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이 집행된 15일 새벽 1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2시 반에 깼다. 두 시간을 채 못 자고 잠을 설친 그는 관저에 있는 직원과 변호인단을 위해 햄샌드위치 10개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이날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내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경찰과 경호처 청년끼리 무력 충돌이 일어나서 유혈 사태가 불가피하다. 불법 수사에 굴하는 게 아니라 국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영장 집행에) 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이날 새벽 관저 직원들에게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나눠주며 하루를 시작했다. 관저 밖에선 오전 4시 30분부터 국민의힘 의원 35명이 속속 집결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 영장 집행 저지에 나섰다. 이 가운데 최근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 참석 중인 윤상현 의원이 오전 4시쯤 가장 먼저 관저 안에 들어가 윤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권영진ㆍ이상휘ㆍ박충권 의원이 오전 8시 20분쯤 관저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선 막아서는 공수처ㆍ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져 권 의원의 옷이 찢어지고, 이 의원도 타박상을 입었다.
윤 대통령은 권 의원 등과 1시간 반가량 차담을 나누면서 영장 집행에 응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공수처 수사와 체포 영장 청구도 불법이고, 영장 발부와 집행 과정도 불법”이라면서도 “청년들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집행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관저 안으로 들어가는데 대통령실 행정관 40여명이 눈시울이 붉은 채로 복도에 도열해 있었다”고 전했다. 김건희 여사도 이때 잠시 방에서 나와 의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특히 권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날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권 의원은 윤 대통령이 계엄 당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통화했다는 곽 전 사령관 진술을 거론하며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서 체포하라는 이야기이셨냐”고 물었다. 곽 전 사령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12월 4일 새벽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날선 어조의 권 의원에게 윤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곽 전 사령관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을 그때 끌어내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고생이 많다. 당을 잘 이끌어달라”며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까지 했기 때문에 더 목표가 없다. 하지만 이 상태로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담담한 태도에 일부 의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한 당협위원장은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윤 대통령은 그를 일으켜서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렸다. 이용 전 의원(경기 하남갑 당협위원장)도 울음을 터뜨렸다. 이 전 의원은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후보 수행실장을 지내는 등 '윤석열 호위무사'로 불렸다. 한 참석자는 “탁자 위에 샌드위치가 놓여있었지만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숙연했고 큰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대통령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대통령이 ‘당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정권 재창출을 해달라’는 취지로 당부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토리(반려견) 한 번 보고 가자”라고 말한 뒤 거실 2층을 들렀다고 한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10시 33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대통령이 떠난 뒤 관저에 찾았던 의원들은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영장, 불법 체포, 군사보호시설에 임의로 침범하는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과 당 대표를 아버지로 모시는 추종세력들에 의해 법치주의와 민주절차가 짓밟아진 날”이라고 주장했다.