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앞 점거한 시위대에 소음…방과후 포기한 한남초 학생들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난 8일 서울 한남초 교문 앞에 경찰의 질서통제선이 쳐져있다. 한남초 바로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서원 기자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난 8일 서울 한남초 교문 앞에 경찰의 질서통제선이 쳐져있다. 한남초 바로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서원 기자

“시끄럽다고 친구들이 대통령 아저씨 욕했어요.”
지난 8일 오후 하굣길에 오른 서울 한남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귀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론 부모님 손을 꼭 붙잡은 채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위치한 한남초에선 이날 겨울방학 방과후학교가 시작됐지만, 교문 앞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인파로 둘러싸이면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불과 40m 떨어진 집회 무대에 설치된 확성기·마이크 소음 등이 교실로 고스란히 들어와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등하굣길에 시위대를 막으려는 경찰 차벽이 겹겹이 설치돼 있는 등 아이들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고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한남초 교문 앞엔 학생 통학로를 보장하기 위해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통제선 안에 자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일부는 교문 바로 앞에서 북과 징을 두드리고 호루라기를 불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 손을 꼭 붙잡고 교실까지 데려다준 뒤에야 교문을 나섰다. 당초 학교는 지난 6일부터 방과후학교 등 겨울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혼잡한 학교 앞 진입로로 개강을 이틀 미뤘다.

한남초 학생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사이로 하교하고 있다. 최혜리 기자

한남초 학생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사이로 하교하고 있다. 최혜리 기자

 
1학년 쌍둥이 딸을 둔 엄마 박모씨(40대)는 “원래 차로 데려다줬지만 시위대에 도로가 막혀 도보로 등하교하느라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5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둔 원모(38)씨는 “평소 남매끼리 등교하는데 요샌 내가 못 데려다주는 날엔 등교를 아예 포기한다”며 “애들도 (시위대의) 욕설을 다 알아듣고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원씨 아들은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고도 했다. 또 다른 학부모 이모씨(40대)는 “통학길 안전 문제로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도 처리가 안 된다”며 "정식 개학하기 전까지는 해결돼야 할 텐데…”라고 걱정했다.

통상 방학 중에도 방과후학교·늘봄(초등돌봄) 교실 등은 운영돼 학생 70~100명이 등교해야 하지만, 이날 학교에 온 학생은 20~30여명에 불과했다. 학교 담벼락엔 ‘불법영장 육탄 저지’, ‘부정선거 입법독재 OUT’ 등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학교 경비원은 교문 앞에 설치된 펜스를 붙잡고 관저 인근을 보려 하거나 학교 안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집회 참가자들을 통제하기 바빴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로 학부모들의 안전 우려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전했다.

한남초 담벼락에 '불법영장 육탄 저지',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의 대자보와 피켓이 붙어있다. 최혜리 기자

한남초 담벼락에 '불법영장 육탄 저지',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의 대자보와 피켓이 붙어있다. 최혜리 기자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서울시교육감 명의로 용산서에 ‘학교 앞 통학로 확보 위해 질서 통제 필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고 이날 현장 점검에 나섰다. 교육청에 따르면 한남초 정문으로 공사 차량 진입이 어려워 석면제거, 늘봄교실 공사 등 방학 동안 예정된 보수 공사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교육청 관계자는 “대체학교 운영 등 차선책을 알아봤지만, 그렇게 하진 않기로 했다”며 “섣불리 집회 제한 등 조치를 취했다가 역으로 부작용 생길까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소음 피해 등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살벌한 구호 등에 노출되면 비교육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학교 앞 집회 금지 규정이 있진 않으나 집회·시위 허가 기준이 지나치게 관대해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며 “학생을 포함한 인근 주민·상인 등 제3자에 대한 공공이익 침해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