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손학규·정의화 정치원로 긴급 좌담회…대통령의 담화, 탄핵 부결, 향후 국정 운영 등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3일 밤)→국회 계엄 해제 결의(4일 새벽)→야 6당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4일 오후)→탄핵 반대 당론 놓고 국민의힘 내부 갈등(5~6일)→윤 대통령 대국민담화(7일 오전)→탄핵안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7일 밤)→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한덕수 총리 담화문 발표(8일 오전).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 정국이 긴박하게 흘러가면서 한국의 앞날이 예측 불가능한 대혼란에 빠졌다. 중앙일보는 작금의 사태를 진단하고 국가적 위기에서 탈출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정계 원로인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는 8일 오전 중앙일보 사옥에서 김현기 논설실장의 사회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사회=다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경악하셨을 텐데 도대체 대통령이 왜 그런 것인가.
정대철=대통령이 야당을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척결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예전부터 그런 사고를 갖고 있었다. 정상적으로는 정권 유지가 어렵다고 생각되니 판을 깨고 한방에 해치우겠다고 계엄을 터트린 것이다. 일종의 확신범이다. 자기는 애국심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사회=7일 탄핵안이 무산된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대철=국민의힘은 지금 탄핵안이 통과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보고, 여야 간 타협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벌겠다는 것 같다.
정의화=여당 의원이 표결에 불참해서 투표를 불성립시키는 것은 국민의 대표답지 않은 행위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그런 것으로 이해한다. 여론조사에선 탄핵 찬성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온다. 다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면서 의회민주주의가 완전히 죽었는데, 대통령 권력까지 야당에 넘어가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는 걱정했을 거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 부분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손학규=우리가 지금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데 대통령의 행동은 1970년대에 머물렀다. 탄핵이 부결돼 일단 대통령직이 유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역사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탄핵이 됐다면 극도의 파행이 일어났을 텐데 당분간 탄핵안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87년 체제를 개혁하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사회=국민의힘이 ‘김건희 특검법’도 부결시킨 건 어떻게 보나.
정의화=국민들의 상식에 비춰보면 수용하기가 상당히 어렵지 않겠나. 국민이 굉장히 실망했을 것이다. 그나마 당에서 '권고적 당론'으로 부결을 요청했다면 이해할 부분도 있지만, 강제적 당론으로 부결을 추진했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회=7일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는데.
정대철=국민의힘에 일임한다는 건 너무 편파적이다. 국회나 국회의장에게 일임하거나, 여야 협치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야 했다.
손학규=대통령이 자신의 안전을 유지하려는 목적인 듯하다. 담화 자체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동훈 국민의 대표의 압박에 의한 것 같다. 야당은 계속 탄핵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정국은 계속 요동칠 거다.
정의화=6일 아침에 한 대표가 탄핵 찬성하겠다고 나오니, 탄핵은 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앞으로 국민을 설득할 추가 프로세스가 나와야 하는데 담화 자체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대철 헌정회장
내란죄 단죄 매우 중요하지만
국가 대계 구축작업 병행 필요
야당이 동의할 총리 임명하고
권력구조 원포인트 개헌 추진
국가 대계 구축작업 병행 필요
야당이 동의할 총리 임명하고
권력구조 원포인트 개헌 추진
사회=이번 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내란죄 성립 여부는 어떻게 보나. 또 관련자들을 어느 범위까지 처벌해야 하나.
정대철=이번 계엄사태는 내란죄에 해당한다. 계엄 조건이 안 되는데 계엄을 발동했고, 주요 정치권 인사들을 체포하려 했고, 국회와 선관위를 군 병력으로 점거한 것이 그 이유다. 다만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선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만 책임을 묻고 나머지는 놔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의화=현재로선 내란죄를 단정하기 이르다. 계엄은 국무회의에서 의결 사항이 아니고 그냥 심의 대상이다.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장관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하던데, 단순히 계엄 심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무위원들까지 수사 대상으로 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대행을 임명한다”고 돼 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을 내란죄 혐의로 구속한 뒤 구속을 ‘사고’로 간주해 한덕수 총리를 대행으로 임명하면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손학규=나는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후부터 앞으로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중간에 탄핵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어쨌든 현직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직이 유지가 될 때 우리나라 권력 구조를 다원적 민주주의에 맞는 의회 중심의 권력 체제로 바꾸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헌법 공포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헌법 개정 발의를 하지 않더라도 개헌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한동훈, 점령군 행세하면 안 돼
대선 출마 포기 각오로 임해야
윤 대통령, 6.29 때 전두환처럼
87년 체제 개혁에 역할 맡아야
대선 출마 포기 각오로 임해야
윤 대통령, 6.29 때 전두환처럼
87년 체제 개혁에 역할 맡아야
사회=자연스레 권력구조의 문제가 나왔는데 현행 권력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정대철=지금 여야 관계는 정치가 아니라 거의 전쟁 상태에 준하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첫째 민주주의 사회에선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둘째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너무 진영 논리가 심하다. 셋째 힘의 논리를 너무 빨리 쓴다. 다수당의 일방적 표결이나 대통령 거부권 같은 건 최후에 등장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나온다. 넷째 대통령이 검사적 사고가 강해 상대를 제압하려고만 하고 조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번 계엄 사태도 내란죄 단죄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사법적 방향에만 매몰되지 말고 개헌을 통해 새로운 국가대계를 세우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 같다. 내각제가 됐든,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됐든, 이원집정제가 됐든 여야 간 보다 합리적인 권력체제를 세우기 위해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손학규=87년 6월 항쟁 때 군부가 병력 동원할 준비를 다 했다.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군 동원으론 도저히 안 된다고 보고 6ㆍ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결정했다. 윤 대통령도 이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누구나 대통령이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다. 지금처럼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결합하면 어떤 대통령도 독선을 피할 길이 없다. 앞으론 의회가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구조가 바람직하다.
