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처의 단편적 규제, 다른 곳 혁신 막는 풍선효과 부른다 [구태언이 소리내다]

미래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단편적인 규제를 점검하고 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미래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단편적인 규제를 점검하고 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국가사회는 하나의 생물체와 같다. 특정 부위의 문제가 다른 부위에 예기치 못한 영향을 미치듯, 한 부처의 규제가 다른 부처의 산업을 억압하거나 왜곡하는 풍선 효과를 일으킨다. 특히, 인공지능(AI)으로 각 분야의 기술과 산업이 밀접하게 연결된 환경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행정 각부는 이런 단편적 규제의 풍선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 규제는 개별 부처의 이익이나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적 관점에서, 범부처적 협력을 통해 종합적으로 설계되고 조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편적 규제가 산업 전체를 억압하거나 시장의 질서를 왜곡하게 되고, 이는 결국 혁신의 싹을 꺾고 경제적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한다.

유럽, 정보보호 하면서 활용 장려

AI와 빅데이터 산업은 데이터 활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비식별 개인정보조차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한국의 규제 환경은 데이터 기반의 AI 연구 개발과 사업화를 가로막고 있다. 유럽의 일반데이터보호규정(GDPR)은 개인정보 보호를 철저히 하지만, 동시에 비식별화된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는 균형 잡힌 규제를 통해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나치게 개인정보 보호에 치우친 규제로 인해 글로벌 데이터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가명 의료 정보를 활용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소위 개인정보 전문가들이 의료 데이터를 거의 쓸모없게 비식별화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비식별 개인정보도 활용 어려워
AI, 자율주행 등 성장동력 상실
범정부ㆍ국가적 차원 점검해야
 
이로 인해 데이터 활용에 기반을 둔 의료 AI,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등 다양한 혁신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의료 분야는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의 제약으로 인해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좌절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적 손실을 넘어 국민 복지와 건강을 위한 기술 혁신의 기회를 박탈하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망 분리 규제는 2013년 보안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실제로는 클라우드와 보안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지속적인 확인과 인증을 하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모델을 통해 보안과 클라우드 기술의 동반 성장을 이루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반면, 한국은 경직된 망 분리 규제로 인해 글로벌 기술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보안 강화 명분으로 혁신 시도 차단

특히 금융권과 공공기관에 적용되어 클라우드 도입을 어렵게 하고, 글로벌 클라우드 기술과 서비스와의 연결성을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단순히 기술 발전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클라우드 산업에 주요 시장을 막아 관련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상실하게 하고, 국내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경쟁력 강화마저 저해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정부가 망 분리규제를 완화하고자 하고 있으나, 10여년 만에 원복할 규제를 도입한 금융위원회 등 당사자들의 반성은 없다. 다시는 국익을 해치는 규제 도입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정 실명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전 세계가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 AI를 통해 의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뿐만 아니라,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AI 연구와 혁신 기기 개발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원격의료가 가진 잠재력을 목격한 많은 나라가 규제를 완화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의 규제 틀을 고수하며 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저해하고 있다.

혁신적 모빌리티 기술은 교통 문제 해결과 차세대 산업 육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개발, 도심항공교통(UAM), 전기차 인프라 확충 등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규제가 기술 발전을 억누르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에 필수적인 도로 데이터와 실증 운행의 기회가 부족해 글로벌 기술 흐름에서 멀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및 비금융 분야에서 혁신의 중심에 있지만, 한국의 블록체인 및 암호자산(Crypto Asset) 규제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접근으로 인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과도한 자본 요건과 복잡한 규제는 온라인투자연계(P2P) 금융 산업과 암호자산 생태계를 위축시키며, 글로벌 혁신 흐름에서 한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암호자산을 포용하고 지급결제서비스로 제도화하여 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두고 ‘크립토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위기 극복 위해 파괴적 규제 혁신 필요

한국은 개별 부처의 경직된 기존 산업 보호 프레임에 갇혀 혁신기업 육성을 통한 변화와 새로운 시장 창출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그 결과 혁신 산업의 수출도 부진하다. 이 땅에 세계로 나가 돈을 벌어올 혁신 산업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한국의 규제 체계는 단순히 혁신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 국가 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규제 혁신’이 절실하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넘어, 규제의 근본적 틀을 재설계하여 산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표를 둔다.

국무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범부처적 협력과 국가적 관점에서 규제를 혁신해야만 대한민국은 글로벌 혁신 선도국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이제는 모든 부처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 혁신기업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는 선택이 아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생존의 길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Tech그룹 총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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