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스 우승' 루이스 엔리케, 암으로 세상떠난 딸과 함께 '깃발'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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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 기자 사진 박린 기자
PSG 팬들이 엔리케 감독과 그의 딸이 함께 깃발을 꽂는 그림이 그려진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사진 카날플러스 캡처]

PSG 팬들이 엔리케 감독과 그의 딸이 함께 깃발을 꽂는 그림이 그려진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사진 카날플러스 캡처]

 
루이스 엔리케(55·스페인) 파리생제르맹(PSG·프랑스) 감독은 1일(한국시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직후 검정색 티셔츠를 갈아 입었다. 티셔츠에는 아빠와 딸 만화 캐릭터가 PSG 엠블럼이 새겨진 깃발을 함께 꽂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티셔츠에는 루이스 엔리케의 딸 사나를 추모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10년 전인 2015년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FC바르셀로나(스페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뒤 세리머니 때 사나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내려왔다. 사나가 아빠와 거대한 바르셀로나 깃발을 함께 흔들고 그라운드에 꽂은 장면을 재현한 거다. 

2015 바르셀로나 사령탑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엔리케 감독은 딸 사나와 함께하는 모습. [사진 ESPN SNS]

2015 바르셀로나 사령탑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엔리케 감독은 딸 사나와 함께하는 모습. [사진 ESPN SNS]

 
안타깝게도 사나는 2019년 3월 골육암 판정을 받았고 5개월 투병 끝에, 그해 8월에 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이스 엔리케는 아내와 함께 ‘사나 재단’을 설립해 같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도왔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지난 1월 “딸과 경기장에 바르셀로나 깃발을 꽂으며 찍힌 멋진 사진을 기억한다. PSG에서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딸 아이가 그 자리에) 몸은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마음으로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 딸은 파티를 정말 좋아한다. 딸은 지금도 어디를 가든 파티를 열고 있을 것”이라고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냈다.

PSG 팬들은 이날 결승전이 열린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관중석에서 감동적인 대형 통천을 펼쳤다. 엔리케 감독과 PSG 유니폼을 입은 딸 사나가 함께 PSG 깃발을 그라운드에 꽂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엔리케 감독이 딸과 추억이 깃든 티셔츠를 입고 빅 이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엔리케 감독이 딸과 추억이 깃든 티셔츠를 입고 빅 이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이날 2024~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인터밀란(이탈리아)를 상대로 5-0 대승을 이끌었다. 루이스 엔리케의 전술과 전략이 100% 적중한 경기였다. 그가 내세운 스리톱 데지레 두에(20)-우스만 뎀벨레(28·이상 프랑스)-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24·조지아)가 강력한 전방압박으로 예측불허의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인터밀란 공격적인 왼쪽 윙백 페데리코 디마르코가 전진할 걸 미리 간파하고 그 쪽을 집중 공략했다.  

2005년생 스무살 두에는 2골-1도움을 올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부진했지만 엔리케 지도 하에 ‘폴스9(가짜 9번)’ 역할을 부여 받은 뎀벨레는 최전방과 측면, 중원을 오가며 이날도 어시스트 2개를 올렸다. 또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지난 겨울 데려온 크바라츠헬리아도 쐐기골을 뽑아냈다.  

명장 엔리케 감독. [AP=연합뉴스]

명장 엔리케 감독. [AP=연합뉴스]

 
선수 시절 스페인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2018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맡았지만 이듬해 물러났다. 당시 개인적인 이유라고만 밝혔는데, 사나가 2019년 세상을 떠난 뒤 사임한 이유가 공개됐다.  

다시 스페인 지휘봉을 잡은 루이스 엔리케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에서 모로코에 져 물러났다. 이후 잉글랜드 토트넘 등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엔리케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PSG를 2023년에 맡았다. 

PSG는 지난 2011년 카타르 자본에 인수돼 ‘오일머니’를 앞세워 킬리안 음바페(현 레알 마드리드), 네이마르(현 산투스),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등 수퍼스타들을 끌어모았지만, 그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팀이었다. 엔리케 감독은 수비를 등한시 한 음바페에게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홀로 40골 이상을 기록한 음바페를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보낸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젊고 기동력이 좋고 팀을 위해 뛰는 선수들로 재편했다. 결승전 베스트11의 평균연령은 약 25세로 30세의 인터밀란보다 5살이나 어렸다. PSG를 유럽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공격진으로 탈바꿈 시켰다. 

루이스 엔리케는 2015년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이름 앞 글자를 따 ‘MSN 트리오’라 불린 메시와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와 트레블을 달성한 이후 10년 만에 2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자신에게 감독직을 추천했던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에 이어 서로 다른 두 팀을 이끌고 트레블을 이뤄낸 2번째 감독이 됐다. 이번엔 젊은 선수들과 함께 지도력을 제대로 인정 받았다. MSN도 없이, 음바페도 없이 루이스 엔리케가 증명해냈다. 

PSG는 루이스 엔리케와 함께 지난 1970년 창단 이후 55년 만의 첫 우승을 달성했다. PSG는 프랑스 리그1과 프랑스컵(쿠프 드 프랑스)에 이어 트레블(메이저 3관왕)을 달성했고, 슈퍼컵(트로페 데 샹피옹)까지 포함하면 쿼드러플(4관왕)이다.

1남2녀를 둔 엔리케 감독이 아내와 딸, 아들과 빅 이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막내딸 사나는 하늘에서 함께했다. [AFP=연합뉴스]

1남2녀를 둔 엔리케 감독이 아내와 딸, 아들과 빅 이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막내딸 사나는 하늘에서 함께했다. [AFP=연합뉴스]

 
십 년이 지나도 우승 순간에 딸 사나는 함께 있었다. 딸 사나가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만한 순간이었다. 아빠 루이스 엔리케가 딸을 기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프랑스 매체 레퀴프에 따르면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우승 후 이렇게 말했다. “우승해야만 딸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딸은 지는 순간에도 늘 항상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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