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22일 밤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와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경계지점까지 번져 불타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2일 경남 산청군 산불현장에 투입됐다 전신 3도의 중화상을 입고 극적으로 살아난 곽모(63)씨의 말이다. 곽씨는 구조된 직후 진주 모 병원으로 이송돼 입원 치료 중이다.
4부 능선 불 끄다가 불길 점점 세져…하산하다 등 뒤에 화마 덮쳐
3도 화상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입술을 떼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곽씨는 그날의 급박했던 상황을 23일 힘겹게 전했다. 곽씨를 포함한 창녕군 진화대원 8명과 공무원 1명은 초행길인데도 인솔자 없이 22일 오전 11시 30분쯤 산청군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그는 “주불과 400m 정도 떨어진 4부 능선에서 헬기가 물을 부으면 잔불을 끄고 있었는데 불이 점점 심해졌다”며 “안 되겠다 싶어서 후진하는 도중에 밑에서 불덩이가 회오리처럼 올라오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불덩이를 본 지 10초 만에 화마가 등 뒤까지 왔고, 바로 옆에 땅 꺼진 웅덩이가 있어서 진화대원 5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몸을 움츠렸다”며 “곧바로 등과 손, 머리를 타고 화마가 지나가면서 모자와 방한복에 불이 붙었다”고 회상했다.
진화대원 5명은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채로 20분 동안 화마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또 다른 생존자 문모(64)씨 동생은 “형이 말하기를 5명은 부둥켜안고 있어서 살았는데 또 다른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은 2명씩 흩어져 피신하다 사망했다고 하더라”며 “모두 다 초행길이어서 허둥대다 사지로 내몰린 격”이라고 전하며 울분을 토했다. 이날 같은 위치에 투입됐던 9명 중 4명이 숨졌다.

지난 22일 산청군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3도 전신 화상을 입고 생존한 곽모(63)씨와 문모(64)씨가 입원한 병원. 이은지 기자
불길 세져 구조헬기 요청했지만 안 와…흘어져 하산하다 4명 사망
곽씨는 구조헬기가 왔다면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4부 능선에서 불이 점점 세지길래 현장 사진과 좌표를 찍어서 소방과 창녕군에 보냈다”며 “30분을 기다려도 구조헬기가 오지 않아서 흩어져서 하산하다가 4명은 사망했다”고 말했다.
곽씨는 진화대원으로 근무한 지 3년차, 문씨는2년 차다. 사망한 4명 중 이모씨와 공모씨는 경력 7년 차, 10년 차의 베테랑이라고 한다. 문씨의 동생은 “강한 바람에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불덩이가 올라오는 상황이어서 베테랑도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며 “위험한 상황에 전문 소방대원도 아닌 진화대원을 총알받이처럼 투입했다”고 당국의 무리한 처사를 지적했다.
진화대원 가족들은 소방당국의 사후대처도 미흡했다고 말한다. 곽씨 아내는 “남편이 불 탄 몸으로 하산하고서도 길바닥에서 30분 동안 구급차를 기다렸다고 한다”며 “도착한 구조대원이 남편 보고 직접 옷을 벗으라고 하는 등 사후 대처가 제대로 안 돼 남편 화상이 더 심해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문씨 동생 역시 “형이 화재 현장 투입 당시 평상시에 입던 산불 감시복을 입고 갔는데 방염이 하나도 안 됐다”며 “방염복은 지급하지도 않고, 불구덩이에 집어넣어 산불 감시복과 모자 등등 보호장비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고 질타했다.

경남 산청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사흘재 계속되고 있는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헬기가 물을 뿌려 진화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