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박정민의 깜짝 기획…'청각 전시' 뭐길래, 성수동 북적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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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청각 전시를 선보이는 ‘완주:기록:01’ 전시장 내부. 사진 LCDC SEOUL

청각 전시를 선보이는 ‘완주:기록:01’ 전시장 내부. 사진 LCDC SEOUL

9.9㎡ 남짓한 규모의 전시실. 의자에 앉자 곧 불이 꺼지고, 풀벌레 소리와 저벅저벅 걷는 발걸음, 배우 고민시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듭니다. 눈을 감고 잠시 빠져든 소설의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데요. 이달 19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LCDC SEOUL(엘씨디씨 서울, 이하 LCDC)에서 열리고 있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 ‘첫 여름, 완주’의 전시 이야기입니다. 배우 박정민이 기획한 이 행사는 ‘청각 전시’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입소문을 타며 7일간 1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죠. 그는 4년 전 독립출판사 ‘무제(無題)’를 설립해 두 권의 책을 펴냈어요. 그런데 하필 왜 듣는 소설과 전시를 선보인 걸까요. 비크닉이 23일 열린 ‘완주:기록:01’ 북 토크 현장을 찾았습니다.

 

출판사 대표로 나선 배우 박정민과 소설가 김금희가 '첫 여름, 완주' 북토크를 진행 중이다. 사진 LCDC SEOUL

출판사 대표로 나선 배우 박정민과 소설가 김금희가 '첫 여름, 완주' 북토크를 진행 중이다. 사진 LCDC SEOUL

 

독립출판사 ‘사장님 박정민’이 ‘듣는 소설’ 펴낸 이유

“작품을 쓸 때 내 안에서 소리를 듣는 방식과 굉장히 유사해서 그 어둠이 편안하고 따뜻했어요.” 
북 토크에서 김 작가가 전한 소회입니다. 박 배우 역시 ‘뉴토피아’ 촬영장에서 첫 원고를 받고 뭉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독자 100여 명과 함께 지난 출판 과정을 소회했죠.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지난 2019년 ‘쓸 만한 인간’을 펴낸 저자이자 동네 책방을 운영했던 문학 애호가인데요, 출판사 역시 이름처럼 이름 없는 것, 소외된 존재나 주제를 다룹니다. 


김금희 소설가의 '첫 여름, 완주' 책과 오디오북 키링. 오디오북은 '윌라' 앱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사진 LCDC SEOUL

김금희 소설가의 '첫 여름, 완주' 책과 오디오북 키링. 오디오북은 '윌라' 앱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사진 LCDC SEOUL

 
김금희 소설가의 ‘첫 여름, 완주’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북으로 올해 4월 중순 출간됐습니다. 박 배우가 시각 장애를 겪게 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기획한 ‘듣는 소설 프로젝트’ 인데요. 책은 5월 8일 출간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에서 8위를 기록했어요. 소설은 여름날 시골의 자연을 배경으로 삶에 지친 주인공의 치유 과정을 다룹니다. 김 작가는 처음부터 오디오북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고 해요. 그래서 읽는 호흡과 장면의 전환이 물 흐르듯 이어지죠. 오디오북에서는 전문 성우를 비롯해 고민시·김도훈·염정아·최양락·김의성 등 10여 명의 배우가 열연을 펼칩니다.


‘완주:기록:01’ 전시장 전경. 아연도금 강판 소재의 가벽은 빨간 이음매로 엮었다. 사진 LCDC SEOUL

‘완주:기록:01’ 전시장 전경. 아연도금 강판 소재의 가벽은 빨간 이음매로 엮었다. 사진 LCDC SEOUL

 

그림·도자·음악…8명의 예술가와 완성한 소설의 세계관  

소설은 오디오북과 책으로 출간된 후, 뮤직비디오·OST·그림·조각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됐습니다. 이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전시 ‘완주:기록:01’이죠. 기획부터 실행, 홍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전시장 가벽을 세우면서도 소외된 것들과 관람객을 엮는다는 의미를 부여했죠. “지난 10월, 오디오 녹음이 한창 진행되던 중 여기 LCDC 전시 공간을 처음 보러 왔다”며 입을 뗀 그는 “집에서 불을 꺼놓고 음원을 들으면 좀 더 깊고 풍부하게 다가오는 걸 느껴 이 감각을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며 기획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벽화반장 김반장이 70년대 영화 포스터로 해석한 '첫 여름, 완주'의 등장인물들. 사진 LCDC SEOUL

벽화반장 김반장이 70년대 영화 포스터로 해석한 '첫 여름, 완주'의 등장인물들. 사진 LCDC SEOUL

왼쪽은 정하현 작가의 도자기. 오른쪽은 김소영 서예가의 작품 앞에 선 박정민 배우. 사진 LCDC SEOUL

왼쪽은 정하현 작가의 도자기. 오른쪽은 김소영 서예가의 작품 앞에 선 박정민 배우. 사진 LCDC SEOUL

 
단지 청음에서 그치지 않고, 시각 콘텐트를 함께 구성해야겠다고 느꼈대요. 전시를 위해 평소 흠모하는 화가·일러스트레이터·서예·도예가 등 8명의 예술가에게 소설을 소개하고 직접 작품을 받아왔죠. 강릉은 물론 일본 나고야까지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그는 “내가 생각했던 완주의 이미지가 다른 아티스트에게는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했고, 공통점과 차이를 비교해보는 전시가 됐으면 합니다”라며 참여 작가들과 아트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깜짝 공개했습니다. 소설을 사랑해준 독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될 거라면서요.

전시부터 북 토크까지 문학 콘텐트의 확장 

전시는 암전 상태에서 듣는 소설을 체험하는 형태로, 매회 8명씩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람 소요 시간은 30분으로 하루에 총 18회 운영되는데, 일주일 연속 매진될 정도로 인기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여겨졌던 독서가 전시의 형태로도 펼쳐지니,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거죠.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은 “책을 읽고 와서 보니 작품의 세계관이 다양하게 확장된 점이 재미있다”고 평했습니다. 

‘완주:기록:01’ 북토크 현장. 사진 LCDC SEOUL

‘완주:기록:01’ 북토크 현장. 사진 LCDC SEOUL

 

독특한 콘셉트만큼 전시 공간도 눈여겨볼 만한데요. 2021년 문 연 LCDC 서울은 트렌드의 집결지인 성수에서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4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중정 형태로 조성된 1층 ‘야외 스퀘어’는 번잡한 주변 분위기에서 벗어나 대담 및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특징이 있죠.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오늘 북 토크처럼 문화 콘텐트를 접목하는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며 계절에 맞는 기획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어요. 박 대표의 마음을 홀린 1층 전시장은 8평 남짓한 규모지만 ‘완주:기록:01’처럼 체험형 전시에서는 몰입감을 높였죠. 전시 관람 후에는 협업 기념 한정판 도서와 굿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첫 여름, 완주' 내지 속 박정민 배우의 메시지. 사진 LCDC SEOUL

'첫 여름, 완주' 내지 속 박정민 배우의 메시지. 사진 LCDC SEOUL

 
한편, 박 배우는 1년간 배우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당분간 출판사 활동에 집중할 거라고 발표했는데요. 듣는 소설 시리즈의 차기작도 준비 중이라고요. 구석진 곳을 비추는 그의 진심이 새로운 메시지의 형태로 가닿을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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