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원칙 무너져선 안 돼" [월간중앙]

심층 인터뷰|조세재정 전문가 이용섭 전 장관의 고언
 
“반복되는 정치권의 감세 포퓰리즘은 나라 근간 흔드는 ‘하지하책’”
“적정 조세 부담과 적정 재정 지출을 통한 재정 기능 정상화 시급”

이용섭 전 장관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이용섭 전 장관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이용섭(73)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1973년 제14회 행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공직생활 50년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입법부에서 장관급 3회, 청장·차관급 3회, 선출직 3회,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3회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그는 특히 조세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조세 불복업무를 다루는 국세심판원장, 국세 집행업무를 전담하는 국세청장과 관세청장, 지방세를 총괄하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데 이어 국회에서도 국가재정연구포럼 대표,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 등을 두루 거쳤다. 이 전 장관이 국세와 지방세에 관한 정책·행정·입법·심판 분야 경력을 모두 지닌 국내 유일 조세재정 전문가로 꼽히는 이유다.

지난 3월 4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율촌에서 마주한 이 전 장관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꺼내 든 세제 개편 카드에 대해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다수당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마치 ‘벼락치기 공부하는 수험생’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국회가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백지화하고 가상자산 과세 방안을 2년 유예한 데 대해서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면서, 곳간 사정은 뒷전인 채 표만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수와 진보의 틀 깨고 창조적 혁신으로 나아가야”

탄핵 정국에서 이재명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은 ‘중도보수정당’이라고 정의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조세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보수와 진보 간 차이는?
 

“양쪽 모두 경제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다만, 정부의 역할과 세금에 대한 접근 방법론에 차이가 있다. 보수는 조세정책에 있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감세 정책을 선호한다. 진보는 큰 정부를 지향하며 증세 정책을 선호한다. 보수는 세금을 줄이면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증가해 성장이 촉진된다고 믿는다. 진보는 정부가 세금을 걷어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서비스와 사회 안전망 강화에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활성화하고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약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재정정책에서도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이다. 재정 긴축을 통한 균형 재정과 부채 축소를 추구한다. 반면, 진보는 적극적 정부 개입과 확장 재정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복지 확대를 선호한다. 특히 경제 위기나 불황일 때는 정부가 적극적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원론적 구분이다. 현실에서는 상황에 따라 보수정당이 진보적 정책을, 진보정당이 보수적 정책을 택하는 등 양측이 정책적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진보와 보수 정책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창조적 정책 혁신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지금과 같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가치나 논리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완화할 수 없고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단 뜻이다. 정치인들은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어야 하므로 진보나 보수를 표방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책당국자는 이념의 틀에 갇혀선 안 된다. ‘자유냐 평등이냐, 성장이냐 분배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증세냐 감세냐’와 같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국제 환경 변화에 혁신적 융복합 정책으로 기민하게 대응해야 ‘정의롭고 풍요로운 선진 대한민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 재선 국회의원, 광주광역시장, 정책위의장, 대변인, 비대위원,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장 등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당대표에 출마한 적도 있다. 민주당 핵심 당원으로서 최근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행보와 ‘중도보수정당’ 발표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이 대표 입장에선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을 돌파하기 위해 계엄 사태 이후 넓어진 중도층 지지를 얻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조기 대선을 겨냥해 중도층 지지 확장을 위한 정책 우클릭은 선거 전략적 차원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70년 역사를 지닌 민주당의 정체성을 논의 과정도 없이 갑자기 일방적으로 ‘중도보수정당’이라고 발표한 것은 오랜 기간 민주당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매우 당황스럽다. 정당의 정체성은 상황에 따른 전략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중산층을 육성하고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진보(개혁)정당으로서 국민의힘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대변해 왔다. 민주진보진영의 종가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계엄 사태를 계기로 국민의힘이 수구 우파로 전락했다고 해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합리적 진보정당에서 중도보수정당으로 바뀔 순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바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지향점은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혁신정당’으로서 극좌나 극우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다원적 국민포괄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회자 되고 있다.
 

