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출렁이자 달러예금 1조원 들락날락...외화 유동성 관리 촉각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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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 후폭풍에 은행권은 외화 유동성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달러대비 원화가치가 요동치면서 외화자금 잔액이 하룻밤 사이에도 1조원 가까이 출렁이고 있어서다.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수퍼달러(달러 강세)가 질주할 수 있다는 점도 외화 관리를 강화하는 이유다.  

16일 5대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안 부결 이후인 지난 10일 2억7300만 달러(약 3920억원) 규모의 달러 예금이 빠져나갔다. 9일 주간 종가(오후3시30분) 기준 달러당 원화값이 1437원까지 하락해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후 1430원 선에서 움직이자 차익실현 수요가 커진 여파로 풀이된다. 이후 여권 분열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자 달러 예금은 11일 하루에만 8억8900만 달러(약 1조2760억원) 증가했다. 현재(13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626억9100만달러(약 91조원)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엔 잔액 변동폭은 더 컸다. 비상계엄 직후인 4일엔 하루 사이 6억5600만 달러(약 9420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야간거래에서 달러당 원화값이 1442원까지 추락한 영향이다. 원화값이 장중 1440원대까지 밀린 것은 2년 1개월 만이다. 이후 3거래일 동안 7억7000만 달러가 예치되는 등 연일 출렁였다.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에 따른 원화 약세, 달러 강세 흐름이 지속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1400원대 고환율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달러 예금의 80%를 차지하는 기업들이 무역대금 결제 등을 위해 외화예금을 인출하면서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또한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우려도 있다. 금융권에선 달러당 원화값이 10원 하락하면 자기자본비율이 약 0.01∼0.02%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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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자산의 변동 가능성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외화자금 관련 모니터링 강화, 충분한 외화 유동성 확보 등 외화 리스크 관리를 당부했다. 주요 은행들은 유동성 충격에 대비해 외화 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을 규제 기준보다 2배 이상 확대 유지 중이다. 현재 은행들은 당국 규제에 따라 30일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부채의 80%에 해당하는 유동성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외화 LCR은 180% 수준으로 규제 비율 대비 매우 여유 있게 관리하고 있으며, 원화가치 급락에도 외화예수금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다만 당분간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외화 유동성 관리를 위한 외화예금 기업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