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계엄 후 RP 매입 47조원 썼다…팬데믹 넘는 역대 최대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본부 건물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본부 건물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중의 유동성 부족을 막기 위해 매입한 환매조건부채권(RP) 총액이 47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한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47조6000억원 규모의 RP를 매입했다.

이는 코로나19가 경제에 충격을 줬던 2020년 한 해 동안의 매입 총액(42조3000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한은은 지난해 1~11월 이미 58조5000억원의 RP를 매입했기 때문에, 12월 한 달에 매입한 47조6000억원을 더해 연간 매입액이 사상 최대인 106조1000억원에 달했다.


한은은 대내외 여건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경우 RP 매입을 통해 단기 원화 유동성을 공급한다. 갑작스레 자금 수요가 급증할 경우 금융기관의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연말이나 분기 말 등 자금 수요가 커질 때 주로 이뤄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나 비상계엄 사태 등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도 시장 안정을 위해 실시된다.

주로 금융기관의 보유 증권을 한은이 사준 뒤, 일정 기간 후 다시 해당 증권을 매도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매입 대상 증권은 국채, 통안채를 비롯해 특수·시중은행채, 공공기관채 등 안전성이 높은 채권이다.

처음 정해놓은 만기일에 유동성을 다시 회수하므로, 영구적인 자금 지원이 아닌 초단기 유동성 공급 방안이다. 또한 RP 매입 환매(만기)일에 한은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자를 받기 때문에 임시 대출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달 3일 밤 무제한 유동성 공급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이튿날 오전 RP를 비(非)정례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2월 4일 당일에만 10조8000억 원 규모의 14일물 RP 매입을 실시한 바 있다.

한은은 유동성 공급량을 파악하기 위해 상환 후 잔액의 일평균치를 기준으로 활용하는데, 이를 살펴봐도 계엄 사태 여파가 상당했다는 게 정 의원 지적이다. 지난달 RP 잔액 평균은 14조9000억원에 달해 직전 최고였던 2020년 6월의 14조원을 훌쩍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