“중도보수정당으로의 변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이 선거 때 상대방의 색깔론 대응 차원에서 한 발언 몇 개를 단편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분의 삶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 ‘사’자도 꺼내기 어려운 시절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많은 변화를 추구하면서 한국적 진보 이념을 대변했다. 군부독재 시대에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면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분단과 대립이 굳어진 시대에 ‘빨갱이’라는 모함을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평화와 통일을 주장했다. 복지 확대를 말하면 좌파라고 매도하던 시대에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해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냐 진보정당이냐 하는 건 정당 간 상대적인 개념이다. 정치 환경과 유권자 성향이 전혀 다른 유럽 정당 등과 절대적 수준을 비교해 한국의 민주당을 중도보수정당이라고 개념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전 장관은 국세와 지방세에 관한 정책·행정·입법·심판 분야 경력을 모두 지닌 국내 유일 조세재정 전문가다. 사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중앙포토]

이 전 장관은 국세와 지방세에 관한 정책·행정·입법·심판 분야 경력을 모두 지닌 국내 유일 조세재정 전문가다. 사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중앙포토]

 

“선심성 감면은 재정적자로 이어져”

민주당은 최근 이 대표를 필두로 그간 부자감세라면서 부정적이던 상속세 개편 카드에 이어 근로소득세와 법인세 감세까지 꺼내 들었다. 갑자기 감세로 노선을 바꾼 이유는?
 

“조기 대선을 겨냥해 민생정당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켜 중도층 표심을 얻으려는 포석으로 이해된다. 동기야 어쨌든 간에 국민의 세금 부담을 적정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비난할 순 없지만, 아쉬움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세법은 통상 정기국회에서 대대적으로 개편하는데, 정작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세법 개정을 무산시킨 점이 특히 아쉽다. 다수당이 시험 날짜가 발표되자 부랴부랴 출제 가능성이 높은 문제 위주로 벼락치기 공부하는 수험생 같은 모습을 보이 고 있어 안타깝다. 아울러 매년 조세 수입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체 세원의 발굴 없이 조세 감면을 선심성 인기 위주로 남용하게 되면 만성적 재정적자로 국가 채무가 급증하게 된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선거를 앞두고 재정지출은 늘리고 세금은 줄이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훗날 반드시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신중해야 한다.”
 

민주당은 상속세 완화 방안으로 공제 한도를 상향 조정하자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최고세율 인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동기야 어찌 됐든 상속세 개편 논의가 정치권에서 시작된 건 긍정적이다. 시대 변화를 반영해 상속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야 간 쟁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당리당략에 매몰되지 않고 심도 있게 논의하면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이번 상속세 개편 논의는 세율 수준의 적정화와 공제 한도의 현실화, 과세 방식의 개편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우선, 한국의 명목 최고세율은 50%로, 주요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일각에선 최고세율 인하가 초부자 감세라면서 부정적인데, 국제적으로 높은 최고세율은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과중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등 부작용이 큰 만큼, 적정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50%인 명목세율은 인하하되 비과세 감면을 줄여 실효세율을 현재 수준인 약 36%로 유지하게 되면 초부자 감세 논란을 해소하면서 조세 경쟁력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일각에서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이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60%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대주주 지분을 매각할 때도 최고세율은 50%다. 다만, 과세표준 계산 시 대주주 지분이 포함된 주식 일괄매각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게 되므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20% 반영한다는 의미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 주요 선진국도 주식 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상속세에 반영한다.”
 

중산층 고려해 ‘유산취득세’로 전환 필요

상속세 공제의 경우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가 각각 5억원으로, 10억원까지만 상속세가 과세되지 않고 있는데…
 

“문제는 1996년 이후 공제액이 조정되지 않다 보니 중산층이 집 한 채 상속하는 경우에도 과세 대상이 되는 데 있다. 이 기간 전국 아파트 가격은 3배, 서울은 4배나 올랐다. 2010년 서울을 기준으로 사망자 중 2.9%였던 상속세 과세 대상이 지난해 15%에 달하게 된 이유다. 그간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공제액을 조정하는 등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과세 방식에 있어서도 고인이 남긴 재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과세 방식을 물려받는 사람 각자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있는 나라는 24개국이다. 이 중 유산세를 택한 곳은 한국과 덴마크, 미국, 영국 등이다. 나머지 국가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유산세는 세금을 걷는 게 간편하고 유산 취득세는 합리적이라는 장점을 지녔다.” (정부는 인터뷰 뒤인 지난 3월 12일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
 

