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한 뒤 계엄사령부가 사법부에도 인력 파견을 요청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5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계엄선포 당시 계엄사령부에서 사법부에 5급 법원 사무관 1명 파견을 요청했다. 요청을 통보받은 법원 안전관리관이 이를 보고한 시점은 4일 0시 50분쯤으로,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오전 1시 1분)되기 직전이었다. 법원 안전관리관은 전시 등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 수립 및 통제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이때 법원행정처는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계엄 상황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계엄사 요청으로 회의에서는 사무관을 파견하는 게 적절한지가 테이블에 올랐다. 계엄법 시행령 제2조는 “계엄사령관은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함에 있어 필요한 경우 소속 공무원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으며, 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검토가 이어지던 중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법원행정처는 계엄사의 요청에 응하지 않기로 하고 사무관을 보내지 않았다. 계엄사에서 특정 사무관을 지목해서 파견을 요청한 것은 아니며, 계엄법 시행령 외의 구체적인 요청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이튿날 각급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할지 여부가 화두였다고 한다. 헌법 제77조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는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이 중단될 가능성도 점쳐졌다.
이 자리에서는 개략적으로나마 비상계엄 선포의 효력에 대한 의견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는 비상계엄의 법적 요건인 국무회의 개최 여부, 국회 통고(通告) 여부 등이 불명확한 상황이었는데, 만일 절차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면 위법·무효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다만 이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재판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법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이나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지시로 법원행정처 천대엽 처장과 배형원 차장, 실장급 간부와 심의관이 모여 진행됐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공관에서 논의 내용을 보고받았다. 회의는 자정쯤부터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후까지 약 3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오전 5시 40분쯤 비상계엄 해제를 공고했다.
전날 오전 출근길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어려운 때일수록 사법부가 본연의 임무를 더 확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차후에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