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폭풍의 여자'에는 계약서에 '품위유지'라는 조항을 넣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 MBC
최근 미성년자와 교제했다는 의혹을 받는 모 배우의 출연 광고가 중단됐다. 출연작 공개일마저 지연되면서, 위약금 지급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이른바 ‘품위유지조항(Morals Clause)’이다. 광고모델이나 방송 출연자가 사회적 논란에 휘말려 제품이나 콘텐트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다.
국내 계약서에는 보통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나 ‘대중문화예술인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 금지 조항이 포함된다. 음주운전이나 마약 투약처럼 명백한 법 위반 행위는 당연히 포함되지만, 소셜미디어에서의 발언이나 과거 행적 재조명 등 위반 여부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미국 계약서는 합리적인 사람이 보기에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할 행위(considered by a reasonable person to be unethical)나 공개될 경우 대중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행위(brings Company and/or Artist into broad public disrepute)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있다.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일부 소속사들은 조항의 범위를 ‘법령 위반’이나 ‘유죄판결 확정 시’로 한정하려 한다. 반면 광고주나 제작사, 방송사는 브랜드 이미지와 콘텐트의 신뢰성을 위해 폭넓은 품위유지를 요구한다. 필자 역시 과거 자문 과정에서 이 부분이 주요 협상 쟁점이 된 경험이 있다.
미국의 경우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과거 행위라도 이후 알려져 논란이 될 경우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자주 활용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가수 A의 과거 부적절한 이성 교제 논란이 제기된 사건에서는 A가 그 논란에 상당히 기여하였거나 용이하게 방지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계약위반을 인정했지만, 배우 B의 학교폭력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서는 과거의 품위유지 위반행위를 광고주에게 밝힐 것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중대한 기본권 침해로서 허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연예인의 품위유지 조항에 대한 참고 법안. 사진 법률방송 유튜브
의혹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광고주나 제작사는 더욱 고민에 빠진다. 계약을 유지했다가 논란이 커지면 이미지 타격이 크고, 서둘러 해지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부당 해지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광고계약은 연예인의 긍정적 이미지 자체가 중요하므로 사회적 논란만으로도 계약해지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논란을 해명하기 위한 대응이 부적절하면 그 대응 자체가 품위유지 위반 사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걸그룹 C의 전속계약 분쟁에서는 보도자료 배포로 이미지 손상을 확대하였고 광고모델 활동이 소속사의 강요에 의한 것처럼 대중에게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광고주에 대한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이처럼 “품위를 지켜라”는 말은 쉬워 보여도 실제 사건이 발생하면 적용 기준이 절대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계약 체결단계부터 논란의 성격, 사회적 파급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균형 잡힌 기준과 대응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종, 성별, 장애 등을 비하하는 발언은 사회적 물의에 포함된다’는 등과 같이 특별히 중시하는 구체적인 예시를 포함할 수도 있고, ‘품위유지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될 경우 신속하게 상호 협의를 진행하고, 계약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환한다’는 등과 같이 즉각적인 협의 절차를 마련할 수도 있다.
계약 해지와 위약금 문제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도 없다. 광고계약에서 사회적 논란 발생 만으로 계약 해지 가능 조항을 두되, 위약금 지급은 품위유지조항 위반이 입증된 경우로 제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법원도 배우 B의 학교폭력 의혹 사건에서 계약 해지는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계약서에 과거 행위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위약금 청구는 기각했다. 품위유지조항이 이해관계자들의 위험을 줄이고 신뢰를 지켜내는 계약의 안전장치로 기능하는 점을 고려하면, 명확한 기준과 유연한 대응절차를 마련해두어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계약의 안정성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