일각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 부담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체 국세 중 차지하는 비율이 4%밖에 안 되는 상속증여세의 부작용이 큰 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는 게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대한 국민적 우려도 큰 상황이다. 상속세는 세금 없는 부의 세습 억제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완화, 과세의 공평성 제고, 기회 균등 제고 등을 위해 필요한 세금이다. 상속세 부담을 줄여온 국가들 사이에서 최근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1970년대 캐나다와 호주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상속 과세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창의적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한편, 경제적 기회 균등 실현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스웨덴 등 주로 유럽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하는 대신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최근 부의 대물림에 대한 ‘슈퍼 상속세’를 통해 청년 세대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불평등·불공평을 해소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당시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당시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직장인 대상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적극 검토”

민주당은 근로소득세 개편 필요성도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해 근로소득세는 61조원으로 전년 대비 1조9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총 국세는 336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5000억원 줄었고. 법인세는 62조5000억원으로 17조9000억원 감소했다. 대기업, 고소득자,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세금 감면으로 인한 세수 부족을 봉급생활자 지갑을 털어 메꾸고 있다는 불만과 조세 공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근로소득자가 2000만 명이 넘고 이 중 1400만 명 이상이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다.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을 정치권이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조세 수입 감소로 매년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근로소득세가 크게 증가한다는 이유만으로 신규 세원 발굴 없이 근로소득세를 대폭 감세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소득세 과세표준이나 각종 공제 제도를 물가가 오른 만큼 올려 세금을 줄이는 물가연동제 도입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줄거나 변동이 없는데도 세금이 계속 늘어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나라는 20여 개국에 달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물가연동제 필요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한 바 있다.”
 

민주당은 최근 기존 ‘통합투자세액공제’와 별도로 첨단 제품에 대해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를 도입해 법인세를 감면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전략산업으로서 국내에서 최종 제조한 제품을 국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경우 국내 생산과 판매량에 비례해 법인세 공제 혜택을 최대 10년 동안 부여하자는 것이다. 첨단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일자리를 지킬 우리만의 전략 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퇴조하고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수출이 어려워지고 생산지와 소비시장이 통합돼 가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103조6000억원이던 법인세 수입이 지난해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거의 반 토막 수준이 됐다. 법인세가 세수 결손의 주요 요인인 만큼, 추가 지원에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미 통합투자세액공제가 시행되고 있다. 중복과잉 지원되거나 통상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적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감세 카드를 꺼내 들면서 가상자산 과세는 2년간 유예됐고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됐다. 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과세 기준을 대폭 올려 일반 투자자들은 비과세하고 초고액투자가에 대해서만 과세하도록 하면 자본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시행할 수 있었는데, 여야가 투자자 눈치를 보고 타협한 결과다.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는 조세제도의 선진화, 과세 형평성 제고, 재정 수입 확보를 위해 여야 합의로 오래전 관련 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두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땀 흘려 일해 버는 근로소득자에게는 모두 과세하면서 고액 투자 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은 세금의 생명인 공평성을 심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특히 대체 세원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비과세 감면을 계속하면 무엇으로 나라 살림을 운영할 것인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과거 이들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미 부작용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다. 일각에서는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투자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시장의 불확실성이다. 이번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 문제처럼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일관성 없는 것이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다.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핑계일 뿐이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이 금투세와 가상자산에 대해 과세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자본시장이 한국만 못하나?”
 

