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판매량 고점 찍었나…수출 부진에 템퍼링 이슈로 K팝 성장 '빨간불'

지난 23일 서울의 한 음반 판매점에서 손님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서울의 한 음반 판매점에서 손님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음반 판매량 1억장을 돌파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K팝 업계가 올해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해외 수출이 부진했고, 템퍼링(계약 기간 중 제3자 사전 접촉) 등으로 인한 업계의 잦은 내홍이 벌어진 탓이다. 일각에선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음반 인플레이션’의 거품이 빠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상 밖의 큰 낙폭”

한국음반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2014년 약 730만장에서 2023년 1억 1600만장까지 9년간 상승곡선을 그려왔던 음반 판매량이 올해 들어 주저앉았다.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약 9314만장(-19%)에 그쳤다. 12월 집계까지 추산해도 1억장 판매고는 무리인 상황이다.

단일 앨범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밀리언 셀러는 올해 총 20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3장보다 13장이 줄었다. 500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0건’이다. 지난해 단일 앨범 500만장 판매고를 기록했던 보이그룹 세븐틴과 스트레이 키즈는 각각 트리플 밀리언 셀러(300만장), 더블 밀리언 셀러(200만장)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누적 앨범 100만장을 기록한 가수 또한 24팀으로 지난해보다 2팀이 감소했다. 특히 ‘여름 컴백 대전’이라 불리는 5~8월 음반 판매량이 전년 대비 30%가량 줄어들어, K팝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작의 판매량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제작사의 강박으로 인한 ‘밀어내기’, ‘포토카드 등 랜덤 구성물’, ‘무한 팬사인회’ 등의 K팝을 저해하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에도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작년 앨범 시장이 초도 경쟁으로 과열되었던 부분이 있어, 어느 정도 판매량 조정이 있을 거라 예상을 해왔으나 이렇게 급락할 줄은 몰랐다. 1년 만에 20%가 감소한다는 건 산업적 측면에서 굉장한 위기”라고 말했다. 또 “올해 여름 ‘파리 올림픽’이 있긴 했지만, 2023년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있었음에도 역대급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것을 보면 국제적 이벤트로 인한 일시적 하락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규 팬 유입 감소, 수출도 부진 

전체 앨범 판매량 감소와 더불어, 신규 팬덤 유입세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구보(발매 후 6개월 이상 지난 앨범) 판매량도 줄어들었다. 2024년 상반기 써클차트 앨범차트 톱400의 구보 판매량을 합산하면 지난해보다 237만 가량 줄어든(-41.7%) 330만 장에 불과했다. 연도별 상반기 구보 판매량은 ▶2019년 130만▶2020년 155만▶2021년 453만▶2022년 458만▶2023년 567만이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 해제 후 공연 시장 활성화에 따라 굿즈와 콘서트 티켓으로 구매가 옮겨간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신규 팬덤 유입세가 다소 주춤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K팝 시장을 다음 단계로 견인할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사진공동취재단]

 
9년 만에 역성장한 음반 수출액으로 인한 타격도 컸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음반 수출액은 1억3032만1000달러(1927억원)로 작년 동기보다 2.0% 감소했다. 상반기 기준 음반 수출액이 역성장한 것은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수출 대상 국가 수는 85개국으로 전년 대비 5개국 늘었으나 K팝의 주요 수출국인 일본, 미국, 중국의 비중은 작년보다 0.6% 증가한 73.3%를 기록했다. 이 중 미국만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수출 금액 추이를 보였다. 중국에서의 앨범 구매력은 약화했다. 중국 수출 물량만 놓고 보면 2022년 5133만달러(759억원)에서 지난해 3399만달러(502억원)로 33% 감소했고, 이 감소세는 중국의 소비 위축 상황으로 올해까지 이어졌다.

엑소→뉴진스, 템퍼링 이슈 계속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8일 발간한 ‘2025년 대한민국 콘텐츠 수출 전망 보고서’에서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 K팝 아이돌의 일탈 등이 K팝 업계에 피로도를 가져왔다”며 이를 위기 요인으로 지적했다. 템퍼링 의혹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수는 지난해 피프티피프티에 이어 엑소, 뉴진스 등이다.

그룹 뉴진스는 ″어도어의 귀책사유로, 어도어와 11월 29일부로 계약해지가 됐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해린, 다니엘, 민지, 하니, 혜인. 뉴스1 (공동취재)

그룹 뉴진스는 ″어도어의 귀책사유로, 어도어와 11월 29일부로 계약해지가 됐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해린, 다니엘, 민지, 하니, 혜인. 뉴스1 (공동취재)

 
뉴진스는 비약적 발전을 이뤄내야 할 3년차에 소속사와의 분쟁 중으로, 신보 활동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팀 이름 없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캐럴과 자작곡 등을 불렀다. ‘원조 밀리언 셀러 그룹’ 엑소의 활동도 쉽지 않다. 올초에 2013년 낸 겨울 싱글 ‘첫 눈’ 역주행으로 주목 받았으나, 엑소 유닛 첸백시와 SM엔터테인먼트 분쟁으로 결국 2024년 겨울 앨범이 무산됐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수와 소속사 간의 분쟁이 음반 판매량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면서도 “확실한 마이너스 요소이고 K팝 소비 전반에 미칠 장기적 영향으로 보자면 가장 나쁜 요인”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2025년 전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사진 빅히트 뮤직

방탄소년단은 2025년 전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사진 빅히트 뮤직

 
내년 K팝 시장은 기대할 만하다. 올 연말부터 활동에 시동을 건 지드래곤이 있으며, 내년 ‘완전체’를 예고한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있다. 블랙핑크 제니는 내년 솔로 컴백도 밝혔다. 방탄소년단 지민은 지난달 팬 커뮤니티에 “전역 후에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려드려야 할까 어떤 무대를 보여드려야 할까 벌써부터 설레발치면서 지내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훨씬 더 성장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테니 기대 많이 해달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