이 다수 포착됐다. 촬영만 했다던 유튜버들도 법원 문 등을 파손하는 모습이 영상에 남았다. 또 폭력사태 3~4일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서부지법을 답사한 후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차량 번호가 공유되는 등 사전모의 정황도 나왔다. 경찰은 법원 진입 직후 일부 시위대가 CC(폐쇄회로)TV 서버에 물을 뿌리거나 영장전담판사실이 위치한 7층으로 곧장 향하는 영상도 확보했다. 경찰은 구속된 피의자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토대로 주동자가 있는 계획범죄였는지도 살피고 있다.


20일 윤석열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서울서부지법 청사 불법 진입 및 난동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20일 윤석열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서울서부지법 청사 불법 진입 및 난동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이들은 심지어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향해 비속어를 사용해 조롱까지 한다. 이 변호사는 유튜브에서 “(천 처장 등 법관들은) 허영심이 가득하고 공천을 바라는 기회주의자”라고 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라는 입장이 나오자 “개소리”라고 하기도 했다. 경찰을 일제강점기 ‘순사’로 비유하며 폄하 발언도 이어갔다. 시위대가 던진 소화기나 빼앗긴 방패로 폭력을 당한 경찰이나 두려움에 떨었던 법원 직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이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사퇴해야 한다”며 남 탓을 하기도 했다.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 진입해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시위대들은 경찰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사진은 부서진 잔재 속에 포착된 경찰모. 이영근 기자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 진입해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시위대들은 경찰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사진은 부서진 잔재 속에 포착된 경찰모. 이영근 기자

터무니없는 옹호와 허위 주장이 또다른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폭력 사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거나 “순교자들께 감사하다”는 등 사태에 동조하고 피의자를 치켜세우는 글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대상이 헌법기관인 법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유 운동’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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