이용섭 전 장관은 “곳간 사정은 뒷전인 채 표만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이용섭 전 장관은 “곳간 사정은 뒷전인 채 표만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일각에서는 중복 과세 등을 이유로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 억제와 주택가격 안정, 지방재정 균형이라는 분명한 정책 목적을 바탕으로 도입된 세금이다. 특히 납부한 재산세는 종부세를 계산할 때 공제되므로 중복 과세가 아니다. 나는 국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장관으로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면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다. 공급 확대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탁상공론이다. 한국은 수도권의 가용 토지가 극히 한정된 나라다. 주택은 일반 재화와 달리 신속하고 여유롭게 공급할 수 없는 특성을 지녔다. 투기 수요와 가수요를 억제하지 않으면 언제든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종부세를 폐지하기보다는 국민이 공감하는 좋은 세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종합부동산세법에서 정치권의 진영 논리와 포퓰리즘을 제거해야 한다. 우선, 당위성이나 명분에만 치우쳐 과중하고 방만하게 운영해선 안 된다. 종부세는 소득이 없더라도 재산 보유에 대해 부과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세 부담 증가에도 바로 조세 마찰과 저항을 가져오는 매우 민감한 세금이다. 도입 당시에는 극히 소수의 고액재산가에만 해당하던 과세 대상이 ‘똘똘한 아파트’ 한 채 가진 중산층에게까지 급격히 확대되면서 거센 저항에 직면했던 경험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유 있는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종부세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정책 목적을 저버리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랬다간 두고두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추경 편성하되 재정적자 상황 고려해야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지방세인 재산세를 올리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의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주장이다. 지방세는 자기 지역에 소재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전국에 걸쳐 부동산을 과다 보유한 고액 재산가에 대해 상응하는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는 전국의 부동산 가액에 대해 누진 과세하는 국세인 종부세가 필요하다. 재산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종부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지방세로 과세하게 되면 고가의 토지와 주택이 집중한 강남 등의 지자체는 조세 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 시골 지자체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현재 종부세(2024년 기준 4.2조 원)는 국세로 거두어 ‘부동산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모두 내려보내고 있다.”
 

조기 추경 편성이 화두다. 이에 대한 견해는?
 

“조기 추경은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 등을 위해 필요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5%로 둔화될 전망이다. 비상계엄과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환율과 물가가 상승했다. 수출 여건도 매우 어렵다. 맞춤형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종합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금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면 조기 추경의 필요성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대규모 감액 조정만 하고 증액 조정은 없이 야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추경의 필요성이 커졌다. 조기 추경은 편성하되 추경의 성격과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조기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낭비성 조세감면과 예산 지출은 철저히 차단해야 할 것이다.”
 

“국가채무 비율 제한하는 재정준칙 마련 시급”

정치권에 향후 한국의 재정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감세와 긴축재정 기조에서 탈피해 재정의 기능과 역할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축소지향적 재정정책으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한국은 선진국들보다 조세부담률과 재정지출 규모가 크게 낮은 ‘저부담 저복지의 재정 후진국’이다. 과도한 감세 조치로 인한 세입 기반 축소로 세수가 줄면 지출도 줄어 경기 대응을 제대로 못 하고, 경기 부진이 다시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낮은 조세부담률을 나라 살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해 우리 조세부담률은 19%로 OECD 평균인 25%보다 크게 낮다.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도 우리는 26.9%로 OECD 평균 33.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향후 재정수요, 재정건전성, 재정기능 정상화, 국민부담 능력과 선진국의 조세 부담 수준 및 재정지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조세부담률을 점진적으로 올려 23% 내외로 유지할 것을 권한다. 세율은 올리지 않고 현재 폭넓은 비과세 감면을 대폭 정비해 조세부담률을 올리게 되면 국민의 체감 부담은 늘어나지 않고 조세경쟁력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지속 가능한 재정 운영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전면적 세제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조세부담률 증가에 맞춰 재정지출 규모를 정상화해야 한다. 재정의 역할을 포기하는 ‘저부담 저복지’에서 벗어나 ‘적정부담 적정복지’에 기반을 둔 건전재정을 통해 재정의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래야만 양극화 완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해 지속 발전할 수 있다. 저출생, 고령화, 기후 위기 등 3대 현안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아울러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세금은 줄이고 돈은 풀려고 하는 정치권의 선심성 포퓰리즘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관리재정 수지 적자 비율과 국가채무 비율을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이기적 감세 요구와 선심성 국책사업 추진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OECD 국가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