사회=야당은 물론이고 한동훈 대표도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정국 수습책이 나와야 할까.
정대철=야당이 총리 추천을 하거나 적어도 야당이 동의할 수 있는 총리를 새로 임명해서 거국내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유명무실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을 추진하는 계획이 필요다. 어쨌든 지금은 여론이나 정당성 측면에서 야당이 우세하기 때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설득할 방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의화=손 전 대표 말씀처럼 지금은 역사적 변곡점에 와 있다. 87년 체제 수립 이후 8명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전부 다 실패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또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의 성향에 나라의 정책이 큰 영향을 받는다. 현 정부에서 의대 2000명 증원이나 청와대 용산 이전 같은 게 전부 윤 대통령의 충동적 성향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저도 국회의장 시절 개헌을 주장했는데 개인적으로 오스트리아식 또는 포르투갈식 이원집정제에 관심이 많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권한을 갖고, 실제적인 나라의 살림은 총리가 담당하는 구조다. 앞으로 사태 수습을 위해선 야당도 자신들의 행태를 자성해야 한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득표율 차이는 고작 5% 포인트에 불과한데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자기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지 않았나. 이런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야당도 당리당략을 접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건희 특검 부결에 국민 실망
대통령 내란죄 탄핵 외통수
대통령 내란죄 탄핵 외통수
당 차원의 사죄성명과 더불어
헌법정신따라 탄핵안 투표해야
헌법정신따라 탄핵안 투표해야
사회=거국내각의 취지는 좋지만, 설령 야당이 동의하는 총리를 임명해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할 법적 근거는 없다. 윤 대통령이 2선에 물러나 있다가 나중에 '이 분야는 내가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손학규=그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동훈 대표는 점령군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한 대표는 이 난국을 수습하는 데만 최선을 다하고 대통령 출마는 포기한다는 각오로 나라 살리는 충정을 보여야 한다. 지금처럼 마치 자기가 대통령인 양 행세하면 안 된다. 야당과 협력해 위기의 국정을 제대로 하는 데 역할을 다하겠다고 결심해야 미래의 정치적 기회가 열린다. 그러기 위해선 한덕수 총리 체제로는 어려울 것이다. 여야를 오가며 조정도 하고 국제관계에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총리로 필요하다. 그래야 국제적으로 '저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구나'하고 인정받을 거 아닌가.
사회=마침 조금 전(8일 낮)에 한 대표가 담화문을 통해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손학규=(발표문을 읽어본 뒤) 야당 얘기가 한마디도 없다. 지금 여당에서 8석만 옮겨가면 탄핵안이 통과되고 2표만 더 가면 김건희 특검안이 통과되는 실정인데 야당 대표에 대한 얘기가 빠진 건 큰 문제다. “야당과 협의체를 만들어 국회 운영을 원활하게 하겠다”, “국회의장, 야당 대표와 국정을 제대로 풀어나가겠다”는 말이 나왔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 때문에 국회를 방탄으로 만든 건 큰 문제지만, 어쨌든 현직 야당 대표다. 사법 리스크 문제는 법원에 맡기고 이 대표와 대화를 해서 국회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가 안 움직이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나. 빨리 한 대표와 이 대표가 만나길 바란다.
사회=질서 있는 퇴진을 할 경우 윤 대통령의 퇴진 시점은 언제가 바람직하다고 보나.
정대철=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회 탄핵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까지 다섯달 반 정도가 걸렸다. 그렇다면 이번에 개헌을 안 한다고 하면 6개월 이내에 퇴진해야 할 것이고, 개헌까지 한다면 1년쯤 뒤가 되지 않을까. 또 개헌을 하더라도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빼버리고 권력구조에만 국한하는 원 포인트 개헌이 좋겠다.
정의화=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질서 있는 퇴진 얘기가 나왔다. 물론 성사만 된다면 국가적 혼란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국내각을 하려면 국회에서 절대다수인 민주당에 총리와 주요 장관을 거의 다 넘겨줘야 할 텐데 과연 그런 그림이 가능할지 다소 회의적이다. 대통령이 내란죄로 입건된 상황에서는 탄핵으로 가는 길이 외통수로 보인다. 다음 탄핵안이 올라오면 당 차원의 대 국민 사죄성명과 함께 헌법정신에 맞게 투표에 임하는 것이 유일한 정공법으로 보인다.
손학규=뭐든지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다가 이런 비극이 생긴 것이다. 정치와 협상, 타협을 복원해야 한다. 87년 체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안정 도모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사회=이번 계엄 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국민들과 수습에 나선 정치권에 국가 원로로서 당부의 말을 전한다면.
정대철=정치인에겐 세 가지 소명이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계속 잘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둘째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고 양극화를 극복해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남북 관계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내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시대적 소명을 계속 추구할 테니 국민은 안심하시라”고 말해야 한다.
정의화=우리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갈등이 심각하다. 갈등 해결엔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의 정치는 갈등을 오히려 더 부추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또 요즘 젊은 층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이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손학규=이번에 보니 계엄군 한 명이 넘어졌는데, 시민이 그를 일으켜 세우더라. 계엄군도 진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만큼 시민도 군도 성숙했다. 지금은 우리가 이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하지만 한국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